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날짜는 예식장이 잡아줘’
백화점들은 혼수 시장 적극 공략
한편에선 양극화에 영세 업체 줄줄이 폐업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40대‧여) 씨는 운명의 짝을 만나 2020년 3월 혼인 신고를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결혼식을 미루다 올해 3월 2년 만에 식을 올린다. A 씨는 “대관 비용이 올랐는데도 자리가 남는 식장이 없어 애를 태웠다”며 “요즘에는 상견례보다 예식장 예약을 먼저 해야 하고 결혼 날짜는 예식장에서 정해준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고 말했다.

#B(30대‧남) 씨는 요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연차·반차·외출을 쪼개 예식장·예복 등을 보러 다니기 때문이다. 귀찮다고 대충할 수는 없다. 적어도 친구들이 한 만큼은 해야 한다. 예식장 밥이 맛없거나 예복·메이크업이 촌스러우면 뒷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한 번 하는 결혼 제대로 해야죠.”

# C(30대‧여) 씨의 하루는 각종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 방문으로 끝난다. 결혼 준비 카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다.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이벤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C 씨도 이따금씩 프러포즈를 어디에서 받았는지, 예물 브랜드는 뭔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등 인증 샷을 올린다. 자기 자랑도 있지만 게재 건당 리워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테로 결혼식을 미뤄 왔던 연인들이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최근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결혼식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예비 신혼부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늑장을 부리다간 원하는 날짜에 식장을 예약하지 못하거나 드레스와 턱시도를 구할 수 없다. 유명 웨딩 커뮤니티에는 ‘피부 관리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식전 영상 의견 구해요’, ‘혼수 견적 봐 주세요’, ‘결혼 박람회 체험 후기 공유’ 등 다양한 내용의 게시글이 하루에만 5000여 건 이상 올라온다.
◆올해 예약 가능한 예식장은 ‘0’

“올해 토요일 12시 예약은 꽉 찼습니다. 내년 2월까지도 마감입니다.”

서울 강남·반포·잠실·시청 등에 있는 인기 웨딩홀에 식장 예약을 문의한 결과 돌아온 답변이다. 성수기(3~5월, 9~10월)는 물론 비수기(한여름·한겨울)도 주말 황금 시간대(낮 12시 또는 2시) 예약이 마감됐다. 주말 저녁 예식 몇 자리만 비어 있는 상태다.

1인당 식사 가격이 15만~20만원 한다는 서울 시내 주요 특급 호텔 예식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올해 웨딩홀 예약이 90% 이상 완료됐고 서울 신라호텔과 롯데호텔서울도 올해 주말 예식 시간은 거의 마감됐다.

인기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업체의 예약도 빈 시간대를 찾기 어렵다. 김유진(30대‧여‧가명) 씨는 “웨딩 촬영 8개월 전 원하는 드레스와 메이크업 업체를 찾아 상담했는데 예약이 꽉 찼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수요가 몰리며 비용이 올랐다. 유명 인플루언서 등이 결혼하면서 입소문이 난 청담의 한 웨딩홀은 1인당 식대가 12만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식대 값은 그대로지만 주류비와 플라워 장식 등 부대 비용이 오르면서 총 비용은 5000만원(식대 200명 기준)을 넘어섰다. 1년 만에 15% 정도 올랐다.

2000만원대의 식장도 가격이 뛰었다. 강남과 반포 두 곳의 웨딩홀을 운영하는 업체는 1인당 식대를 지난해(5만5000원)보다 25% 올렸다. 홀 대관 비용은 80만원 높여 630만원으로 책정했다. 총 비용(식대 200명 기준)을 계산하면 2700만원이다. 이는 지난해 대비 17% 오른 수치다.

한남준(50대‧남‧가명) 씨는 “요새 식대를 고려하면 축의금은 적어도 10만원은 해야 한다”며 “주말마다 결혼식이 있어 이번 달엔 4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오픈런 뛰고
백화점은 멤버십 명품 품목 늘리고

혼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예비 신혼부부 사이에선 기왕에 하는 결혼식을 더 화려하게 치르고 싶다는 심리가 지배적이다. 1000만원이 넘는 침대 매트리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고가의 예물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며 기다리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까르띠에‧티파니앤코‧피아제 등 명품 브랜드의 인기 웨딩 반지는 오픈런(매장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에 성공해도 이미 재고가 없다. 피아제 포제션 링(약 360만원)은 최소 6개월, 최대 1년 동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수요에 주목하며 프리미엄 웨딩 마케팅에 힘주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가장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롯데웨딩멤버스’ 사업에 명품 브랜드와 제휴를 확대 중이다. 올해 프로모션에는 프라다·생로랑·로저비비에 등 명품 브랜드를 추가했다. 샤넬·디올·설화수·에스티로더 등 럭셔리 뷰티 브랜드도 포함했다. 외부 제휴도 강화했다. 예컨대 롯데웨딩멤버스 회원이 BMW 자동차를 구매하면(2월 28일까지) 기존에 유료로 제공되던 ‘BMW 에어포트 서비스(차량 보관 및 셔틀 등 인천 공항 이용시 편의 제공)’를 무료로 이용하는 식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웨딩멤버스 회원 중 에비뉴엘 등 우수 회원으로 전환하는 확률이 30%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큰손을 사로잡는 록인 효과(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소비자를 묶어 두는 것)를 누릴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롯데웨딩멤버스의 2022년 신규 회원 수는 2021년 대비 20%, 2019년 대비 300% 늘었다. 2022년 1인당 구매 금액은 1년 사이 30% 증가했다. 특히 같은 기간 명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5%포인트 높아졌다.

현대백화점도 예비 신혼부부 전용 멤버십 프로그램 ‘더클럽웨딩’을 운영하고 있다. 2022년 신규 가입자는 2021년 대비 19%, 2019년 대비 10.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각각 31.1%, 71.3% 늘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프리미엄 혼수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이에 따라 명품·주얼리·워치·리빙 상품군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극심해진 예식 양극화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다만 웨딩업계의 호황은 일부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결혼 적령기인 30대 안팎 인구가 급감한 가운데 결혼을 포기하거나 비혼을 선언하는 청년층이 늘었다. 이들 대부분이 강남의 유명 웨딩홀과 스드메 업체를 선택하고 있다. 서울 외곽의 예식장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이유다.

통계청과 국세 통계 포털 등에 따르면 서울 시내 예식장 수는 2018년 192개에서 2022년 11월 143개로 25.5% 줄었다. 같은 기간 전국 예식장 수는 1030개에서 759개로 26.3% 감소했다. 결혼 건수는 2020년(21만3502건), 2021년(19만2507건) 각각 전년 대비 10.7%, 9.8% 줄었다.

웨딩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웨딩 산업의 구조 조정이 시작됐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하는 추세”라며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이 고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일반인도 럭셔리 웨딩을 선호하고 있다. 비용이 부담되면 차선으로 강남 지역의 예식장을 선택한다. 반면 웨딩홀을 포함해 영세 스드메 업체들은 손님이 끊겨 아사 직전”이라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