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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리뷰] 미국 공화당 차기 대권 주자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치른 미국 중간 선거를 기점으로 공고해 보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플로리다 주지사가 공화당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한 USA투데이의 공화당 대선 후보 가상 대결 여론 조사에서 디샌티스 주지사는 56%의 지지를 얻어 33%에 그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크게 앞섰다. 다음 날 발표한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서도 디샌티스 주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14%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다섯 달 전만 해도(에머슨대 조사), 디샌티스 주지사가 33%나 뒤처졌던 것을 고려하면 최근 상승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정권마다 뒤바뀌는 미국의 환경 정책
이러한 상승세를 반영하듯 디샌티스 주지사에 대한 지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대통령은 좀 더 분별 있고 중도 성향의 인물이 되길 바란다”며 디샌티스 주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공화당에 가장 많은 정치 자금을 기부한 헤지펀드 시타델의 케네스 그리핀 CEO,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과 폭스뉴스를 소유한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도 디샌티스 주지사의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주의는 불확실성과 함께하는 제도다. 주기적 선거를 통해 집권 세력이 결정되고 권력을 잡은 정치 세력은 자신의 가치와 비전에 따라 정책을 추진한다. 이 때문에 어떤 정당의 누가 권력을 잡는지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백팔십도 바뀌기도 한다.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ABC(Anything But Clinton)’, ‘ABO(Anything But Obama)’ 등 전 정권과 반대 정책을 추진한다는 뜻의 약어가 등장하는 등 이러한 경향성이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여러 정책 중 환경 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 지향성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영역이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캐나다에서 생산한 타르샌드 오일을 미국 텍사스 정유 공장까지 연결하는 송유관 확장 사업인 키스톤XL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다. 2008년 제안된 이 사업은 중간 선거를 통해 다수 의석을 차지한 공화당 주도로 2014년 상원과 하원의회를 모두 통과했지만 이듬해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해당 법안의 승인을 거부했다. 2017년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곧바로 이 사업을 다시 추진했지만 여러 법정 분쟁을 거치는 사이 2021년 다시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최종적으로 취소됐다. 10여 년 동안 정권의 지향에 따라 승인과 거부를 계속 반복한 것이다. 기후 변화 또한 미국 정치권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미국은 정권에 따라 기후변화협약의 가입과 탈퇴 그리고 재가입을 반복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불확실성은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경제와 기업 경영에는 중대한 위협 요인이다. 더구나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위치를 놓치지 않는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세계 경제와 국제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다음 선거는 2024년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다. 우리는 이미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및 기후 변화 정책을 경험했다. 지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는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에 자리했지만 ESG와 기후 변화 정책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진보 진영 후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 미국 대선과 관련해 남아 있는 가장 큰 불확실성은 공화당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외 인물이 후보가 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경우다.
반ESG 선두에 선 환경주의자
디샌티스 주지사는 1978년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와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2010년까지 해군에 복무했고 2012년 하원의원에 선출돼 3연임했다. 2017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상대 민주당 후보를 0.4%포인트 차이로 꺾고 주지사에 당선됐다. 지난해 중간 선거와 함께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는 59.4%를 득표해 상대 후보를 19.4%포인트라는 압도적 차이로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워크 자본주의와 반ESG 투자
디샌티스 주지사는 종종 ‘리틀 트럼프’라고 표현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민·낙태·성 다양성 등 주요 사회 이슈와 관련해 강경 보수주의적 시각을 취하기 때문이다. 특히 디샌티스 주지사는 최근 공화당에서 확산되고 있는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 논쟁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워크 자본주의는 ESG 투자 또는 경영에 적극적인 금융인과 기업인을 ‘깨어 있는 척’한다고 비꼬는 표현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플로리다 주 정부의 ‘부모의 교육권리법’에 반대한 디즈니에 대한 감세 혜택을 폐지하는가 하면 플로리다 퇴직연금의 ESG 요소 반영 금지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고 ESG 투자에 적극적인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에 위탁해 운용하던 20억 달러의 자산을 회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식 환경주의자
하지만 디샌티스 주지사를 단순한 강경 보수주의자 또는 트럼프주의자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환경에 대한 디샌티스 주지사의 시각은 그를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장 차별화하는 요소다. 그는 스스로를 ‘시어도어 루스벨트 환경주의자’라고 칭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26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독과점 철폐, 사회복지 확대, 노동자·여성 권익 증진 등 상당히 진보적 정책을 추진했고 다수의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등 자연 보호를 통해 미국적 삶의 가치를 지키고자 한 것으로 유명하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주지사 당선 후 설탕 기업의 정치 자금을 거부하고 이들 기업의 반대를 극복하고 에버글래이즈 습지 복원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블루-그린 조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플로리다의 수질·수생태계 보호를 적극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야생 보호를 위해 11만3000에이커에 달하는 토지를 수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그의 친환경 정책은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주의적 환경 단체의 지지를 얻었다.
기후 적응 OK, 온실가스 감축 NO
디샌티스 주지사가 플로리다 주지사에 취임한 2019년 1월은 허리케인 마이클이 플로리다를 강타한 지 3개월 만이다. 자연스럽게 그의 취임 후 첫 책무는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 복구였다. 디샌티스 주지사의 기후 변화 정책은 찬반이 엇갈린다. 미국에서도 기후 변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플로리다 주지사답게 디샌티스 주지사는 다른 공화당의 정치인과 다르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후 변화 적응 정책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는 취임 후 곧바로 최고과학책임자(CSO)를 임명하고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 등에 대응하기 위한 방조제 등 플로리다 지역의 기후 회복력 강화를 위한 정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기후 변화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사용을 회피하거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는 반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태도를 주지사로서 책무와 다수 공화당원의 기후 변화에 대한 시각을 동시에 고려한 의도적 모호성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플로리다는 대선 때마다 “여기서 이기면 선거는 끝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대선을 결정짓는 최대 경합주(swing state)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1928년 이후 플로리다의 승자가 최종 대선 승자와 일치하지 않은 경우는 단 세 번밖에 없었다. 디샌티스 주지사가 단숨에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번 주지사 선거에서의 대승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방해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공화당 내 디샌티스 주지사에 대한 지지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의 정치 상황과 대선 후보군의 정책 방향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고 대비해야 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21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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