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 신체 측정은 몸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통제로…자신에 대한 불만과 불안으로 연결

건강 염려증 1

보디 체킹(body checking)과 신체 정보의 늪[몸의 정치경제학]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몸을 측정하나. 주로 몸의 어느 부위, 무엇을 측정하나. 연령별·성별·신체 조건별 차이는 있겠지만 몸무게, 얼굴 상태, 허리 치수, 뱃살, 걸음 수, 열량 섭취량·소모량, 혈압, 당 수치, 배변 상태 등이 주된 관심과 측정 대상 아닐까 한다.

신체 측정은 크게 감각적 방법과 수리적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감각적 측정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보는 등의 대략적 인지 방법이다. 얼굴이나 피부 상태, 흰머리의 증가 여부, 뱃살 두께 확인을 떠올리면 된다. 반면 수리적 측정은 각종 기계 혹은 전자 장비를 활용한 과학적 신체 정보 습득이다. 체중계, 스마트 워치, 인바디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감각적이든 수리적이든 자신의 몸 상태를 강박적으로 측정하는 행위를 일컬어 보디 체킹(body checking)이라고 부른다. 강박적 보디 체킹은 단순히 자기 몸의 측정과 정보 습득에 그치지 않고 그에 따른 정서적 반응(건강 염려증, 열등감, 자기혐오 등)과 물리적 대응(금식, 영양 보조제 과다 섭취, 무리한 운동 등)으로 연동되는 심리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보디 체킹은 병리적 이슈로 다뤄진다. 참고로 보디 체킹은 아이스 하키나 여타 운동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신체를 견제하는 보디 체크(body check)와 무관하니 혼동하지 말자.

이러한 보디 체킹이 만연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기술 인프라 측면에서 신체 측정의 편의성을 향상시킨 의료·광학·전자 기기의 발달을 꼽을 수 있다. 둘째, 경제적 요인으로는 서비스 산업의 팽창에 따라 몸과 외모의 부가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100세 수명 시대의 도래에 따라 건강과 신체 복지에 대한 관심 증가를 들 수 있다. 넷째, 문화적 요소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확산에 따른 일반인들의 자기 소재화와 신체 전시의 일상화를 지목할 수 있다.

보디 체킹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외모 점검과 신체 측정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관관계를 주목한다. 자신의 몸을 이상적 신체의 형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짙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디 체킹의 병리학적 급습은 시각 광고물의 급증, 초정밀 스크린의 범람, 모델·아이돌·셀럽들의 영향력 강화 그리고 SNS 미디어의 확산과도 무관하지 않다.
거울 사회와 보디 체킹

하지만 보디 체킹의 부상은 그 무엇보다 ‘거울 사회’의 도래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가장 일상적이고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신체 측정이 거울 들여다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20년 영국에서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하루 평균 34회, 남성은 27회 거울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중 성인 평균 수면 7시간을 제하면 여성은 30분마다 한 번 거울을 본다는 결과다.

