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증권사 ①메리츠증권
부동산 PF 대출 부실화 사례 ‘0’, 중소형사에서 대형사로 고성장 신화의 비결

[비즈니스 포커스]
  •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자본 시장의 주역인 증권사들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2023 한국의 증권사’를 연재합니다.
메리츠증권은 어떻게 유일한 ‘1조 클럽’이 됐을까 [한국의 증권사 ①메리츠증권]
메리츠증권이 증권업 불황에도 지난해 연간 최대 실적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이례적인 특수 상황은 끝난 지 오래다. 2022년은 증시 불황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 등 증권업의 위기가 1년간 지속되며 증권사 다수가 직격탄을 맞은 해였다.

메리츠증권은 예외다. 메리츠증권만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달성했다. 메리츠증권의 좋은 실적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서 탄생했다. 부동산 금융으로 몸집을 키운 중소형사 메리츠증권은 어떻게 PF 위기를 극복하고 유일한 1조 클럽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한국 자본 시장의 주역인 증권사들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2023 한국의 증권사’ 시리즈 첫 순서로 메리츠증권을 정한 배경이다. 부동산 PF 대표 선수 “아니, 우리는 1년 6개월을 준비합시다.”

1년 전 메리츠증권의 유승화 리스크관리본부장은 주요 임원이 모인 간담회에서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리오프닝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낙관론은 물 건너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될 무렵이었다.

주요 임원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위기 상황”에 공감했다. 3개월, 6개월, 1년…. 위기 지속 기간을 얼마로 보고 유동성을 준비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쉽게 말해 회사가 아무런 영업 활동을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논의한 것이다. 유 본부장 역시 3개월, 6개월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말했다. “아니, 우리는 1년 6개월을 준비합시다.”

황당한 주문이었다. 2000년대 카드 사태 때에도 3~6개월이 논의됐을 만큼 6개월은 상당히 긴 기간에 속했다. 호흡이 짧은 증권사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의 3배, 하지만 그만큼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회사는 즉각 ‘쪼이기’에 돌입했다. 유 본부장도 리스크관리본부에 유동성 화두를 던지고 전략 세우기에 나섰다. 그를 비롯해 팀원들에게 ‘불가함’이란 없었다. 부동산 PF로 몸집을 키운 2000년대 후반부터 메리츠증권의 숙제는 늘 위기관리 능력이었다. 그만큼 ‘위기론’은 항상 메리츠증권을 뒤따랐다.

1973년 한일증권으로 출범한 메리츠증권이 몸집을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메리츠증권은 업계 10위권의 그저그런 중소형사에 불과했다. 경영진은 이대로 가다가는 성장은커녕 생존도 만만치 않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시장을 둘러봤다. 이때 전략적 선택지가 기업 여신과 부동산 PF였다. 종합 금융업(이하 종금업) 라이선스를 활용해 기업 금융 틈새시장 확보에 나섰다.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부동산 투자 분야는 메리츠증권이 대표 선수라는 인식이 생기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힐 정도였다.

