어려운 주변 환경을 넘어 ‘독하게' 살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비즈니스 포커스]살을 에는 맹추위가 어디 겨울 날씨뿐일까. 경제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빅테크들의 대규모 해고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연말 시내 음식점들은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손님이 넘쳐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목요일·금요일 저녁에도 텅 빈 식당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2023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이 어려운 시기는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사실 위기는 어느 때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위기의 시대 생각해 볼 만한 인물들의 일화를 추렸다. 알려진 얘기들이지만 새해를 맞으며 한 번쯤 곱씹을 만한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계묘년, 독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수진 야놀자 대표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찢어지게 가난했던 모텔 청소부가 기업 가치 10조원이 넘는 ‘데카콘 기업’을 만들었다. 야놀자를 창업한 이수진 총괄대표는 영화 같은 스토리의 실제 주인공이다.
197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재혼으로 떠나면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하느라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집중 관리를 받고서야 한글을 깨칠 수 있었다. 공부는 반에서 거의 맨 뒤였다. 혈혈단신 맨주먹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막노동을 해 악바리처럼 번 거금 4000만원은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주식에 몰아넣었지만 다 날렸다.
무일푼 신세로 갈 곳이 없어지자 이 대표는 모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숙식 제공이라는 조건이 그를 모텔 아르바이트로 이끌었다. 청소부터 주방일, 주차 관리 등 모텔 관리 전반을 경험했다.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해 1년 만에 아르바이트에서 매니저·총지배인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번 돈으로 샐러드 배달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모두 날렸다. 가진 것 없는 그를 다시 받아준 곳은 모텔이었다.
다시 돈을 버는 데 몰두했다. 2002년 ‘모텔이야기’라는 다음카페를 만들고 그곳에 자신이 아는 모텔 지식을 공유했다. 그러자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 대표는 카페를 발판 삼아 숙박업 구인·구직 및 모텔 용품 거래 중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공동 창업자인 부사장만 빼고 전 직원이 단체로 그만두고 경쟁사로 가기도 했고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모텔투어(모투)의 상표권을 경쟁사에 빼앗기기도 했다.
그 일은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실질적으로는 사형 선고와도 같은 일이었다. 결국 2006년 8월 ‘모투’라는 상표를 버려야 했고 ‘야놀자’라는 상표를 갖게 됐다. 위기는 새로운 브랜드 탄생의 기회가 됐다.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한자리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기업을 성장시켜 왔다.
그는 그렇게 창업 후 오늘날 야놀자를 숙박업계 1등 기업으로, 데카콘으로 일궜다. 그는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성공 확률이 아주 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낮은 확률을 딛고 일어섰다. 그의 좌우명은 단순하지만 울림이 있다. “끝까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전효진 메가스터디 강사
“날 탓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독하게 합격하는 방법’의 저자 전효진 씨는 메가스터디 강사이자 공무원 준비생들의 유명 멘토다. 흙수저에서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뒤로하고 공무원 수험가에 강사로 뛰어들어 ‘스타 강사’ 반열에 올랐다. 척박한 가정생활에서도 그를 성공 반열에 올린 것은 8할이 ‘근성’이었다.
“동전 100원을 잃어버려, 사이다 병뚜껑을 잃어버려 부부 싸움하는 것을 보며 자랐어요. 엄마를 웃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성공을 위해 공부했다. 가난에 문제집을 살 형편도, 아니 문제집이 있는지도 몰랐다. 주변에서는 ‘네가 서울대 붙으면 나도 간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결국 뜻을 이뤘다. 그럼에도 가난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 역전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시 합격이라고 생각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했다. “내가 밀리면 엄마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 이 시험을 단 한 번만 준비한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집단 속으로 들어갔다. 경영학과인 그는 서울대 법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끈끈한 법대생 사이에서 그는 외톨이였다. 처음엔 ‘미친년 왔다’는 소리도 들렸다. 오전 6시 45분에 일어나 15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7시 셔틀버스를 탔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뛰어나가기 위해 저녁에 다 씻고 옷 입고 양말까지 신고 가방 줄을 잡고 잤다.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 너무 무서워 동선을 짧게 만들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점심 시간에는 10분 만에 밥을 먹고 다시 앉았다. 짧은 30분의 낮잠을 자고 11시까지 공부했다. 집에 오면 씻고 누워 다시 책을 폈다. 마지막 잠드는 순간까지 책을 봤다. 1분도 다른 생각을 하다가 잠 드는 게 아까워 스탠드에 손을 뻗고 잤다.
