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섬뜩하지요. 하지만 생존이란 그런 것입니다. 가능성이 낮은 번식보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높은 생존을 택한 것이지요. 진화의 결과입니다.
사람은 좀 다를까요.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도 나무 두더지의 선택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생존과 번식 가운데 생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적인 판단이 더해졌지만….
오래전 얘기를 잠깐 해 보겠습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 가물가물합니다. 해는 넘어가고 놀다 지쳐 집에 돌아갈 때 쯤 학교에 가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저녁반 친구들이었습니다. 학교는 부족하고 애들은 많아 오전·오후·저녁반 등 3부제를 하던 시절입니다. 1970년대 후반입니다. 현재 50대와 40대 후반인 1964년생부터 1974년생까지 매년 90만 명 넘게 태어난 영향이었습니다. 먹고살기는 힘들었지만 많이 낳았습니다. 아마 아이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농경 사회의 문화가 남아 있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결혼 후 대략 2명 정도를 낳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애는 낳아 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사회적 낙관이 깔려 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인식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해 평균 60만 명이 넘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1997년 말 터진 외환 위기는 사회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낙관은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일자리는 줄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1990년대 태어난 세대는 더 심한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또 아이들이 나보다 더 고통스럽게 사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도 싫었을 것입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일타 스캔들’은 청소년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단면을 보여줍니다.
이면에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과 인식의 급속한 변화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한 해 태어나는 아이는 30만 명 밑으로 줄고 출산율은 0.7명대로 떨어졌습니다. 2100년 인구는 18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저출산, 인구 감소의 현장을 스케치했습니다.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난제란 의미로 ‘아포리아’란 단어를 가져왔습니다.
한국 사회는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역동적이란 말이 진짜 어울리는 듯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나라, 외환 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고등교육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반면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1위, 출산율은 세계 꼴찌 수준입니다. ‘캐나다는 지루한 천국이고 한국은 재밌는 지옥’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인 듯합니다.
이런 현상은 정치학자 김영명 한림대 교수의 말대도 단일성과 밀집성이란 조건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 살다 보니 사회는 획일성·집중성·극단성·조급성·역동성을 갖게 됐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는 서구 사회가 300년에 걸쳐 이룬 발전을 수십 년 만에 성취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밀도 높게 축적된 경험과 에너지는 K-콘텐츠의 기반이 되기도 했습니다. 부정적 측면이 발현된 수치는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이 대표적이겠지요.
‘저출산 문제’가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께입니다.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단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정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정책 패키지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협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프랑스의 출산율을 높였다는 계약 제도, 스웨덴을 출산율 반전의 모범 사례로 만든 육아 휴직 급여와 아동 수당, 한국에서 유일하게 출산이 늘고 있다는 세종시 사례 등 모든 방안을 한꺼번에 검토해야 합니다. 육아·교육·일자리·가사 노동·출산·경력 단절·이민 그리고 남성들의 인식 변화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지만 사회 인프라를 통째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인구 감소의 재앙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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