메리츠증권은 2001년 증권사 중 처음으로 리츠(REITs : 부동산 투자 신탁)와 부동산 PF를 주업무로 하는 부동산금융팀을 신설했다. 2007년 증권업계 최초로 부동산금융연구소를 설립했다. 2007년 한 해에만 총 35건, 1조9006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대부분 금융회사가 부동산 사업에서 손을 뗐을 때도 메리츠증권은 과감하게 선순위 대출 시장에 진입했다. 막연하게 부동산 금융이라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만연했을 때 ‘미분양 담보 대출 확약’이라는 상품을 한국 시장에 최초로 출시해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이 취임한 2010년에는 해외 부동산 투자로 영역을 확대했다. 2012년부터 부동산 PF에서 벌어들인 이자 수익 덕분에 증권사 중 자기자본이익률(ROE) 1위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PF 부문은 메리츠증권이 가장 정예화·전문화돼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0년 메리츠증권 대표에 부임한 최 부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대부분 금융회사가 부동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을 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을 진행해 메리츠증권의 주요 수익원으로 만들었다. 다른 사업 부문에 비해 수익성이 더 높은 부동산 관련 사업에서 유의미한 성장을 이뤄 내며 증권업계에서 부동산 강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19년 말 금융 당국의 부동산 PF 규제와 2020년 종합금융업 면허가 만료됨에 따라 부동산 PF의 비율을 낮추고 국내외 부동산, 선박, 항공기, 해외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체 투자를 통해 꾸준히 신규 수익원을 확보했다. 업계에선 이런 최 부회장을 일컬어 ‘구조화 금융의 달인’이라고 칭한다.
2010년 메리츠증권 대표에 부임한 최 부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대부분 금융회사가 부동산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을 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을 진행해 메리츠증권의 주요 수익원으로 만들었다. 다른 사업 부문에 비해 수익성이 더 높은 부동산 관련 사업에서 유의미한 성장을 이뤄 내며 증권업계에서 부동산 강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19년 말 금융 당국의 부동산 PF 규제와 2020년 종합금융업 면허가 만료됨에 따라 부동산 PF의 비율을 낮추고 국내외 부동산, 선박, 항공기, 해외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체 투자를 통해 꾸준히 신규 수익원을 확보했다. 업계에선 이런 최 부회장을 일컬어 ‘구조화 금융의 달인’이라고 칭한다.
돈을 버니 인재도 따라왔다. 부동산 PF 분야의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이 메리츠증권에 모여들었다. 회사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과급을 제공하며 고급 인력을 유치하는 공격적인 인재 스카우트 전략에 나섰다. 성과에 따라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성과 중심 문화는 메리츠증권의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의 성장의 핵심은 부동산 PF를 통해 번 돈으로 선수들을 뽑고 그 선수들이 경쟁하면서 더욱더 큰 성과를 거둔 것에 기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었다. 사업 비율이 부동산 PF에 치중되자 부실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거나 부동산 시장에 문제가 생겨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50% 이하로 급락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면 메리츠증권에 유동성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메리츠증권을 비롯한 증권사들의 부동산 PF 우발 채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15년 말 메리츠증권의 자기 자본 대비 우발 채무 규모는 5조1223억원(자기 자본 대비 296%)으로 증권사 중 가장 높았다. 우발 채무는 장래에 일정한 조건이 발생했을 때 채무가 되는 것으로, 불확정 채무라고도 한다. 자금을 조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안전한 담보라면 문제되지 않지만 반대라면 리스크가 높아진다. 당시 메리츠증권은 대출과 신용 공여 제공 등으로 투자 위험을 수반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은행(IB) 사업 모델을 추진했기 때문에 우발 채무 규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메리츠증권의 자기 자본 대비 우발 채무 비율은 214.2%에 이르렀다. 그중 약 145%를 부동산이 차지했다. 타사와 비교해도 두 배 정도 높은, 증권사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였다. 메리츠증권 측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실제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화된 사례는 공식적으로 0건이었다.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20년부터다. 이 무렵 메리츠증권에는 제2의 성장 드라이브가 필요했다. 고수익 기반을 제공해 온 종금업 라이선스(면허)가 2020년 4월 만료되는 데다 금융 당국의 부동산 PF 규제가 강화되면서 메리츠증권의 고성장 신화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금융 당국은 2021년 7월까지 부동산 PF 채무 보증 규모를 자기 자본의 100%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는 규제안을 발표했다. 200% 안팎에 달했던 메리츠증권은 타격이 불가피했다. 2020년 재무 구조 개선 계획을 세우고 부동산 PF 관련 대출 자산과 우발 부채를 대폭 축소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자기 자본을 필요로 하는 영업을 줄이고 셀다운 등 중개 수수료 위주의 영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폈다. 그 결과 우발 채무가 2019년 8조5328억원에서 1년 만에 4조880억원으로 감소했다. 1년 만에 우발 채무를 4조5000억원 정도 줄인 것이다. 자기 자본 대비 우발 채무 비율도 89.9%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자본 적정성 지표는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시장의 우려는 다음을 향했다. 과거 종금을 겸했던 증권사들이 라이선스 종료 이후 수익성이 둔화된 만큼 메리츠증권 역시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분석이었다.종금업 떼도 사상 최대 실적 종금업을 떼고 메리츠증권의 진면목이 발휘되는 2020년, 시장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영업이익·세전이익·당기순이익 모두 파죽지세였다. 2017년부터 시작된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이 2020년과 2021년에도 이어졌다. IB 부문의 수익 비율이 소폭 줄었지만 때마침 코로나19 사태로 증권 업황이 호황이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대표된 주식 투자 열풍에 힘입어 위탁 매매 수익과 리테일 예탁 규모가 성장세를 이어 간 게 주효했다.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PF 관련 대출 자산과 우발 부채를 축소함과 동시에 트레이딩·파생상품·자산관리 쪽으로도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과거와는 차별화된 수익 창출이었다.

