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를 위한 위기론 강의② 2010 유럽발 경제 위기

Z세대를 위한 위기론 강의② 2010 유럽발 경제 위기
“그때 금리 사다리는 누가 치웠을까”[Z세대를 위한 위기론 강의②]
“자본주의는 광기, 패닉, 붕괴의 연속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찰스 킨들버거는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지난 400년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금융 위기를 분석하고 이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그의 결론은 ‘광기·패닉·붕괴’다. 킨들버거는 수십여 차례의 금융 위기를 분석한 결과 신용 팽창 이후 부동산·주식 시장에서 버블이 커지고 결국 붕괴됐다고 주장한다.

2023년 미증유의 위기가 온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기준금리는 왜 치솟고 있을까. ‘광기·패닉·붕괴’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수차례 경기 상승과 하강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스쳐 지나갈 이야기가 아니다. 위기는 언제나 되풀이된다. 다른 경험이 다른 대응을 만든다. Z세대를 위한 위기론 강의, 둘째는 상승 곡선을 그리던 금리가 다시금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던 2011년의 이야기다.유동성 버블, 그리고 붕괴“호랑이 그리려다 개를 그렸다.”

2011년의 증시 폐장을 하루 앞둔 12월 28일, 당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그해의 증시를 이같이 평가했다.

시작은 좋았다.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대규모 유동성 정책으로 경기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치솟는 물가를 잡아야 할 때였다. 한국은행 역시 지난 17개월의 동결을 깨고 2010년 7월부터 단계적인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2011년 1월 열린 통화 정책 방향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신흥 시장국 경제가 호조를 지속하고 있고 선진국 경제도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 가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배경을 밝혔다.

시장은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2011년 연쇄적인 대내외 충격이 세계 경제를 다시금 강타했다. 정상화를 염원했던 한국도 직격타를 맞았다.
“그때 금리 사다리는 누가 치웠을까”[Z세대를 위한 위기론 강의②]
첫 타자는 일본이었다. “동일본 대지진 충격으로 국내외 금융 시장이 요동쳤습니다. 코스피지수는 장중 40포인트가 넘는 변동 폭을 보였고….”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쪽 바닷속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세계 역사상 넷째로 큰 지진으로 평가된 이 지진은 사망자만 1만5000여 명에 달했고 후쿠시마 원전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피해를 남겼다. 세계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경제에 끼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예상하지 못한 시점의 초대형 악재였어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코스피지수가 다시 2000선을 돌파하고 레벨업을 꿈꾸던 때였죠.” 당시 증권사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정 모 씨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불안 심리를 기억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보다 피해 규모가 큰 데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여진으로 세계 경제의 기초 체력이 많이 떨어진 가운데 터진 대형 참사였다. 일본 주식 시장은 단 이틀 만에 전체 시가 총액의 약 25%가 사라졌다. 더 큰 공포는 ‘엔화’였다. 지진 직후 엔화는 약세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1달러를 사는 데 필요한 엔화가 적어졌다는 뜻).

일본은행은 금융 시장 안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에 나섰다. 3월 14일 사실상 ‘제로 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수십조원대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했다. G7도 사안의 심각성에 엔화 급등 저지에 나섰다. 위태로운 출발이었다.
“그때 금리 사다리는 누가 치웠을까”[Z세대를 위한 위기론 강의②]
미국도 2008년 12월부터 유지하고 있는 제로 금리를 더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2011년 6월 “경기 침체가 끝난 지 2년이 지났지만 회복세가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리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역대 최저 수준인 기준금리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8월 5일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 3대 신용 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미국의 신용 등급이 하락한 것은 국가별 신용 등급이 발표되기 시작한 1941년 이후 7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인은 2년여의 대규모 경기 부양으로 누적된 ‘국가 부채’였다.PIGS의 대두, 유로존의 모순살얼음판이었다. 아시아·유럽·미국 등 어느 하나 안전지대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유럽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약칭 PIGS) 등 일부 남유럽 국가의 재정 문제로 인한 국제 금융 시장 불안이 2008년 말부터 지속되고 있었지만 “유로존에서 어려움을 겪는 국가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힘을 합쳐 도울 것”이란 슈타인 브뤼크 전 독일 재무부 장관의 발언처럼 유로존의 중심축인 독일을 중심으로 한 해결책이 기대를 모으던 때였다.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킨 주도국이자 최대 수혜국인 독일이 유로존 내 위기 발생 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책임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당시 영국은 유로존 회원국이 아니어서 경계선을 그을 수 있었고 프랑스는 자국 민간 은행들이 PIGS 국가들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점염 효과에서 안전하지 않았다).

