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이 상승하고 기업이 도산하고
소비·투자 위축되고 자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나타날 때
인플레이션 퇴치와 경기 침체 중 우선순위는 어떻게

[경제 돋보기]

새해의 경제적 화두는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의 시기와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작년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빅 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함으로써 미국의 기준금리는 4.5%로 해를 넘기게 됐다. 올해 2월 초에 열리는 첫 회의에서 과연 연이은 빅 스텝을 선택하게 될지 아니면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취함으로써 긴축 정책 기조의 변화를 가시화할지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거 미 중앙은행(Fed) 의장 후보로 거론됐던 컬럼비아대 프레드릭 미시킨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면 6%대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고강도 긴축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장은 5~5.25%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중이다. 관건은 이 정도의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느냐에 있다.

지난해 6월 9%대로 치솟았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7.1%로 감소하기는 했지만 인플레이션 목표치 2%와는 큰 괴리가 있다. 노동 시장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고용과 임금 지표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의 여파가 본격화되면 과연 인플레이션 퇴치와 경기 침체 중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까. 실업률이 상승하고 기업이 도산하고 소비와 투자의 위축과 자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나타날 때 인플레이션 2% 목표치를 관철하기 위해 고강도 긴축 정책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서 번즈는 1970~1978년 동안 Fed 의장을 지냈다. 미국은 월남전으로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 내면서 금 1온스당 35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치솟자 급기야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게 된다.

1차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1974년 말 인플레이션은 12%를 넘어서게 됐다.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그로 인한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상승하고 거세지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1975년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임금과 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1976년 물가는 다시 폭등하게 된다.

반면에 폴 볼커는 1979~1987년까지 Fed 의장을 지내면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 퇴치를 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인 금리 인상을 실행하면서 1981년 기준금리를 최고 21.5%까지 올렸다.

볼커 전 의장은 긴축 정책이 단기적으로 불황을 초래하지만 기업의 구조 조정 촉진, 실업률 상승과 임금 인상 억제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이윤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업들의 파산과 엄청난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결과 인플레이션이 14.6%에서 1983년 2.36%로 감소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 미국이 유례없는 1990년대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다.

파월 의장은 아마도 인플레이션을 퇴치한 볼커 전 의장의 경로를 따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인해 볼커 전 의장이 당했던 비난과 협박을 이겨내고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풀려 나온 막대한 자금과 공급망의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여전한 인플레이션 압박을 억제하는 대가로 경기 침체를 어느 수준까지 감내할 것인지의 선택은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파월은 아서 번즈와 폴 볼커 중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차은영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