이 서베이가 스마트폰 카메라와 셀피를 거울처럼 활용하는 추세를 포함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성들은 콤팩트 파운데이션에 달린 거울 기능을 휴대용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체하면서 공간 제약없이 거울 보기가 가능해진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1990년대 중반 이후 반사 유리와 광택 알루미늄을 외장 소재로 사용한 건축물이 급증하면서 외부 공간이나 보행 중에도 외모 점검이 용이해졌다. 거울이 무소부재해지면서 강박적 보디 체킹 또한 늘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다. 자신에게 기대하는 수준과 실제 이미지와의 낙차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울에서 늘 실망스러운 자신을 보게 되는 현상을 ‘마술 거울 신드롬’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쁜가 하고 들여다본 거울은 늘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동화 ‘백설공주’ 속 마술 거울 말이다.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악한 여왕은 이 거울의 정직함 때문에 이성을 잃고 질투와 분노의 화신이 된다. 백설공주와 여왕을 비교 평가한 마술 거울처럼 보디 체킹의 심리적 중심에는 자신의 몸과 타인 혹은 이상적 신체와의 비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디 체킹은 자신의 신체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형적 소외의 구조를 띤다. 또 이런 심리적 하중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그 이유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외모에 대한 기대치와 압박이 훨씬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문제연구소(SIRC : Social Issues Research Center)는 1990년대 모델과 미인 대회 출전자들의 평균 몸무게는 일반인 평균보다 8% 정도 가벼운데 그쳤지만 최근에는 그 격차가 22%로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즉 미용·패션·미디어가 제시하는 ‘이상적’ 여성의 체중은 전체 여성 인구의 5% 미만이 통과할 수 있는 ‘바늘귀’가 됐고 남겨진 95%는 자신의 신체를 ‘문제시’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기 신체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정서적 불안, 과민이 심해지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강화되거나 대인 회피적 은둔성을 띠게 된다고 경고한다. 또 이런 정서적 불안정이 자기 몸에 대한 수치와 혐오로 이어지면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섭식 장애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지금까지 본격적인 논의는 없었지만 과도한 자신감과 나르시시즘(narcissism) 역시 보디 체킹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실체에 대한 부풀려진 인식은 사실 열등의식이나 피해망상과 연결된 경우가 많고 어떤 측면에서는 자기 보호를 위한 현실 도피의 방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속이 아닌 현대를 사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유약하고 상처받은 자아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작품 나르시서스(Narcissus)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작품 나르시서스(Narcissus) 



과학과 의료 정보의 변덕

하지만 강박적 보디 체킹을 단순히 미용과 이미지 산업이 빚어낸 후과만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의료 건강업계는 물론 언론과 공공 기관이 합심해 가하는 신체와 건강 관리에 대한 막대한 압박에서 그 요인을 찾는 것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절기마다 변덕을 일삼는 의료 전문가들의 경고와 추천, 낭설에 가까운 건강 상식, 공공 기관의 공격적 캠페인, 마케팅에 동원된 광고 카피 등이 버무려져 몸과 건강 관리가 종교적 도그마(dogma)로 굳어지고 이것이 건강 염려증이나 보디 체킹이라는 병리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예컨대 하루 2리터에 달하는 물을 섭취하면 좋다는 평범한 권장도 온라인 블로그나 광고 그리고 건강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결코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 기준치로 둔갑해 버린다. 이런 건강 정보의 미신적 숭배는 칼로리 권장량, 다이어트 방법론, 근력 유지 운동법 등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일편단심인 반면 정보 자체는 변심을 거듭한다.

우유가 몸에 좋다 혹은 와인이 심장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철석같이 믿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왜 인간이 소젖을 마시고 살아야 하느냐”, “알코올이 어떻게 심혈계에 좋을 수 있겠느냐”는 반박을 듣게 되는 당혹함을 한두 번씩은 겪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견해성 정보’들을 대하는 청자들의 태도다. 상반된 의학 정보들이 난무하는 것은 다수의 연구와 발견이 연관 또는 경쟁 업계의 자금줄로 수행된다는 사실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전주(錢主)들의 이해를 충족시킬 결과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도출해야 하는 목적의식적 집단이다. 그러니 어찌 의료 과학이 순수할 수 있으며 리서치가 중립적일 수 있겠고 거기서 ‘제조’된 정보가 절대적일 수 있을까.

과학 철학자 토마스 쿤은 그의 1962년 저서 ‘과학적 혁명들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과학이란 본래 과학적 연구에 종사하는 인력들끼리 벌이는 실험과 검증이라는 이름의 경쟁에 다름 아니고 이 경쟁에서 여타 인력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게 되는 집단의 주장(혹은 ‘패러다임’)이 사실이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통용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의학이나 여타 과학적 연구는 불변의 진리를 다루는 분야가 아니다. 쿤의 말마따나 일정 전문 집단이 특정 절차에 따라 어떤 사안·현상·물체에 대해 추리하고 규명할 수 있는 제일 그럴듯한 ‘해설’을 전달하는 업이다. 그러니 늘 새로운 발견·발명·해석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 새로운 발견과 해석은 이전 지식을 뒤엎을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청자들의 몫이다.

