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조상 땅, 정부가 매각
후손들 국가 상대 소송냈지만 패소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상 땅 찾기’를 통해 몰랐던 조상의 토지를 찾았다면 땅을 돌려받거나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최근 대법원은 “후손이 발견하기 전 정부가 다른 사람에게 매도했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후손이 받을 돈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후손들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지적공부가 없어진 조상 땅을 정부가 팔아 부당 이득을 챙겼다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제3자에게 매도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023년 1월 26일 토지 주인 A 씨의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했다. 국가가 A 씨에게 줘야 할 부당 이득금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A 씨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 평택 일대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후 6‧25전쟁으로 토지대장이 사라졌다가 1977년 소유자 기재 없이 토지대장이 복구됐다. 정부는 1986년 A 씨가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았다는 점을 모르고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마쳤다. 이후 1997년 이 토지를 5499만원에 B 씨에게 매도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A 씨의 후손들은 2017년 B 씨를 상대로 ‘조상 땅 찾기’ 소송을 냈지만 결국 패소했다. B 씨가 등기하고 점유한 지 10년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 씨의 후손들은 “정부가 소유자가 있는 땅을 잘못 등기해 손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심 “5499만원 배상”

1심은 A 씨 후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정부가 소유자 기재가 없는 미등기 토지에 대해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마친 것은 국유 재산에 관한 권리 보전 조치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아울러 ‘토지의 진짜 소유자가 따로 있다’는 점을 정부가 알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소유권 보존 등기 과정에서 고의·과실에 의한 공무원의 위법 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 배상을 기각한 것이다.

2심에서 A 씨 후손들은 예비적 청구로 부당 이득금 반환을 추가했다. 국가가 땅을 팔면서 받은 매매 대금은 부당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2심은 국가 배상에 대해선 1심과 마찬가지로 기각했지만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에선 원고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국가는 아무런 권원 없이 이 사건 토지를 처분해 5499만원의 이득을 얻었다”며 “원고들은 토지 소유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으므로 부당 이득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법 “부당 이득 반환 의무 없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타인 소유의 부동산에 관해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마친 무권리자가 그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한 경우를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제3자의 등기부 취득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는 소유권 보존 및 이전 등기가 모두 무효라고 했다. 이 같은 경우에는 원소유자가 소유권을 상실하지 않기 때문에 돌려줘야 할 부당 이득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처럼 등기부 취득 시효가 완성된 경우가 문제가 된다. 소유권 상실이라는 실제 손해가 발생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등기부 취득 시효가 완성된 경우 원소유자는 소급해 소유권을 상실함으로써 손해를 입게 된다”면서도 “그러한 손해는 물권 변동의 효과일 뿐 무권리자와 제3자가 체결한 매매 계약의 효력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권리자가 소유자 있는 부동산에 관해 원인 없이 등기를 마치고 제3자에게 매도해 등기를 마쳐 준 후 제3자의 등기부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무권리자가 원소유자에 대해 제3자로부터 받은 매매 대금에 관한 부당 이득 반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알기 쉽게 설명함)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무권리자가 원소유자에게 손해 배상 책임은 부담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경우 원소유자는 부당 이득 반환이 아닌 손해 배상 청구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처럼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 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국가 배상 청구는 기각될 수 있다.


[돋보기]
국가가 무단 점유한 조상 땅…“원고에게 증명 책임”

“조상 땅을 돌려달라”는 다른 소송에서 대법원은 오랜 시간 점유해 도로로 사용한 땅이라면 국가가 무단으로 점유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국가 소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토지대장이 잘못 작성됐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쪽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 대법원은 C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말소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파기 환송하면서 이같이 판단했다. C 씨는 경기 파주시에 있는 도로가 자신이 상속받은 땅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913년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에 의해 작성된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이 땅은 C 씨의 증조부 소유로 기록돼 있다. 6‧25전쟁으로 멸실됐다가 1961년 복구된 토지대장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78년 이 땅의 토지대장상 소유자명이 C 씨의 증조부에서 ‘소유자 미복구’로 정정됐고 1996년 국가 명의로 바뀌었다.

C 씨는 공무원의 착오로 토지대장 변경이 이뤄졌다며 증조부로부터 받은 땅을 달라고 했다. 1심과 2심은 C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에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말소하라고 선고했다. 토지대장이 복구됐을 당시 땅 소유자로 C 씨 증조부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가가 토지 취득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더라도 국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쳤을 가능성이 있어 국가 점유권을 함부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국가가 소유권을 적법하게 취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단 점유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토지 지적공부가 관계 공무원의 착오로 잘못 작성됐다는 증명 책임은 국가가 아닌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일제강점기부터 이 사건 토지를 도로로 점유·관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자주 점유의 추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 법률 용어 풀이
▶지적공부 : 지적공부는 토지대장·임야대장·공유지연명부·대지권등록부·지적도·임야도 및 경계점좌표등록부 등 지적 측량을 통해 조사된 토지의 표시와 해당 토지의 소유자 등을 기록한 대장 및 도면을 말한다.
▶등기부 취득 시효 : 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선의·무과실로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하는 제도다.
▶자주점유 :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있는 점유를 말한다. 즉 타인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점유다.


최한종 한국경제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