강점을 가지고 있는 IB 부문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냈다. 메리츠증권은 마곡MICE 복합 단지, 이태원 유엔사 부지 등 대규모 딜을 성공시켰다. 특히 마곡MICE 복합 단지 PF는 한국 증권업계가 나선 부동산 PF 사례 중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할 정도였다.

증권업의 호황이 지속된 가운데 2022년에도 리오프닝에 따른 낙관론이 펼쳐졌다. 하지만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연초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시중 자금이 은행의 예·적금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증권사에 돈줄이 말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증권사 수익 구조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PF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 경기 시장이 나빠지면서 모기업이 있거나 그간 충당금을 쌓아 온 건설사들은 버텼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형 건설사들이 자금을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급기야 레고랜드를 개발한 회사에 강원도가 2000억원 정도 보증을 섰는데 강원도지사가 그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면서 시장 경색은 빠르게 증권사의 목을 졸랐다. 증권사 수익의 꽃인 부동산 PF발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중소형 증권사의 도산 위기설이 흘러 나왔다.

대형사·중소형사할 것 없이 유동성 확보에 돌입했다. 부동산 PF 규모가 큰 메리츠증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메리츠증권은 오히려 상황이 좀 나았다. 부동산발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 연초부터 미리 리스크를 최소화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메리츠증권은 2022년 연초 CEO들의 판단에 따라 1년 치 이상의 유동성 확보에 돌입했다. 리스크관리본부를 필두로 총자산이익률(ROA)이 떨어지는 자산을 축소하고 투자의 가이던스를 상향하는 등의 계획을 완성했다. 심사역과 리스크관리 매니저들의 부문별 실무 협의회에서 1차 계획을 완성하면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점검하고 보완하는 난상토론이 여러 날에 걸쳐 계속됐다.

먼저 금리 인상 시 막대한 손실 우려가 있는 물량부터 처리해야 했다. 2021년 11~12월 메리츠증권법인 환매조건부채권(RP) 물량이 5조~6조원까지 올라갔지만 차익은 몇 베이시스포인트(bp, 1bp=0.01%포인트)되지 않은 저마진 상황이었다. 회사는 6조원 정도 되는 물량을 2022년 4월까지 모두 정리했다.

