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참 세상 살기 쉽지 않습니다. 뭔가에 적응할 만하면 새로운 게 또 튀어나오니 말입니다.

2021년 봄, 메타버스란 단어가 대유행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해봐야 했습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플랫폼 제페토에 가입하고 아바타를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만들었는데 들어가 뭘 해야 할지 몰라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며칠 후에는 얘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접었습니다. 지금도 제 아바타는 가상 공간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직전에는 음성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클럽하우스가 유행했습니다. 그것도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가입해 기웃거려 봤습니다.

아재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투쟁은 그 이전에도 치열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는 블로그와 트위터, 이후 2010년대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2020년대에는 구독 경제니 뭐니 해서 넷플릭스·웨이브·티빙·밀리의서재, 젊은 친구들은 다 쓴다는 리멤버와 링크트인·에버노트·노션까지…. 다행히 뉴스레터는 안 써 스티비는 배우지 않아도 됐습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50대의 노력이 처절하지 않습니까?

이제 숨 좀 돌릴까 했는데 ‘아놔’. 요즘 그 뭐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챗GPT란 게 나왔습니다. 눈치를 보니 다들 해본 듯했습니다. 후배가 물어보면 태연한 표정으로 “당연히 알지”라고 답하고 밤에 몰래 들어가 한 번 해봤습니다. 안 되는 영어로 막 물어보고 써 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느낌이 팍 왔습니다. “큰 놈이 왔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챗GPT를 다뤘습니다. 이 한 권으로 챗GPT의 기초는 커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다양한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기대에 부푼 관련 기업들, 챗GPT에 대해 부정적인 교수님들의 얘기 등을 담았습니다.

잠깐 구글 트렌드도 들여다 봤습니다. 메타버스와 클럽하우스는 거의 검색량이 바닥 수준이었습니다.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반짝하다가 쑥 들어간 듯합니다. 그러나 챗GPT 등 생성형 AI는 다를 것이란 감이 옵니다. 누구나 쓸수 있고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획을 하며 약간 당황한 것은 챗GPT가 메타 인지(?) 능력까지 학습했다는 사실입니다. 미안하다고 할 줄도 알고 자신의 한계도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똑똑하냐는 질문에 챗GPT는 “나는 인간이 아니며 인간과 같은 텍스트를 생성할 수는 있지만 인간과 같은 지능, 감정 또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답합니다.

자신이 한 말도 뻔뻔하게 부인하고 사과도 할 줄 모르고 학습은 하지 않고 일이 잘못되면 남 탓하는 일부 인간들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AI의 진화에 따른 부작용은 곳곳에서 보입니다. 바둑판이 대표적입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한 번이라도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된 이후 바둑 기사들은 AI와 연습하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세계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는 중국 리시안하오가 경기 도중 AI의 도움을 받는 ‘치팅’을 했다는 의혹으로 두 달째 시끄럽습니다. 바둑인들이 리시안하오가 경기 도중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을 문제 삼자 화장실에 전파 차단 장치를 다는 우스꽝스러운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AI가 메타 인지 능력을 갖추고 학습을 통해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영화 ‘A.I.’는 다시 한 번 볼 만합니다.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아이 로봇 데이비드가 엄마인 모니카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로봇의 감정에 동화돼 버립니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버리려는 엄마에게 울부짖습니다. “제가 사람이 아니라 죄송해요, 제발 날 버리지 마세요. 허락하시면 사람이 될 게요.” 오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엄마는 죽어 가며 말합니다. “사랑한다, 데이비드. 너를 언제나 사랑해.” 데이비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인간과 AI의 정서적 교감은 가능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되는 대사는 이 로봇을 만든 기업 회장의 몫이었습니다. 한 교수가 질문합니다. “로봇이 한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그 인간은 그 대가로 로봇에 무슨 책임을 져 줄 수 있나요?” 회장은 답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 받으라고 아담을 창조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적 대사였습니다.

진화하는 AI를 생각하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인 듯합니다. 이 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제작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기획하고 스필버그에게 맡긴 것이라고 합니다. 원작은 영국 작가 브라이언 올디스의 ‘슈퍼토이의 길고 길었던 마지막 여름’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를 기획하고 이 소설의 판권을 사들인 것은 언제인지 아십니까? 1969년이었습니다.
미래는 늘 현재 사고의 결과였습니다. 2023년 겨울 우리는 미래에 대해 무슨 상상을 하고 있을까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