예상은 또 한 번 빗나갔다. 2010년 2월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는 주변국에 대한 통상적 범위의 구제 조치에는 동의하면서도 그리스만을 위한 특정한 도움은 거부함으로써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독일 내에서는 ‘시장 논리’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는 여론이 싹트기 시작했다. 독일의 미온적 태도에 프랑스는 깊은 우려를 전했고 그 사이 재정 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유럽을 잠식했다.

2011년은 유로존 점염 효과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유로존은 유럽중앙은행(ECB)이란 하나의 신용 우산을 쓰는 개념이었다. 회원국 간에 국채를 사고팔았고 이는 곧 ‘상호 순환 출자’처럼 위기 발생 시 물고 물리는 연쇄 작용이 발생할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발 재정 위기가 정부 부채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국가들, 즉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리스가 디폴트되면 스페인, 그다음은 이탈리아 그리고 그다음은 이들의 국채를 쌓아 둔 프랑스 민간 은행이었다.

미국에도 그리스 사태는 골칫거리였다. 유럽 은행들의 미국 자회사나 지점은 미국 가계와 기업에 많은 자금을 대출해 준 상태였다. 유로존의 금융 위기가 곧 미국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도화선이었다. 결국 그리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과 미국이 손잡았다. 당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IMF 지분 17%를 행사해 그리스를 지원하고 EU의 지원을 요청하는 메르켈 총리도 돕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IMF가 실상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며 개입을 반대했지만 뾰족한 묘수가 없었다. EU·ECB·IMF로 구성된 위원회가 그리스를 비롯한 재정 위기 유럽 국가들에 정책을 지시하는 ‘트로이카’가 구성됐다. 트로이카의 지휘하에 그리스의 긴축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됐다. 공공 부문 임금은 삭감됐고 퇴직연금 나이는 상향 조정됐다. 해고가 일상화됐고 세금도 인상됐다. 트로이카의 1~2차 구제금융을 거치며 그리스의 경기 불황은 더 극심해졌지만 민간 부문의 채무자들, 즉 유럽의 금융회사들은 기사회생의 여력을 얻었다. 하지만 디폴트 상태에 빠진 그리스를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1년 약 4%대를 기록했던 그리스의 10년물 국채 이자율은 2009년 6%를 돌파하더니 2011년 말 35%까지 치솟았다.

트로이카는 BNP파리바·도이체방크·알리안츠 등 그리스 국채 투자가들에게 헤어컷 조건을 내걸었다. 액면 가격의 46.5%만 건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부채를 탕감받는 그리스에는 ‘도덕적 해이’논란이, 53.5%를 잃은 채권자들에게는 강력한 반발이 따랐다. 하지만 그리스를 구하지 않으면 유럽 국가의 연쇄 부도가 확실시됐다. 유로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채권자들이 손을 들었다. 그리스 사태가 진정되는 국면이었다.

그리스발 재정 위기의 불똥이 튄 다른 PIGS 국가들도 촌각을 다투는 처방이 필요했다.

2008년 금융 위기의 해법은 대규모의 ‘양적 완화’였다. 트로이카의 해결책 역시 양적 완화가 대두됐다. 유로존 회원국이 갹출한 자금(독일 27%, 프랑스 20% 등)을 기반으로 PIGS의 단기 국채를 매입하는 유럽재정안정기금이 출범했다. 이에 더해 ECB가 1%의 저금리로 유로존 은행들에 3년간 장기 대출하는 프로그램이 출범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기획한 일명 사르코지 트레이드로 불리는 ‘장기 대출 프로그램(LTRO)’이다. ECB는 통상 3~4%의 금리로 단기 대출을 해 왔기 때문에 1% 장기 대출은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유동성을 공급하는 LTRO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치솟던 이탈리아·스페인의 국채 값이 안정을 되찾았다. 초저금리 정책으로 급전이 필요한 PIGS는 기사회생했지만 비(非) PIGS 국가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는 ‘유로존의 구조적 모순’을 품에 안고서….

세계는 그 후 저금리의 늪에 오랜 시간 발을 담근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양적 완화를 고수한 미국과 그리스발 유로존의 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저금리 기조를 삼은 유럽 그리고 수순에 발맞춰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기조가 상당 기간 진행됐다. 금리 인상이 곧 금융 위기란 인식이 짙게 깔렸다. 당시 한국금융원은 보고서에서 “Fed의 금리 인상은 1990년대부터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항상 부정적 영향을 끼쳐 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2013년 출구 전략을 펼치려고 했지만 글로벌 경제에 전해질 충격파에 금리 인상은 2015년 말에야 진행됐다(0∼0.25%였던 기준금리를 0.25∼0.5%로 높이기로 결정). 7년 만에 찾아온 ‘제로 금리’ 시대의 종언이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