2022년 2분기에는 부동산 PF 등 채무 보증 규모를 조금씩 줄여 4분기에는 채무 보증 실질 순잔액이 3조6761억원으로 2분기 대비 5100억원 줄였다. 부동산 PF 대출은 수익보다 안전성을 중시해 선순위 확보에 주력했고 안정성을 높이는 장치도 마련했다.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빛을 발한 것은 3분기다.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화된 사례는 공식적으로 0건. 수익성보다 안전성을 중시해 선순위 확보에 주력한 결과 선순위 비율은 95%에 달했다. 평균 LTV는 50%, 담보 자산의 가치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도 원금 회수에는 지장이 없없다. 여기에 건설 중인 부동산을 차질 없이 준공, 완료할 수 있도록 자본력과 시공 능력이 튼튼한 A급 시공사와 책임 준공을 약정하거나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가 준공을 보장하도록 딜을 구조화한 것이 주효했다. 유 본부장은 “그동안 아무리 리스크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말해도 ‘자평’에 불과했다”며 “이제는 회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당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라며 “3분기에 리스크가 터졌지만 메리츠증권은 버틸 힘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호실적의 주역으로 꼽히는 Sales&Trading부문 총괄 장원재 사장. 장 사장은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에서 각각 CRO를 지낸 리스크 전문가다. S&T는 저마진의 캐리 북을 과감하게 축소함으로써 호실적 달성에 기인했다.
이번 호실적의 주역으로 꼽히는 Sales&Trading부문 총괄 장원재 사장. 장 사장은 메리츠금융지주와 메리츠화재에서 각각 CRO를 지낸 리스크 전문가다. S&T는 저마진의 캐리 북을 과감하게 축소함으로써 호실적 달성에 기인했다.
중소형에서 톱 플레이어로위기관리는 곧 수익으로 돌아왔다. 메리츠증권은 2022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1% 증가한 1조925억원을 달성했다.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달성한 것은 창사 이후 처음이다. 연결 기준 영업이익·세전이익·당기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메리츠증권은 어떻게 유일한 ‘1조 클럽’이 됐을까 [한국의 증권사 ①메리츠증권]
한국 증권사 중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긴 곳은 메리츠증권이 유일하다. 한국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2020년부터 2년 연속 영업이익 1조원을 넘겼지만 2022년에는 전년 대비 43.1% 급감한 8459억원에 그쳤다. ‘1조 클럽’이 속출했던 2021년과 달리 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내외 리스크로 촉발된 증시 불황에 주요 증권사 실적이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1조 클럽’ 간판을 유지한 메리츠증권을 바라보는 내·외부 평판도 크게 달라졌다. 메리츠증권의 2022년 4분기 말 기준 자기 자본은 5조6919억원이다. 12년 전인 2010년 이 회사의 자기 자본은 5250억원으로 업계 14위, 당기순이익은 200억원 수준인 중소형 증권사에 불과했다. 지금은 자기 자본 규모가 5조6000억원을 넘어서며 6위로 올라섰다. 톱 플레이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0년의 파죽지세 성장에 놀란 것은 업계 내 플레이어들이다. 일각에선 메리츠증권의 실적 성장에 어떠한 비결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요청도 나온다. 유 본부장은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CEO들이 참여하는 ‘딜 간담회’를 꼽는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에서는 주2회 정도 각 사업부서에서 올라온 거래(딜) 내용에 대해 집중 토론하는 딜 간담회를 연다. 이 자리에는 최희문 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 8인이 참석한다. 딜 간담회 참석 인사들은 각 사업부서에서 올라온 딜을 사전에 공부하고 간담회 자리에서 즉각 논의해 심사를 결정한다. 딜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실무진과 수평적인 대화를 진행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 심사를 거쳐 통과된 딜을 CEO들이 검토하는 타사와는 차별화된 방식이다. 타사의 경우 CEO에게 딜 구조를 설명하는 데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쓴 딜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회장은 불가피한 해외 출장 중에도 콘퍼런스콜 형식으로라도 이 회의에 참석한다. 유 본부장은 “하루에 올라오는 딜만 10~20여 건에 이르는데 한 거래당 자료량은 20쪽을 넘는 게 다반사”라며 “그런데 CEO들이 400쪽에 달하는 문서를 다 보고 들어온다. 최 부회장은 13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거 돈이 됩니까”다. 가격 정책(프라이싱)이 회사의 경영 철학이자 모든 의사 결정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프라이싱을 통해 시장 가격과 손익분기점(BEP)을 비교한 후 시장 진입을 결정한다. 메리츠증권이 뛰어드는 사업마다 ‘돈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내부 관계자는 “임직원을 비롯해 주주들이 걸린 문제니까 비즈니스에서 절대 호구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가격 정책에 기반한 철저한 성과 중심 문화는 메리츠증권의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메리츠증권은 성과에 따라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리테일 부서는 기본 급여 외에 성과에 따라 최대 50%를 회사와 직원이 나눈다. 이런 방식은 자칫 과도한 성과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많다는 점 또한 약점으로 지적된다. 메리츠증권은 2022년 3분기 기준으로 대형 증권사 중에서 계약직 비율이 62.2%로 가장 높다(계약직 비율이 가장 높은 증권사는 흥국증권으로 93.8%). 업계 한 관계자는 “발군의 성적에는 성과주의와 계약직 등의 이면도 존재한다”며 “이익만 놓고 평가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MINI 인터뷰]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메리츠증권 제공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사진=메리츠증권 제공
메리츠증권의 성장은 수많은 임직원들의 호흡과 부서 간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중에서도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호실적의 숨은 주역은 증권사의 브레인이자 인력의 화수분 역할을 하는 리서치센터다. 다음은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과의 일문일답.

