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아이폰 업데이트로 인한 소비자 피해 단정 못 해”
삼성도 유사한 소송 진행 중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있는 애플스토어 잠실점을 찾은 시민들이 애플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 있는 애플스토어 잠실점을 찾은 시민들이 애플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며 한국 소비자들이 집단 손해 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 제기된 똑같은 소송에서 소비자들이 수천억원의 합의금을 받아 낸 것과 대조적인 결과다.

전 세계 강타한 ‘배터리 게이트’ 소송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지숙)는 2023년 2월 2일 소비자 9850명이 애플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병합된 사건까지 더하면 원고는 6만2000여 명, 청구 금액은 127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집단 소송이었다.

일명 ‘배터리 게이트’로 알려진 이 사건의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은 2017년 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아이폰 6시리즈와 7시리즈, SE 모델 등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아이폰 운영체제(iOS)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은 뒤 휴대전화의 성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와 같은 논란은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이에 소비자들은 곧장 “애플이 신형 아이폰 판매를 늘리기 위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떨어뜨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애플은 같은 해 12월 28일 공지문을 통해 “해당 업데이트에는 예기치 않게 전원이 꺼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작업 부하가 최고치에 이를 시 전력 관리를 향상시키는 조치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성능 저하를 인정한 셈이었지만 새 제품 구매를 유도하려는 조치가 아니라 제품 전원이 꺼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배포한 업데이트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하면 표준 환경에서 성능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사건 업데이트로 휴대전화의 성능을 영구적으로 저하시킬 수 있는 결함을 야기했다”며 2018년 3월 1인당 20만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성능이 저하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용자들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다만 애플 측은 “소비자들은 이 사건 업데이트를 통해 어떤 재산상 손해가 있는지 입증하지도 못했다”며 “전원이 예기치 않게 꺼지는 현상을 방지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 휴대전화의 효용을 감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다”고 맞섰다.

법원 “해당 업데이트, 반드시 손해는 아냐”

재판부는 소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성능 저하 자체에 대해 재판부는 “성능 저하는 사용자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기재한 것에 불과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은 미국 정보기술(IT) 평가 사이트에서 성능 실험을 한 결과 업데이트로 인해 아이폰 성능이 이전보다 40~88% 수준으로 저하됐다고 주장했다”면서도 “그러나 이 실험이 어떤 조건에서 진행된 것인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저하된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객관적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당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휴대전화의 성능을 영구적으로 저하시킨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능이 일부 제한되더라도 꺼지지 않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어 반드시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애플 측은 2018년 이 사건 성능 조절 기능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성능 제한이 영구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휴대전화 판매를 늘리기 위한 애플의 고의적 성능 저하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애플은 예기치 않은 전원 꺼짐의 원인이 노후화된 배터리라고 판단해 2018년 4월 배터리 교체 비용을 일부 인하해 제공하기도 했다”며 “신형 모델의 구매를 유도하고자 했다면 아이폰6 시리즈보다 먼저 출시된 모델에도 해당 업데이트를 배포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은 점을 봤을 때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美에선 6000억원대 합의한 애플

해당 업데이트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에서 소비자 집단 소송이 잇달았다. 미국에서는 대규모 소비자 소송이 시작됐고 캘리포니아·애리조나 등 34개 주 정부도 애플을 상대로 행정적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애플은 2020년 3월 구형 아이폰 사용자 한 명당 25달러(약 3만400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합의금은 최대 5억 달러(약 6000억원)로 추산됐다. 애플은 같은 해 11월 행정 당국에도 총 1억1300만 달러(약 1375억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칠레에서도 2022년 4월 소비자 약 15만 명에게 총 25억 페소(약 38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재판부는 애플이 다른 국가에서는 합의를 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분쟁을 조기 종결시키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애플의 경영적 판단이 들어가 있다”며 “합의 결정문에도 업데이트로 인한 결함이나 위법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기록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돋보기]
서울 시내 삼성전자 스토어에 진열된 갤럭시S22 시리즈.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삼성전자 스토어에 진열된 갤럭시S22 시리즈. 사진=연합뉴스
삼성도 ‘GOS 의무화’ 사건 법원에

삼성전자도 유사한 사건을 겪고 있다. 일명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사건’이다. GOS는 모바일 내에서 고성능을 요구하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경우 기기의 초당 프레임(1초 동안 바뀌는 화면의 이미지 수)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려 기기의 상태를 최적화(옵티마이징)하는 갤럭시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이다.

이는 갤럭시 S7 모델부터 탑재된 기능이었지만 이를 끌 수 있는 우회로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022년 2월 갤럭시 S22를 출시하며 발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GOS 기능을 의무화했다. 장시간 게임할 경우 기기 발열로 인해 소비자가 저온 화상을 입거나 심하면 배터리 폭발로 이어질 수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22 시리즈 3종을 공개하면서 “역대 가장 강력한 갤럭시 S 시리즈”, “갤럭시 스마트폰 최초로 탑재한 4nm(나노미터·10억분의 1m)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업무나 일상생활 어디서든 강력한 성능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음에도 해당 기능을 누릴 수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었다.

소비자 측은 “스마트폰의 성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S22가 중급형 모델인 갤럭시 A52S의 성능보다 떨어진다”며 “구매자에게 아무런 안내 없이 GOS를 의무화했고 이로 인해 구매자들은 삼성전자가 강조했던 갤럭시 S22의 성능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삼성전자는 업데이트를 통해 갤럭시 S22 모델에 GOS 기능 의무화를 해제했지만 한국의 소비자 1885명은 해당 논란에 대해 1인당 30만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삼성전자 측은 “게임에 관한 구체적인 클럭 속도, FPS, 해상도 등의 성능을 광고하지 않았고 오히려 게임 시에 성능을 최적화하고 온도·배터리 등을 최적의 상태로 조절한다고 기재하고 있다”고 맞서는 중이다.

현재 사건은 1심에 계류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해당 사건을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조사 중인 만큼 공정위의 결론이 나온 이후에야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