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팀장이 임원 대동해 갖고 있던 버스 키까지 회수
대법 “해고 맞다”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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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써”라는 직장 상사 말의 ‘진짜 의미’는 불분명하다. 직원이 이 말을 듣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면 사직한 것인지 해고된 것인지 모호할 수가 있다. 직원을 질책하다가 우발적으로 나온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한 회사 간부가 직원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사표를 쓰라’고 말한 사건에서 별도의 서면 통지가 없었더라도 직원을 해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어떤 점이 근거가 됐을까.

버스 키까지 회수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23년 2월 20일 버스 운전사 A 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 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20년 1월 9일 직원 7명 규모의 한 전세 버스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A 씨는 같은 달 30일 오후 3시 출퇴근 버스를 운행하도록 돼 있었지만 무단 결행했고 다음 달 11일에도 업무를 무단으로 빼먹어 다른 직원이 대신 운전했다.

이 회사 관리팀장은 2월 11일 A 씨를 질책하며 “사표를 쓰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A 씨가 갖고 있던 버스 키도 직접 회수했다. A 씨가 법원에 제출한 녹음에 따르면 관리팀장은 A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차에서 내려오라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A 씨가 “뭐요, 해고시키는 거요”라고 물었는데 관리팀장은 “응”, “그만두라니까.” “사표 쓰고 가라니까”라고 답했다.

A 씨는 “노동부에서 봅시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이튿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A 씨는 부당 해고를 당했다며 5월 1일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같은 달 18일 ‘무단 결근에 따른 정상 근무 독촉 통보’를 A 씨에게 보냈다.

회사 측은 통보문에서 “회사 관리팀장과 관리상무가 귀하의 근무 태도에 대해 질책을 하는 말투로 출근하지 말라고 한 것”이라며 “성실한 근무를 해주라는 의미였고 해고의 의미가 아니었다”고 했다.

이 통지를 받은 A 씨는 “2월 11일 있었던 해고는 부당 해고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복직 통보가 진정성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부당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 상당액을 선지급하면 복직하겠다”는 내용증명을 회사 측에 보냈다.

1‧2심 “해고 아냐”

이런 와중에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앞서 A 씨가 제기한 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회사 측이 주장한 것처럼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A 씨는 재심 신청을 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기각했다.

A 씨는 결국 법원으로 향했지만 1‧2심도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표를 쓰라”는 말은 원고에게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근로 계약 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1심을 맡은 대전지방법원 재판부는 “관리팀장은 원고가 무단으로 결행한 뒤 자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한 데 화를 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사표를 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이해될 뿐”이라고 했다.

A 씨가 이 같은 말을 들은 후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따로 분명한 사직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해고가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관리팀장에게는 노동자를 해고할 권한이 없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원고와 관리팀장 사이의 말다툼 이후에 해고를 대표이사가 정식으로 승인한 적도 없고 원고가 대표이사에게 자신이 해고당했는지 확인한 바도 없다”고 했다.

대법 “우발적 표현 아냐”

그런데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해고가 이뤄졌는지 여부는 경위와 제반 사정을 모두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해고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며 “묵시적 의사 표시에 의한 해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노무 수령 거부 경위와 방법, 노무 수령 거부에 대해 노동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용자가 근로 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법리를 근거로 관리팀장이 “사표를 쓰라”는 말을 반복한 점에 대해 1‧2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고에게 사표를 쓰고 나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등의 언행을 한 것은 참가인이 원고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근로 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단순히 우발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법원은 관리팀장이 버스 키를 회수한 점에도 주목했다. 대법원은 “통근 버스 운행 업무를 담당하는 원고에게 버스 키 반납을 요구하고 이를 회수한 것은 노동자의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관리팀장이 관리상무를 대동한 상태에서 A 씨가 갖고 있던 버스 키를 회수하고 사표를 쓰라고 발언한 점도 해고로 판단한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적어도 관리상무의 일반적 지위·권한에 해고에 관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인력 부족으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3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A 씨가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한 뒤에야 출근을 독촉했다는 점 등을 볼 때 대표이사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추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원고에게 서면으로 해고 사유 등을 통지한 적은 없지만 서면 통지는 해고의 효력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일 뿐 의사 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결과 A 씨가 해고당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다.


[돋보기]
“그럼 그만둘게” 홧김에 그만둔 직원…“해고는 부당”

직원이 홧김에 “그만두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더라도 이후 일을 계속했다면 진정한 사직 의사로 볼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한 빵집 겸 카페의 제빵 생산 관리 책임자로 일하던 B 씨는 2020년 5월 업체 대표의 아들인 C 씨와 업무와 관련해 말다툼을 벌였다. C 씨는 사업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온 인물이다. 말다툼 과정에서 C 씨는 B 씨에게 “이렇게 거짓말하면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고 B 씨는 “그럼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B 씨는 잠시 후 다시 제빵실로 돌아와 일했고 C 씨는 “나가신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일을 왜 하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이후 B 씨는 출근하지 않았고 부당 해고를 구제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노동자인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직원이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이후 다시 제빵실로 돌아와 근무한 만큼 진정한 사직 의사 표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B 씨가 “이런 이유로 해고하느냐”고 계속 항의했지만 C 씨 등 회사 측이 “해고가 아니다”는 취지로 답하지 않은 점도 근거가 됐다. 이 판결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최한종 한국경제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