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현실이 만든 방산 경쟁력
외신 “K방산, 글로벌 메이저리그 진입”
러·우 전쟁이 만든 씁쓸한 호황…죄악주에서 수출 효자로

[비즈니스 포커스]

한경비즈니스는 1년에 두 번 합본호를 냅니다. 설날과 추석 2주치를 한꺼번에 낸다는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때 약간은 숨을 돌릴 여유를 갖습니다. 물론 온라인 기사도 써야 하기 때문에 마냥 맘이 편할수 만은 없지만요. 이 정도로는 좀 아쉽다는 독자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경비즈니스 편집진은 올해 썼던 기사 가운데 ‘시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기사들을 추려봤습니다. 공부해두거나 읽어두면 상식이 되거나,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는 12개의 기사입니다. 이를 한곳에 정리했습니다. 연휴 기간 영상에서 벗어나 활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독자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육군이 K2 흑표 전차로 대규모 기동 화력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육군 제공
경기도 포천에 있는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육군이 K2 흑표 전차로 대규모 기동 화력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육군 제공
K-방산이 글로벌 방산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폴란드 국방부는 지난 7월 K2 전차(현대로템)·K9 자주포(한화디펜스)·FA-50 경공격기(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한국산 무기 3종을 대량 구매했다.

K-방산 3종 세트의 1차 수출액은 12조원 규모로 향후 10년여간 3차에 걸친 수출액을 모두 합치면 최종 수출 규모는 25조원에서 최대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폴란드가 최근 한화디펜스의 다연장 로켓(MLRS)인 ‘천무’를 288문(8조원 규모 추정) 도입하기로 결정해 또 한 번의 폴란드 수출 잭팟을 터뜨렸다.

천무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군 정밀 타격에 활약하고 있는 미국제 하이마스 다연장 로켓과 유사한 기능을 갖춘 동시에 최대 300km 떨어진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 가격 측면에서도 탄약을 제외하고 대당 30억원 정도로 대당 50억원인 하이마스의 60% 수준이다.

당초 폴란드는 미국에서 하이마스를 추가 구매하려고 했지만 미국 측의 생산 능력과 요구 사항 등으로 지체되자 당장 내년 1차 인도분을 받을 수 있는 천무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전투기·전차·자주포 등 무기 수요가 늘면서 K-방산이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7∼2021년 5년간 한국의 무기 수출은 직전 5년(2012∼2016년) 대비 약 177% 증가했다. 미국 CNN은 “폴란드·호주 등과의 무기 계약으로 한국이 방위 산업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의 꿈이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 천무 기본 계약식에서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오른쪽)가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폴란드 국방부 제공
폴란드 천무 기본 계약식에서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오른쪽)가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폴란드 국방부 제공
한국산 무기로 푸틴에 맞서는 폴란드

폴란드가 한국의 방산 물자 구매를 결정한 데는 인접 국가인 우크라이나에서 올해 2월부터 발발한 전쟁의 영향이 컸다.

러시아가 맹방 벨라루스의 도움을 받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의 동부 최전선으로 러시아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됐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폴란드의 안보도 위태로워진다. 전쟁 발발 직후 폴란드가 준전시 상태에 돌입한 이유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600km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러시아군은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불과 200km 떨어진 벨라루스의 군 기지에 진을 쳤다. 폴란드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셋째로 많은 18억1000만 달러어치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한 것도 이번 침공을 남의 일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올해 5월 우크라이나 의회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1cm라도 러시아에 내줘선 안 된다.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서방 전체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는 자국으로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전투 무기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로 인한 안보 공백을 채우기 위해 한국산 무기를 선택했다. 폴란드가 원하는 수량의 무기를 당장 공급해 줄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한국은 유일한 분단 국가라는 특수한 정치적 배경과 사방이 강대국에 의해 둘러싸인 반도 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징에 의해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기술력과 안정적 제조 능력을 동시에 갖추게 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세계 8위 수준에 이른 국방 과학 기술력은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사태와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에서도 K-방산은 77.2%에 달하는 방산 물품 국산화율에 힘입어 안정적인 부품 조달이 가능했다.

