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전에 존재하던 건물 사진이나 동영상 등 객관적 자료를 통해 가능

[똑똑한 감정평가]
이미 철거가 끝난 건물도 감정 평가 할 수 있나?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에서 현금 청산자가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 소송에서 수용 재결 무효 판결이 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합은 과거의 수용 재결에 따라 적법하게 현금 청산자의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한 상태에서 사업 진행을 위해 건물을 철거했었다. 수용 재결 무효 판결이 나자 건물이 철거되고 무려 5년 이상 흐른 뒤 다시 수용의 각 절차가 시작됐다.

하지만 없어진 건물에 대해 계속 감정 평가 불가 판정이 나고 있었다. 지주로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한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사람의 건물은 무효인 수용 재결에 의해 멸실됐는데 이로 인해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토지나 건물이 신도시·공원·산업단지 또는 도로 등 공익 사업에 편입되거나 재개발 사업에서 현금 청산을 하게 되면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게 된다.

보상금은 감정 평가로 결정되는데 토지보상법상 보상금에 이의 신청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협의 보상, 수용 재결, 이의 재결 그리고 행정 소송의 4단계에서 피수용자가 부동산에 대한 보상금을 다시 감정 평가 받을 수 있는 길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토지보상법에서는 ‘수용의 개시일’에 지주의 소유권이 사업 시행자에게 이전된다고 규정하는데 시간의 순서로 따져보면 보상금 이의 절차의 둘째 단계인 수용 재결 감정 평가 후 이의 재결(이의 재결을 거치지 않고 바로 행정 소송하는 경우엔 행정 소송 감정 평가) 감정 평가 이전에 사업 시행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는 수용의 개시일이 존재한다.

살펴본 것처럼 피수용자는 수용 재결 이후로도 여전히 두 차례 더 보상금에 불복할 수 있는데 이때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수용의 개시일에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사업 시행자가 언제라도 건물을 철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의 재결이나 행정 소송 등의 방법으로 보상금에 대한 이의 신청이 진행되고 있는데 막상 평가 목적물인 건물이 이미 사라져 버린 경우가 왕왕 있다. 솔직히 감정인은 현장 조사를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멸실된 건물에 대해 기존의 감정 평가와 다른 평가액을 결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멸실돼 물건 확인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철거 전에 존재하던 건물에 대한 사진이나 동영상 등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존재한다면 법에서 보장하는 피수용자의 권리인 이의 신청 과정에서 감정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온당하다.

서두에서 소개한 사례처럼 수용 재결 무효로 인해 건물이 다 철거되고 난 후 다시 수용 절차가 시작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수용 재결 이후 지속되는 이의 절차에서 감정 평가를 하려고 보니 이미 건물이 사라진 상황은 꽤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동산에 대해서는 감정 평가 역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나 건물 수리‧지출 내역, 시가를 입증할 만한 감정 평가 등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면 멸실 부동산에 대한 평가 자체가 어렵다. 이에 따라 멸실 부동산에 대한 감정 신청에는 불능 회신이 많다.

서울행정법원은 “손실 보상금 증액 청구의 소 수용 재결에서 정한 손실 보상액보다 정당한 손실 보상액이 더 많다는 점에 대한 입증 책임은 원고 측에 있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공익 사업에 편입되거나 또는 재개발에서 현금 청산을 선택했을 때 법에서 보장하는 보상금 이의 신청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함께 건물의 철거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건물이 철거되고 난 후에도 감정 평가가 가능하도록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박효정 로안감정평가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