정작 청자들에게 필요한 태도는 교조적 맹신이 아니라 과학적 비관주의와 합리적 냉소주의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의료 정보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에도 적용돼야 한다. 기계가 측정한 신체 수치는 객관적이겠지만 어떤 수치가 정상·필수·위험인지에 대한 진단이나 해석은 시대별·국가별 심지어 제약 회사나 의사별로 편차를 보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루 비타민C 섭취 권장량에 대한 기사를 발췌해 봤다. ‘비타민C의 적정 섭취량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갈린다. 하루 45mg에서 200mg까지 최대 5배가 차이가 난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45mg을, 노르웨이 연구에서는 하루 75mg을 각각 추천했다. 2000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75~90mg, 2013년 유럽에서 진행된 연구에선 95~110mg이 적절하다고 봤다.’(헬스조선 2018년 3월 20일자 기사)

기사는 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가장 높은 190~220mg을 권장했고 최근 등장한 1000mg 이상의 메가도스 요법도 소개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출지는 여러분의 결정이다.

단 변덕과 불일치는 과학과 의학 정보의 불가피한 측면인 것만큼은 기억해 둬야 한다.
신체 관련 기구나 복잡한 테크놀로지도 마찬가지다. 좌식 사이클 기기가 무릎과 허리에 좋다는 기사가 등장한 지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정반대의 기사가 오르내리며 이름도 낯선 일립티컬 머신(elliptical machine)으로 바꾸라고 한다.

사실 어떠한 기기나 테크놀로지라도 그것들의 고안에서부터 활용까지의 전 과정은 사회적 관심과 설정된 가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도 꽤나 유행했던 만보기의 사례를 들어보자. 1964년 도쿄 올림픽 직후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자 일본 전자 의료 기기 회사 야마사(Yamasa)는 1965년 ‘만보계(萬步計 : manpo-kei)’라는 이름의 걸음 측정기를 출시했다.

그런데 만 보가 어떤 의미 있는 기준으로 설정한 듯한 기기의 이 명칭은 그저 참신함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1만 보 걷기가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요시히로 하타노 규슈대 교수의 주장을 거르지 않고 마케팅 전면에 활용한 사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보계는 출시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일본에서만 100만 기가 판매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많이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상식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런 걸음 측정기의 발명은 르네상스 시대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도 깊다. 하지만 1만 보 걷기와 건강과의 직결 관계에 대해서는 보건 의학계 내에서도 줄곧 논란이 돼 왔다. 심지어 영국 가디언은 만보계 출시 53년이 지난 2018년에 이르러서도 1만 보라고 하는 숫자에 어떠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폭로하는 긴 기사를 게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본 야마사 회사가 1965년 출시한 만보계 광고 <출처: 가디언 2018년 9월 3일자>
일본 야마사 회사가 1965년 출시한 만보계 광고 <출처: 가디언 2018년 9월 3일자>



스마트한 신체 측정 테크놀로지, 보디 체킹에 약인가, 독인가?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신체 측정과 관련된 테크놀로지가 유행을 타면서 몸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이용하는, 더 나아가 조장하는 상술이 과속 방지턱도 없이 질주하고 있다. 인바디와 스마트 워치를 보면 그런 거북함이 더 커진다.