독일 레오파르트 2A7 전차는 대당 약 160억~200억원으로 50대 생산하는 데 5년이 걸리지만 한국의 K2 전차는 대당 약 80억~100억원으로 3년 만에 180대 납품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템의 K2전차는 한국의 독자 기술로 개발돼 현재 한국군의 주력 전차로 활약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한국은 70년 동안 전쟁에 대비한 나라로, 무기 품질도 최상급”이라고 무기 계약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면서 신속한 대량 납품, 기술 이전, 맞춤형 모델로 현지 생산까지 가능한 곳은 한국뿐이다.

추가 수주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폴란드는 3월 통과된 국토방위법에 따라 국방비 지출을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2.2%에서 2023년 최소한 3%로 늘린 이후 5%까지 계속 증액할 계획이다.

폴란드는 다연장 로켓 천무에 이어 또 다른 한국산 무기체계인 한화디펜스의 ‘레드백(AS-21)’ 장갑차 도입도 검토 중이다. 슬로바키아와 리투아니아도 한국산 무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수출 확대에 따라 사후 정비, 부품 교체 등 수십년간 발생하는 애프터 마켓 시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60여Km 떨어진 폴란드 동남부 지역인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전력 중 하나인 미군의 대공미사일 패트리엇 PAC-3, PAC-2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 나토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유럽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며 방위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60여Km 떨어진 폴란드 동남부 지역인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전력 중 하나인 미군의 대공미사일 패트리엇 PAC-3, PAC-2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 나토는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유럽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며 방위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군비 경쟁에 수출 200억 달러 돌파 눈앞

K-방산의 주문 폭주가 이어지면서 올해 방산 수출액도 역대 최대치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이미 지난해 수출액(70억 달러)을 돌파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연말까지 호주 레드백 장갑차(50억~75억 달러)와 말레이시아 FA-50 경공격기(7억 달러), 노르웨이 K-2 전차(17억 달러), 이집트 K-2 전차(10억~20억 달러) 등의 수주에 성공하면 200억 달러(약 28조80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산업연구원은 추정했다.

연간 수출 30억~40억 달러에 불과했던 K-방산에 러브콜이 쏟아지는 이유는 신냉전 도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자주국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가 재무장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각국의 군비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국방비는 2021년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돌파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국방비 지출액은 미국이 8010억 달러로 압도적 1위를 유지했고 중국은 2930억 달러로 뒤를 이었다.

2010년대 초 금융 위기 여파로 전 세계 국방비 지출액은 감소 추세였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병합하면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응해 방어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의 국방비 지출은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 등이 국방비 증액을 선언하면서 올해 유럽의 군사비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비 축소 기조를 유지해 왔던 독일은 올해 6월 헌법 개정을 통해 1000억 유로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조성하고 군 현대화를 위해 미국 스텔스 전투기 F-35 35대와 이스라엘 헤론 TP 드론 140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돋보기]
블랙리스트 올랐던 방산, 전쟁 이후 ESG 편입 움직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 속에서 도박·담배 등과 함께 ‘죄악주’로 불리며 투자 기피 대상이 됐던 방산을 바라보는 자본 시장의 시선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ESG 투자가 확산하면서 한화·LIG넥스원·풍산 등 방산 업체는 집속탄·대인지뢰 생산 등을 이유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기업’에 분류되며 해외 연기금과 투자 펀드들의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왔다. (주)한화가 ESG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2020년 비인도적 무기로 평가받는 분산탄 사업을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쟁을 계기로 방산 업체 투자 배제 원칙이 안보상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일각에선 방산 업체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서 방산 업체들은 ESG의 기본적인 인권 목표인 민주주의 수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출 5% 이상을 방산 관련 부문에서 얻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무조건 금지했던 스웨덴 SEB은행은 지난 4월부터 6개 펀드의 방산 업체에 대한 투자를 재개했다. 전쟁이 ESG 투자에 대한 관점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