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요금 억눌러 ‘난방비 폭탄’ 한 원인, 연금 개혁도 미뤄…“현 정부도 네 탓할 때 아냐”
홍영식의 정치판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2월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석유·액화천연가스(LNG)·석탄 등 발전 연료비가 오르면 요금에 자동 반영하는 것이었다. 직전 3개월간 에너지 평균값에서 과거 1년간의 평균 가격을 뺀 뒤 그 편차에 비례해 전기료를 분기마다 조정하자는 것이다. 전기료 인상 또는 인하 요인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였다.2021년부터 이 제도를 실시해야 했지만 유명무실화됐다. 연료비가 올랐음에도 그해 2~3분기 요금을 인상하지 않았고 4분기엔 kWh당 3원 올렸지만 1분기 3원 내린 것을 감안하면 연간으론 요금을 묶어 버린 것이다. 그해 말 정부는 이듬해 전기료와 가스료 인상 스케줄을 발표했다. 그런데 1분기에는 동결해 버렸고 전기료는 대선(3월 9일 실시) 다음 달인 4월과 10월, 가스요금은 5, 7, 10월 각각 나눠 올리기로 했다. 결국 2022년 4분기에는 전기료가 7.9%(4인 가구 월평균 3590원), 가스료는 16.2%(4600원) 뛰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요금을 동결해 버렸고 차기 정권에 그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차질 등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임기 내내 묶어 놓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요금을 한몫에 대폭 올리기로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 인상 몫은 윤석열 정부가 감당하도록 한 것이다. 대선 전 요금을 올린다면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국 한꺼번에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는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정책이다. ‘내 임기 동안은 인기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님트(NIMT : Not In My Term)’ 행태이기도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스료와 전기료는 2022년 2월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더 폭등했다. 2023년 1월 전기료는 1년 전보다 29.5% 올랐다. 같은 기간 도기가스 요금은 36.2%, 지역 난방비는 34% 뛰었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려 1월 5.2%나 폭등했다.
전기·가스료 인상 시기 7차례 놓쳐, 한전 등 최악 적자
문재인 정부는 전기·가스 요금 인상 시기를 7차례나 놓쳤고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최악 적자로 이어졌다. 그에 따른 부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꺼번에 폭탄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부는 2022년 가스 도매 요금(주택용 기준)은 4·5·7·10월 네 차례에 걸쳐 1메가줄(MJ : 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5.47원 올렸다. 1년 새 인상률이 42.3%에 달한 것이다. 가스요금은 2023년 1분기에는 동결됐지만 2분기 이후 상당 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전기료는 2022년 4월·7월·10월 kWh당 19.3원 인상됐다. 2023년 1분기에 13.1원 더 올랐다. 이는 겨울철 난방이 필요한 농수축산물·음식값·공공요금 등 인상을 더 자극해 물가 폭탄을 가져올 수 있다.
볼썽사나운 것은 정치권이 난방비 폭등 원인을 놓고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초 수급 대상자와 차상위 계층에 난방비를 지원하는 정부 대책에 대해 “여론 눈치나 보며 흥정하듯 ‘찔끔 대책’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며 “공공요금 폭탄을 예방하지 못했으면 적어도 피해를 줄이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요금을 억눌러 놓았다가 한꺼번에 터지게 한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난방비 폭탄의 근본 원인인데도 이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고 윤석열 정부 비판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소득 하위 80% 가구에 10만~25만원씩 나눠 주자는 에너지 고물가 지원용 7조2000억원, 코로나19 부채 이자 감면 12조원, 지역 화폐 증액 1조원 등이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 폭탄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추경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금 살포는 수요를 자극해 물가 상승을 더 자극하고 민생에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새해 예산 집행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추경 얘기를 꺼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 국민에게 전기·가스 요금을 지원하게 되면 전기·가스 절약에도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 때 국가 채무가 크게 늘었다. 2017년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 채무는 2022년 말 1069조8000억원으로 409조6000억원 폭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도 36%에서 49.7%로 치솟았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횡재세로 추경을 감당하자고 한다. 지난해 큰 영업이익을 거둔 정유사에 추가로 소득세를 물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유가가 내려 손실을 볼 경우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항변한다. 실제 2020년 유가가 전년 대비 21% 떨어져 정유 4사가 약 5조원 손실을 봤을 때 손실 보전을 받지 못했다. 횡재세를 부과하는 영국 등 석유 메이저 기업들은 직접 석유를 채굴하고 있다. 원유를 수입해 정유한 제품을 파는 한국 정유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정유사들의 주장이다.
정부·정치권,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것 피해
문재인 정부의 NIMT 행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더 내고 더 받는’ 방안 등을 마련했지만 “보험료 인상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제동을 걸었다. 복지부는 그해 말 △소득 대체율(40%)·보험료율(9%) 모두 현상 유지 △현상 유지에 기초 연금만 40만원으로 인상 △소득 대체율 45%, 보험료율은 12%로 올리는 방안 △소득 대체율 50%,보험료율 13%로 올리는 방안 등을 마련해 결정을 국회로 떠넘겼다. 표에 불리하다고 본 여야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했다. 정부 국회 모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을 피한 것이다. 결국 국민연금 개혁은 물 건너갔고 이 역시 윤석열 정부로 넘어왔다. 그러는 사이 고갈 시점은 점점 더 일러졌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연금 재정은 2041년 적자로 전환되고 기금은 2055년 소진된다. 소진 시점이 5년 전 4차 재정 추계 때 예상보다 2년 앞당겨졌다. 개혁을 미룬 결과다.
건보의 재정 수지도 문재인 정부 이후 악화일로다. 2017년 20조원이 넘은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7년 모두 소진되고 2028년에는 한 해 적자가 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질적인 과잉 의료 탓이 크지만 건보 개혁을 미루고 보장성을 확대한 ‘문재인 케어’의 영향도 적지 않다. 고용보험기금은 2017년 말 10조원이 넘었지만 5년 만에 고갈됐고 적자 규모는 5조원에 이른다. 실업급여를 방만하게 운영한 탓이 크다. 최저임금에 비해 실업급여 실수령액이 더 많다 보니 몇 달 일하다가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반복해 타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NIMT의 그늘은 이렇게 짙고 넓다.
하지만 현 정부도 전 정부 탓만 하기에는 사정이 다급한 만큼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당 일각에서도 추경 주장과 함께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의 61%에 해당하는 중산층까지 난방비를 지원하자고 하는 것은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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