슬럼프도 있었다. 책을 보며 눈물이 흐르는 것을 그냥 뒀다. 어차피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훗날 맞은편에서 함께 공부했던 법대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짜 존경스러웠다고…. 그는 자신의 인생을 자기 자신의 인내와 고단함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실패해서 내가 물러나더라도 뒤돌아보지 않도록, 이게 내 탓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랬더니 못 이룬 게 없는 삶이었습니다.” 김선규 그린라이트 이사
“가지 않는 길을 걷다”
나사렛대를 재활복지특성화 대학으로, 한국 최고의 발달 장애인 고등교육 기관으로 우뚝 세운 주역이 있다. 지금은 장애인 접근권을 확대하기 위해 매진하는 김선규 그린라이트 이사장이다.
김선규 이사장의 삶은 곧 장애였다. 소아마비로 지체 2급 장애를 겪게 된 이후 그의 인생에는 장애물이 가득했다. 부모는 놀림감이 될까 학교를 보내지 않았고 열세 살이 돼서야 특수 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숙명처럼 여겼다.장애인 복지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월급여는 26만원. 그의 부인은 가계부에 ‘계란 두 알’을 적었다. 계란 한 판을 살 수 없을 만큼 박봉이었지만 그는 장애인 복지에 매진했다. 매일 같이 그의 사무실로 사연을 가진 장애인 손님들이 찾아왔다. 포기할 수 없었다. 주말, 밤낮 가리지 않았다. 9년간 3만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랬더니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의 한 총장이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한국 최초로 설립되는 재활공학과에 부임하면서 장애인들의 보장구 발전과 국가 자격증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의 좌우명은 ‘가지 않는 길’이다. 대학의 안정된 생활을 그만두고 임기가 3년뿐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장으로 가는 데도 그의 좌우명과 같은 결단이 있었다.
대학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이제는 노후를 생각해야 할 때 후배가 찾아왔다. “형님, 형님만 잘 먹고 잘살면 됩니까. 우리가 원하는 차별 없는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라는 후배의 묵직한 메시지에 그가 다시 외로운 길을 택했다. 1년에 3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장애인 고용에 제대로 쓰이는지 살피고 장애인들의 고용 확대에 대한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장애인고용공단 개발원장에 부임했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사장직에 오른 그가 취임 후 한 일은 중증 장애인의 취업 확대였다.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고용 촉구 결의안을 의결해 정부와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촉구하는 등 중증 장애인 고용 활성화에 역점을 뒀다. 지금에야 로펌에 취업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TV에 나오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중증 장애인의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장애인고용공단을 은퇴한 후 나사렛대에서 11년간 발달 장애인 대학생들을 위해 대학 생활 프로그램 개발과 졸업 후 직업 문제를 다루면서 200여 명이 넘는 발달 장애인들에게 사회 진출과 직업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금은 취약 계층의 삶에 초록 신호등이 켜진다는 뜻의 모빌리티 전문 비영리 기관으로, 장애인 여행을 지원하는 ‘초록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 왔어요. 혼자 오솔길로 가면서 고민해 온 삶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시네갈 코스트코 창업자
“제 일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입니다”세계 굴지의 기업가들 중에도 ‘독기’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세계 최대의 창고형 마트 체인인 코스트코를 만든 창업자 제임스 시네갈이다.
시네갈 창업자는 193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아주 어릴 때 그의 부모는 이혼했고 생활고에 시달린 어머니는 어린 시네갈 창업자를 고아원에 맡겼다. 열한 살이 돼서야 그를 찾았지만 환경은 열악했다. 의사를 꿈꿨지만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성적은 충분했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너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학점을 제대로 따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적처럼 은인을 만났다. 매트리스를 들고 낑낑거리는 한 짐꾼을 도왔는데 알고 보니 그는 페드팩스라는 유통 체인의 회장이었다. 미국 유통업에 혁신을 가져온 프라이스클럽의 전신이다.
그와의 인연으로 시네갈 창업자는 페드팩스에서 점원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밤낮없이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보조 짐꾼으로 시작한 시네갈 창업자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기적을 이뤄 낸다. 미국판 샐러리맨의 신화다.
시네갈 창업자는 1983년 프라이스클럽을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세운다. 바로 코스트코다. 시네갈 창업자는 1983년 이후 줄곧 코스트코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오다가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긴 2012년까지 29년간 코스트코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다. 시네갈 창업자는 ‘경쟁자와 상반된 전략으로 승부한다’는 철학으로 코스트코를 경영했다. 일반적인 소매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윤을 늘릴 수 있을지 연구하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싸게 팔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질 좋은 물건을 싼값에 팔다 보면 이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은퇴 당시 그의 인터뷰는 샐러리맨 신화의 열쇠를 보여준다. “남들은 저를 스티브 잡스와 비교합니다. 그와 한 가지 닮은 것은 저도 제 일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날까지 일한 그처럼 저도 제 일에 몸과 열정을 다 바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 샤넬 창업자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 삶을 창조했다”누구나 선망하는 명품 브랜드 샤넬의 탄생은 빈민가에서 자신의 삶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한 소녀의 손 끝에서 시작됐다.
