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거래액 매년 2.5배씩 증가…‘공간 와디즈’ 등 온라인 넘어 오프라인 공간까지 진화 중

[비즈니스 포커스]
와디즈의 첫 '메이커스 데이'. 사진=와디즈
와디즈의 첫 '메이커스 데이'. 사진=와디즈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한 도넛 가게. 1986년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 작은 마을을 지켜 온 가게였지만 2000년대 초반 대형 프랜차이즈가 동네에 들어오며 이 가게 역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아끼는 가게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9명의 경찰들이 도넛 가게를 살리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투자를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후원으로 폐점 위기에서 벗어난 이 가게는 9명의 경찰들이 인수해 ‘경찰과 도넛(Cops & Doughnuts)’이라는 상호를 달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많은 이들의 마음이 십시일반 모여 변화를 만들어 낸 이 이야기는 나중에 ‘경찰과 도넛’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소개되며 널리 사연이 알려졌다.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투자 받는 ‘크라우드 펀딩’의 시초가 된 이야기다. 이처럼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 크라우드 펀딩은 2000년대 초반 등장해 2022년 기준 16억7000만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해 왔다. 아직 성공 사례가 부족한 초창기 스타트업이나 잠재력이 큰 예술가 등 기존의 금융에서 자금을 수혈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 기회’를 부여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한국 크라우드 펀딩의 시초는 2012년 5월 설립된 ‘와디즈’다. 10년 동안 와디즈는 대한민국 크라우드 펀딩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디즈 플랫폼은 해마다 2.5배씩 꾸준히 증가하며 지난해 4분기 기준 와디즈 플랫폼 내 누적 거래 중개 금액(GMV)은 8400억원을 돌파했을 정도다. 누적 거래 금액 1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동안 와디즈를 통해 오픈한 프로젝트만 해도 4만7000여 건, 참여자는 780만 명을 넘어선다.

와디즈는 한국의 대표 플랫폼으로 끝없이 도전해 왔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발굴해 금융과 인프라를 지원하는 ‘직접 투자’, 성공한 펀딩의 재오픈 및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유통을 돕는 ‘프리오더’, 기부와 자아실현을 목적으로 펀딩을 열고 지지하는 ‘개인 후원 펀딩’ 등 크라우드 펀딩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 크라우드 펀딩의 역사를 만들어 온 와디즈의 ‘결정적인 순간’, 일곱 장면을 꼽았다.

장면1. 와디즈 플랫폼보다 ‘크라우드 펀딩 연구소’ 먼저 설립…왜?

신혜성 대표는 2012년 와디즈를 창업하기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현대자동차·동부증권·KDB산업은행 등 제조업과 금융업을 두루 거쳤다. 은행에서 기업 금융 업무를 담당하며 500여 개가 넘는 기업을 방문하면서 기발한 사업 아이템이 있어도 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업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담보가 없어 은행이나 벤처캐피털의 대출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곳들도 수두룩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금을 수혈하는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때마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때였고 연결의 힘을 잘 이용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작은 돈의 힘’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금융과 유통을 결합한 새로운 산업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각자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와디즈 플랫폼을 출시하는 데 앞서 ‘크라우드펀딩산업연구소’를 먼저 시작했다. 국내외 크라우드 펀딩 성공과 실패 사례를 수집해 책으로 펴냈다. 100회가 넘는 크라우드 펀딩 강연을 했다. 플랫폼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익숙해져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었고 그의 전략은 성공했다.

장면2. “첫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시킨다”…발로 뛰어 일궈 낸 성공률 60%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서비스다. ‘메이커’라고 불리는 창작자나 기업들은 아직 시중에 선보이지 않은 제품을 플랫폼에 선보인다. 일종의 ‘베타 버전’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이 베타 버전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대중은 플랫폼 내에서 메이커들이 올린 다양한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 투자한다. 메이커의 목표 펀딩 금액만큼 많은 대중이 펀딩에 참여하게 되면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구조다.

물론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메이커의 아이디어가 ‘대중’의 공감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와디즈와 같은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메이커들이 목표한 금액을 펀딩 받을수 있도록 ‘대중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와디즈 플랫폼을 론칭한 이후 신 대표와 직원들이 가장 공을 들였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온라인 서비스임에도 와디즈 직원들은 ‘자금 수혈’이 필요한 유망한 기업들을 찾아다녔고 이들이 필요한 자금을 모아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도록 수많은 관계자들을 만나며 의견을 듣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 결과 와디즈 플랫폼에 베타 버전으로 올라온 프로젝트 5개 중 3개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후 정식 서비스가 출시되면서는 100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장면3. 기부, 소셜 캠페인의 태동…영철버거 프로젝트

