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Made in India’ 시대
중국 다음은 인도, 세계 제조업 허브 노려
미·중 갈등 속 전략적 가치 부각
인도는 최근 제조업 강국이 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최대 시장이던 중국의 흔들리는 입지를 파고들었다.
인도는 2023년 공식 인구가 14억 명을 넘어 세계 최대 인구국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7년 인도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왜 지금 인도에 주목해야 할까. 미·중 갈등과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애플·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기지 이전이 가속화하면서 인도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세계는 인도를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경제 엔진으로 주목하고 있다. 한국·인도 수교 50주년을 맞아 인도를 집중 조명했다. 저무는 세계의 공장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간 세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중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최근 인구 감소와 고령화, 성장 잠재력 약화로 경제가 구조적 한계에 다다랐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론이 힘을 받고 있다.
중국의 2022년 경제성장률은 공식 목표치(5.5%)의 절반 수준인 3%에 그쳤다. 문화 대혁명의 마지막 해인 1976년(-1.6%) 이후 둘째로 낮은 연간 성장률이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도시 봉쇄 등 고강도 방역 정책을 고수하면서 그로 인한 지방 정부의 부채 누적, 실업률 증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봉쇄 정책을 해제하면서 경제 활동을 재개하는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감이 일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 회복 효과가 세계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많다.
중국 정부의 핵심 경기 부양 대책인 인프라 건설도 이미 상당수 구축이 완료돼 있어 투자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프레데릭 노이만 HSBC 아시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강한 경제 회복을 이루겠지만 이번에는 경제 반등의 성격상 다른 나라들에 미치는 성장의 파급 효과가 훨씬 약할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라는 타이틀도 인도에 내줄 판국이다. 인구는 중국의 힘과 경쟁력을 과시할 수 있는 주요 요소였다. 2022년 말 기준 중국 인구는 14억11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85만 명 줄었다. 중국의 인구가 감소한 것은 1961년 대기근 이후 처음이다. 유엔 인구 전망에 따르면 인도가 2023년 중국을 추월해 세계 1위 인구 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된다.
피크 차이나의 대안으로 인도가 급부상하고 있다. 인도는 1991년 경제 개혁 이후 성장을 지속하며 경제 규모 5위 국가로 부상한 가운데 최근 중국을 대체할 생산 기지로서 수혜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미·중 갈등의 여파로 생산 차질을 겪은 글로벌 기업들은 인도로 생산 기지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떠나 인도로…GVC 지각변동
애플은 중국을 대신해 인도 생산 기지를 확대하고 있다. 애플은 2022년 9월 아이폰14를 발표했다. 하지만 11월 아이폰의 최대 생산 기지인 중국 허난성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사태로 고급 모델인 아이폰14 프로 시리즈의 배송 기간이 5∼6주 연기되는 등 생산 차질이 빚어졌다. 그 결과 연말 판매가 부진하며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저우 공장은 아이폰14 프로와 아이폰14 프로맥스 등 세계에 공급되는 아이폰의 85%를 맡았다. 정저우 공장 소요 사태로 주력 제품인 아이폰14 프로의 생산량이 약 600만 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장의 생산 차질 여파로 애플의 2022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1172억 달러로 집계됐다. 금융 정보 업체 리피니티브가 집계한 전망치(1211억 달러)도 밑돌았다.
폭스콘 사태는 애플이 수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 중이던 공급망 다변화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애플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인도로 눈을 돌렸다. 애플은 2017년부터 인도에서 아이폰 조립을 시작했지만 모두 구형 모델이었다. 2022년부터 인도에서 최신형 모델인 아이폰14 조립 라인 가동을 시작했다.
인도는 전체 아이폰 생산량의 5~7%를 차지하고 있는데 25%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하던 아이패드 일부 물량도 인도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 시장에서도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국가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봉쇄, 통상 마찰과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한 미·중 관계 악화 등을 배경으로 생산 기지의 무게 중심을 중국에서 인도로 계속 이전하고 있다. 인도 GDP, 영국 제쳐…제조업 강국 야심
인도의 2022년 1분기 명목 GDP 규모는 8547억 달러로 영국의 8160억 달러를 앞지르며 세계 5위로 올라섰다. 인도는 막대한 인구를 앞세워 꾸준히 6∼7%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해 왔다.
거대한 인구와 인구의 47%가 25세 이하로 세계에서 젊은 노동력이 가장 풍부하다는 점은 경제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다. S&P글로벌·모간스탠리는 인도의 연간 명목 GDP 증가율이 평균 6.3%를 유지한다는 전제에 기반해 인도가 2030년까지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는 2014년 모디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모디노믹스’로 대표되는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 동력의 핵심은 자국 내 제조업 육성을 골자로 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이다. 인도는 이 정책을 통해 낙후된 제조업을 육성해 GDP 대비 제조업 비율을 25%로 확대하고 1억 개의 신규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 이슈는 전 세계 공급망 취약성을 드러냈고 각국이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을 절감한 계기가 됐다.
