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언어·다문화를 핵심 경쟁력으로
정재계 포진해 막강한 영향력 발휘
인도계 출신은 이미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아프리카 등 각국 정계와 산업계에 포진해 있다. 인도의 주요 수출품은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인도계 CEO’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등장 이후 인도계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낵 총리는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면서도 보수당의 전형적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영국 최고 명문 사립고교와 옥스퍼드대, 미국 스탠퍼드대를 거쳐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헤지펀드 파트너 등으로 일했고 2015년 하원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입문한 뒤 테리사 메이 전 총리 내각을 거쳐 2020년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미국 부통령·영국 총리도 인도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의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 최초의 흑인·아시아계·여성 부통령이 됐다. 외가는 인도 카스트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집안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 등을 거쳐 2017년 캘리포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며 중앙 무대에 진출했다. 2020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직전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낙점돼 부통령에 올랐다. 해리스 부통령이 취임했을 때 그의 외가가 있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시골 마을에서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미국에서 인도계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인을 출신별로 보면 인도계가 400만 명으로 중국계(410만 명)에 이어 둘째다.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인도계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인도계 미국인의 소득과 수입, 교육 수준은 아시아계 미국인 중 최고를 자랑하며 전체 인종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인도계 미국인은 약 460만 명으로 경제·정치·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도는 한국·중국·일본과 함께 아시아계 이민 집단 중 유일하게 서방의 주류 사회에 진입했다. 인도계 미국인은 컴퓨터과학·재무관리·의료 등 고소득 분야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인도계 미국인의 평균 중위 소득은 11만9000달러(약 1억5000만원)로 미국 전체 가구의 평균 중위 소득인 6만1800달러(약 7900만원)의 2배에 달한다.
산업계에서 인도계의 영향력은 더 막강하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인드라 누이 전 펩시코 CEO도 인도계다. 인도 출신으로 구글 CEO에 오른 순다르 피차이는 인도공과대(IIT) 카라그푸르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펜실베이니아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4년 구글에 합류해 독자적인 브라우저인 크롬 개발을 주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입사 11년 만인 2015년 8월 구글 CEO에 올랐다. IIT는 인도 독립 이후 국가 재건을 이끌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인도 경영대학(IIM)과 함께 육성한 대학원 중심 국립 교육 기관이다. “IIT에 떨어지면 미국 MIT를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14억 인구 중 최고의 엘리트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죽어가던 MS 살린 나델라 리더십
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셋째 수장인 사티아 나델라 CEO도 인도계 이민자 출신이다.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태어나 인도 마니팔공과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 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2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다.
그는 2014년 CEO에 올라 개방 정책, 클라우드·모바일 퍼스트 전략, 공감의 리더십으로 관료화된 조직 문화의 틀을 깨고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저물어 가던 MS를 부활시킨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나델라 CEO가 취임한 2014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5년간 265% 이상 상승했고 2019년 1분기 시가 총액 2조 달러를 돌파했다. 나델라 CEO는 이 회사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아 지금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아온 존 톰슨에 이어 3대 이사회 의장이 됐다.
인드라 누이 전 펩시코 CEO는 전 세계에 진출한 인도 여성 중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펩시코 회장에 취임한 2006년부터 2018년 퇴임 때까지 펩시코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2017년 포천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2위를 올랐다. 인도가 보유한 국가 경쟁력 중 하나로 영어가 꼽힌다. 인도는 오랫동안 미국과 유럽 등 영어권 다국적 기업들이 지사와 콜센터를 앞다퉈 설립하는 1순위 국가였다. 영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을 저임금에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으로 승부를 봤다면 인도는 능숙한 영어와 정보기술(IT) 강국의 이점을 앞세워 아웃소싱 강국이 됐다.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후 힌디어와 영어를 국가 차원의 공용어로 지정했고 일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 영어에 익숙한 환경이다.
인도계가 전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주가드(Jugaad)’에서 찾을 수 있다. 주가드는 인도의 기업가 정신을 대표하는 힌두어다. 기발함에서 비롯된 즉흥적이고 독창적이며 혁신적인 해결책을 뜻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내 이를 기회로 삼는 경영 기법이다.
인도의 저력을 다양성과 포용성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인도는 다언어·다문화 국가다. 힌두교·이슬람교·기독교·시크교·불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힌디어·영어 외에도 공용어가 22개에 달한다. 다양한 종교와 인종·언어·사상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인도계 CEO들이 포용성과 신뢰의 리더십을 갖출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