영철버거는 고려대 앞에서 운영하며 유명세를 탄 햄버거 브랜드다. 2002년 노점상으로 시작해 ‘1000원 버거’로 이름을 날리며 ‘고대의 명물’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하지만 2009년 고급화 전략의 실패로 2015년 6월 문을 닫게 됐다. 가게가 문을 닫은 후 이영철 대표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학생들에게 연락을 받게 된다. 저마다 5000원, 1만원씩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영철버거를 다시 살리자는 것이었다. 와디즈를 통해 진행된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뒀다. 2600여 명이 참여하며 하루 만에 2000만원, 2주 만에 7000만원을 모았다. 온라인을 통해 여러 사람의 지지와 응원을 확인한 영철버거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와디즈는 이후에도 다양한 기부나 소셜 관련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2019년 고성 산불로 공장을 잃은 ‘노가리닷컴’의 재기를 위한 프로젝트, 곰 보금자리 건립을 추진하는 프로젝트, 간호사 인식 개선 캠페인 ‘널스노트’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0년의 역사 동안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돈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장면4. ‘링티’의 시작과 함께했던 와디즈…세상에 없는 것을 발굴하는 PD의 역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넘쳐나는 공간인 와디즈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잡은 기업들도 적지 않다. 지금은 ‘마시는 링거’로 잘 알려진 ‘링티’도 그 시작을 와디즈와 함께했다. 이원철 링티 대표는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었다. 훈련을 받아 쓰러진 군인들에게 수액이 즉각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물에 타 마시는 수액인 ‘링티’를 개발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어떻게 상품화하고 많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알릴까였다. 와디즈는 국방부와 협업을 통해 군의관이 개발한 제품인 링티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펀딩은 대성공을 거뒀다. 2017년 창업 첫해, 링티가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투자 받은 금액은 1억6000만원 정도였지만 지금 링티는 38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링티 외에도 와디즈를 통해 첫선을 보인 후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제품을 선보인 기업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와디즈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고 많은 사람들의 투자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프로젝트들이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기획하며 선보이는 PD(Project Director)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돌돌이 클리너’라는 상품은 기능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PD가 디자인 변경을 제안했고 파스텔 톤의 시즌 컬러를 입힌 뒤 다시 출시해 크게 성공을 거뒀다. 기업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자처하며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가며 와디즈가 한국의 ‘킥스타터’로 성장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와디즈
사진=와디즈
장면5. 전 세계 유일…와디즈에만 있는 ‘펀딩금 반환 제도’

와디즈는 2020년 크라우드 펀딩업계 최초로 펀딩금 반환 정책을 도입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크라우드 펀딩은 ‘집단 지성의 힘’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를 결정하더라도 기업 측에서 리워드를 배송하지 않거나 리워드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이때 ‘서포터’로서 투자에 참여한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펀딩금 반환 정책’을 도입하기까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킥스타터나 인디고고와 같은 대표적인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 업체들도 현재까지 노 리펀드(no refund) 정책을 고수 중이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고 오랜 시간 고민이 이어졌다. 그 끝에 다다른 결론은 전자 상거래법이 존재하는 한국의 환경과 문화의 특수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기준과는 별개로 한국식 크라우드 펀딩 산업의 환경에 맞는 와디즈만의 ‘펀딩 반환금 제도’를 구축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 1년 기준 평균 펀딩금 반환 비율은 전체의 1%대 정도다.

장면6. 대기업도 탐내는 유통 채널…신제품 출시 전 필수 코스 등극

크라우드 펀딩의 특성상 자본력이 부족한 중견 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의 자금 수혈 창구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기업들 또한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는 데 적극적이다.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고객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새로운 마케팅 채널로 크라우드 펀딩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특히 농심과 CJ 등 한국의 대기업 식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단백 100% 식물성 음료’, ‘올리브 바질 참치’, ‘푸드 업사이클링 스낵’ 등 프리미엄 먹거리 출시 무대로 펀딩 플랫폼을 선택한 것이다. 신제품의 개발 배경과 스토리를 공개해 새로운 고객의 시선을 끌고 신제품에 대한 평가를 받음으로써 정식 출시 전 수요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와디즈에 ‘비비코치킨&고수 만두’ 등의 프로젝트를 선보인 바 있다. 대상과 농심 등의 기업들도 신제품 개발 이후 첫선을 보인 곳은 바로 와디즈였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분식 세트를 출시하며 와디즈 펀딩을 진행한 바 있다.

장면7. 공간 와디즈, 와디즈 스토어, IP까지…크라우드 펀딩의 진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서비스 영역뿐만 아니라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거듭 진화하고 있다. ‘스몰 브랜드’들의 시작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펀딩을 넘어 서비스의 연결과 확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와디즈는 2020년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펀딩 제품을 오프라인에서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인 ‘공간 와디즈’를 열었다. 성수동에 자리 잡고 있는 ‘공간 와디즈’는 특히 2030세대가 편하게 드나들며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와디즈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2021년 프로젝트에서 성공한 제품들을 계속해 만나볼 수 있는 상시 판매 온라인 플랫폼인 ‘와디즈 스토어’와 중소 제조사와 팬덤을 보유한 빅 브랜드를 연결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IP 사업 ‘팬즈메이커’를 오픈했다. 2022년에는 백화점 팝업 진출 등 스몰 브랜드의 판로 개척과 스케일업 지원 ‘넥스트 브랜드’를, 2023년 특별 구성 제품이나 한정판 한국 단독 제품 등 보다 다양한 기업들에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프리오더’를 론칭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