가브리엘 샤넬 샤넬 창업자는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남서부의 시골 마을인 소뫼르의 한 빈민 구호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그에게 가난은 가혹했다. 그가 열두 살 되던 1895년 어머니는 추운 날씨에 감기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숨졌다. 한량 아버지는 딸들을 수도원인 오바진의 고아원에 맡기고 떠나 버렸다. 그는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나를 밀가루 포대 던지듯 이모들(수녀들)에게 던져 버리고 미국으로 가 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수녀가 되는 길을 택하는 대신 낮에는 보조 양재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연인의 도움으로 옷 만드는 재능을 살려 1913년 도빌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 여성복에 스포츠웨어를 접목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하거나 여성용 바지를 만들었고 치마 길이를 무릎까지 올렸으며 여성복에 포켓을 달았다. 굽이 낮은 플랫 슈즈도 그의 작품이었다.
당시 샤넬은 여성 옷의 혁명이었다. 샤넬 창업자의 패션 철학은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라’는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 몸을 꽉 조여 억압했던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고 활동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선물한 사람이 샤넬이었다. 자유에 대한 그의 철학은 옷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발목 잡았던 가난에서도 해방을 꿈꿨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창조했다.” 리오넬 메시 선수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지금은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리오넬 메시는 유년 시절 할머니의 권유에 축구 인생에 발을 들였다. 엄청난 활약상을 펼치며 유망주로 각광 받았지만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성장 호르몬 결핍증.’ 축구 선수에게 치명적인 병이었지만 이를 치료하기에 그의 부모는 가난했다.
꿈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인 그때, 놓칠 수 없는 제안이 찾아온다. 유럽 명문 구단인 FC바르셀로나에서 그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거액의 치료 비용을 투자하겠다고 제안해 온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승승장구가 시작된다. 만 22세의 어린 나이에 최다 득표로 2009 발롱도르와 2009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단 하나 이룩하지 못한 업적이 있었으니 바로 조국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2014년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날, 그가 트로피를 처량하게 쳐다보던 사진 한 장, 그가 라커룸에서 우는 소리가 너무 비통해 동료들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는 증언이 세계 축구인을 울렸다. 그조차 자신의 축구사를 “공이 저에게 많은 기쁨과 약간의 슬픔을 안겨준 30년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다.
모두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16강전에서 이른 패배를 경험했다. 사람들은 그의 최전성기가 지났다고 했다. 하지만 10대 시절 역경을 딛고 등장한 천재는 36세의 노장 선수가 돼 자신의 다섯째 월드컵에 참가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의 유일한 결핍이었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염원을 이뤄 냈다. “저는 항상 세계 챔피언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손흥민 선수
“단 1%의 가능성만 있다면”2022년 11월 2일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깊은 탄식에 빠졌다. 한국 국가대표 공격수 손흥민 선수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 경기 도중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진 것. 손흥민 선수의 얼굴은 왼쪽 눈을 뜨지 못할만큼 부어 올랐다. 병명은 ‘안와골절’. 8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했다. 그에게도, 카타르 월드컵을 3주 앞둔 한국 축구 대표팀에도 비상의 순간이었다.
손흥민 선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을 하루 앞당기고 회복에 전념했다. 참가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부상이 없는 선수도 누구나 리스크는 있습니다. 단 1%의 가능성만 있다면 그 가능성을 보며 앞만 보며 달려 가겠습니다.”
안면 마스크를 쓰고 월드컵에 나타나자 국민들은 환호했고 또 우려했다. 그가 제기량을 펼치지 못할 때면 악플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헤더를 시도할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았다. 눈물 겨운 투혼이었다.
마침내 H조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그를 비롯한 선수들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선제 골을 내준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따라 잡으며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뒀다. 12년 만의 월드컵 16강 진출의 대업을 이뤄 낸 것이다.
‘1%의 가능성.’ 그의 무모한 도전은 한국 축구의 신화를 다시 썼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들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든 태극기에 쓰인 문구는 우리 사회를 울린 최고의 메시지로 남았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돋보기] 독한 사람들의 공통점 1. 우직하고 성실하다
2.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3. 모두가 “예스(yes)”라고 소리칠 때 “(no)”라고 외친다
4. 모두가 비슷한 경력을 쌓을 때 정반대 경력을 개척한다
5. 전진보다 후진하는 방법으로 성공 해법을 찾는다
<돋보기> 2023 독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 추천새해에 빠질 수 없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한 해의 ‘계획’ 세우기일 터다. ‘독한 사람들’의 일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면 이제는 실전이다. 2023 독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를 추천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자기계발 방법을 찾는다면.
제임스 클리어 지음 l 이한이 역 ㅣ 비즈니스북스 ㅣ 16000원
‘부는 어디서 오는가’
100년 동안 단 1%만 알았던 부의 법칙
월리스 와틀스 지음 l 이상미 역 l 포레스트북스 l 15000원
‘그릿’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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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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