인도도 반도체 제조 경쟁에 뛰어들었다. 2021년 말부터 반도체 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생태계 구축에 100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 지원안을 발표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 추진 등 주요국이 반도체 산업 전략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인도가 도전장을 낸 것이다.
애플의 위탁 생산 업체 폭스콘이 2년 내 인도 아이폰 공장 인력을 1만7000명에서 7만 명으로 4배 늘리겠다고 발표한 데는 인도의 보조금 유인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인도에서 갤럭시 S23과 Z플립4·폴더4 등 주력 스마트폰 생산을 시작했다. 인도는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샤오미(20%)에 이어 19%로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2월 1일 갤럭시 S23 언팩 행사에서 “인도는 우리가 되찾고 싶은 중요한 시장”이라며 “인도에서 1위 자리를 탈환하고 지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LG전자는 양문형 냉장고 시장 확대에 따라 약 300억원을 투자해 인도 푸네 공장에 양문형 냉장고 생산 라인을 증설했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인도 시장에 약 600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6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삼성·TSMC 러브콜…반도체에 100억 달러 푼다
인도의 목표는 단순 하청 기지가 아니라 글로벌 제조업 허브다. 인도 정부는 해외 제조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20년부터 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한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 제도를 도입했다. 인도에서 생산된 제품을 기준으로 매출 증가분의 4~6%에 해당하는 금액에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준다.
인도는 탈중국으로 해외 이전하는 공장들을 자국에 유치해 급증하는 칩 수요에 대응하고 중국을 넘어서는 반도체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모디 총리는 2022년 7월 열린 ‘디지털 인도 위크’에서 “향후 3~4년 동안 전자 제품 제조 부문을 3000억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며 “인도는 칩 테이커에서 칩 메이커가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더 이상 칩 테이커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그룹은 향후 5년간 90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첨단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 추진, 자동차 수요의 급증 등으로 인도의 반도체 소비는 2026년까지 800억 달러, 2030년에는 1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LG전자·폭스콘·BMW 등은 이미 현지 생산 체제를 갖췄다. 인도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인텔·TSMC에 자국 내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지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인도 정부의 강력한 제조업 육성 의지에 힘입어 인도의 GDP 중 제조업 비율은 현재 15.6%에서 2031년 21%로 올라갈 것으로 모간스탠리는 예상했다.
인도는 높은 구매 잠재력, 젊은 인적 자원 등 탄탄한 내수 시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조 시설 인프라가 취약하고 디지털화가 더뎌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모디 정부는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해외 투자자들이 비판해 온 각종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하고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투자 관련 인허가 절차 완화, 외국인 직접 투자(FDI) 자동 승인 경로 확대, 기업에 부담이 되는 규제 완화, 각종 투자 인센티브 제공에 노력했다. 모디 정부의 개선 노력으로 세계은행의 2019년 기업 환경 평가 순위에서 총 189국 가운데 63위를 기록, 모디 정부 출범 이후 순위가 79계단이나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취약한 인프라는 걸림돌
인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디 정부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열악한 인프라는 해결 과제다.
높은 운송 비용이 산업화의 주요 걸림돌로 인식되자 모디 정부는 철도·도로·항만 등 교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인도 정부는 GDP 대비 물류 비용을 현재의 13%에서 2030년까지 8%로 낮추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은 인도 투자 관련 여러 지표를 통해 알 수 있다. 세계은행의 사업 용이성 평가에서 인도는 2017년 130위에서 2020년 62위로 뛰어올랐고 이후 FDI가 꾸준히 유입됐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전 세계의 FDI 유입량이 전년 대비 35% 급락하는 상황에서도 인도는 중국과 함께 유일하게 유입량이 증가하는 국가였다. 인도는 2020년 직접 투자액 640억 달러를 유치해 직접 투자 유입 세계 5위를 기록했다.
품질 안정화도 과제다. 인도 정부가 지급하는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를 받고 있는 애플은 인도 생산 시설에서 품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대기업 타타그룹이 운영하는 인도 남부 공장에서 생산되는 애플 부품 가운데 절반 정도만 애플 공급 업체 폭스콘에 보낼 만한 양호한 상태로 알려졌다.
이 매체는 “50% 수율은 ‘결함 제로’를 추구하는 애플의 목표를 충족하지 못한다”며 “이 밖에 물류·관세·인프라 등 문제로 인도에서 생산 시설 확장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가 2022년 1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지금이 인도 투자의 적기”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중국에 비해 아직 제조업 경쟁력이 열위에 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인도 정부도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 제도의 목적이 인프라, 기술 개발 등 여건 개선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경쟁국에 비해 8.5~11%의 높은 비용을 재정 지원으로 일부 보전하는 데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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