2014년께부터 대유행을 탄 인바디는 체성분 분석의 대명사로, 다이어트와 신체 관리에 대한 한국인의 극강 관심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1996년 헬스기기 스타트업으로 창립한 인바디 회사는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체성분 분석기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넘는 슈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인바디의 보급과 함께 체지방률, 체수분 함유량, 기초 대사량, 골격근량 등의 전문 용어들이 유행처럼 한국인의 일상에 침투했다. 굳이 건강검진센터를 가지 않더라도 사우나 시설·요가·헬스장은 물론 공공 기관인 지자체 복지센터나 주민센터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2015년 출시된 팔찌형 인바디 밴드는 스탠드형 인바디 기계에서 가능했던 측정 기능들을 대거 이전한 축소형 인체 측정기였다. 그래서 인바디 밴드는 광범위한 헬스케어 기능을 흡수한 스마트 워치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의료 선진국이라는 일본·북미·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대체로 체성분 분석기라는 개념에 어리둥절해한다. 그리고 두세 가지 질문들을 덧붙인다. 그 하나는 “의사도 아닌 일반인이 왜 그런 전문 지식이 필요해”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알면 뭐가 좋아” 혹은 “그걸 알아서 뭘 할 수 있는데”다. 이런 반응을 받을 때마다 필자의 반응은 ‘글쎄…. 그러게 말이야’였다.
인바디 BMI 예시
인바디 BMI 예시
들불처럼 번지는 스마트 워치에도 이런 합리적 의심을 적용할 때다. 특히 기존 스마트 폰과의 기능적 중복을 감안하면 그것이 단순히 패션 아이템이거나 물리적 잉여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쉽게 접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최근 출시된 스마트 워치는 첨단 바이오 센서를 장착해 헬스케어 기능을 대폭 강화했고 그 결과 초소형 통신 기기라는 잉여 정체성에서 벗어나 첨단 웨어러블 의료 기기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렇다. 21세기에는 뭐니 뭐니 해도 몸이 주된 수익의 근원인 점을 생각하면 지당한 선택이다.

실제로 최신 스마트 워치는 인바디에서 가능했던 체질량지수(BMI : Body Mass Index) 측정 기능의 대부분을 이식해 왔다. 조만간 인바디는 기획된 진부화의 유탄을 맞고 신체 테크놀로지 박물관으로 짐을 싸게 될지도 모른다.

바이오헬스 테크놀로지로 진화한 스마트 워치는 체온·심박수·혈압·심전도·혈중 산소 포화도 등 전문 검진센터에서나 제공하던 신체 지수들을 언제 어디서나 정밀하게 측정해 준다. 여기에 수면 분석 기능까지 추가돼 수면 시간, 수면 질 변동은 물론 심지어 코골이 시간, 기침 빈도, 잠꼬대까지 기록한다.

단숨에 거울·만보기·인바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밀하고 전문적인 보디 체킹의 플랫폼으로 등극했다. 이와 함께 보디 체킹의 중심을 몸의 외관에서 감지하기 힘든 내부 대사와 생화학적 공정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당장 올해 출시될 제품부터 무채혈 혈당 측정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요컨대 스마트 워치는 보디 체킹과 전문 의료 진단 간의 경계를 허무는 교란 테크놀로지다. 그렇다면 스마트 워치는 보디 체킹이라는 부정적 심리 현상도 스마트하게 업그레이드해 줄 수 있을까. 몸속 곳곳의 대사와 상태를 시시각각 인지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한 불안과 불만에서 벗어나 수치적 근거를 토대로 한 자신감과 합리적 대처 능력을 갖추게 될까.
늘 몸에 부착돼 있으니 혹시라도 더 높은 빈도와 더 심한 강박으로 보디 체킹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고도의 정밀성을 갖춘 만큼 안심 폭도 커지겠지만 역으로 작은 수치상의 변동에 더 민감해져 신체 상태에 대해 과한 감시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결국 이 복잡하고 전문적인 수치들은 자신에게 힘이 될까, 아니면 병이 될까.

테크놀로지는 그 자체가 어떤 결정력을 지닌 독립적 에이전시(agency)가 될 수 없다. 방향성을 좌우하는 힘은 그 테크놀로지를 고안하고 활용하는 사회의 가치와 지향, 집체적 정서와 습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마트 워치에 대한 섣부른 예단 대신 강박적 신체 측정, 즉 보디 체킹의 본질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역설적이게도 보디 체킹은 신체가 아닌 심리에서 시작하고 심리로 귀결된다. 남들에 비해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정서, 자신을 과소 평가하고 혹독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습성화, 그것이 보디 체킹의 본질이다.

학벌·재산·직업 등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던 이 ‘심리적 왜소 증후근’이 또 하나의 슈퍼 스펙으로 자리 잡게 된 몸 그리고 외모로 확장된 것이다. 습성화된 보디 체킹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기저 심리에는 권위적 차별 사회와 서열적 상품 시장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배양된 왜소 증후군 바이러스가 득실거리고 있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