Q. 메리츠증권의 우수한 실적 배경으로 Sa&T 및 IB 부문의 탁월한 성과를 꼽습니다. 그리고 한경비즈니스는 이 뒷단에 리서치센터의 조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A. 리서치센터는 회사의 수익 창출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톱 다운(Top- Down) 관점에서 회사 전체 리스크 관리를 위한 선제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합니다. 리서치센터장은 경영진과 각 투자 실무 리더들과의 정기, 비정기 회의를 통해 향후 대내외 경기패턴, 산업별 현황과 전망을 제시합니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전체 투자 규모와 시장 진입 여부, 시기를 결정합니다. 또한 금리와 환율 전망을 통해 조달 비용을 감안한 현실적인 투자 실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바톰 업(Bottom-Up) 관점에서 투자대상 자산의 적정가치를 산출합니다. 투자의 본질은 투자대상 자산의 정확한 적정가치 산출 즉, 가격정책(pricing)에서 출발합니다. 적정가치와 시장가격과의 괴리가 발생할 때 투자기회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투자 실무부서가 투자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분야별 전문가가 포진한 리서치센터에 이론적인 적정가치 분석을 의뢰하고, 투자 실무부서는 이를 기초로 투자 여부를 결정합니다.

Q. 리서치센터의 인재를 자랑해주신다면.

메리츠 리서치센터 인적 구성의 가장 특징은 몇몇 특정 스타 애널리스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해 기존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의 이탈에도 흔들림 없이 오히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인 점이 이를 입증합니다. 특히 김준성, 김정욱, 하누리, 윤여삼 등 업계를 대표하는 애널리스트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한경비즈니스에서 가장 많은 다크호스 애널리스트로 선정될 만큼 젊고 실력있는 애널리스트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메리츠 리서치센터만의 애널리스트 양성 프로그램과 엄격하기로 소문난 승격 테스트 시스템이 자리합니다. 외부 영입보다는 매년 자체 애널리스트 양성 프로그램(약 6개월 과정, 시니어 애널리스트가 교육)과 승격 테스트(매년 3월말)를 통해 애널리스트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통과한 애널리스트가 계속 배출되면서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메리츠 리서치를 ‘화수분 리서치’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리서치센터장이 보는 메리츠증권의 강점은.

합리주의, 실용주의, 소통입니다. 평가와 보상 모두 철저한 합리성에 근거합니다. 이러한 합리적 조직시스템을 신뢰한 전문인력들이 모여들고,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직급, 직위, 소속과 관계없이 실용적인 소통을 활발하게 진행합니다. 또한 각 분야별 가장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리더가 되어 경쟁사 대비 정확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수익창출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