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챌린저 은행 도입 사례 집중 검토…은행권, 대출 금리 내리고 사회 공헌·늘리지만 압박은 여전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시내의 주요 은행 현금인출기(ATM)를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시내의 주요 은행 현금인출기(ATM)를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사진=한국경제신문)
은행권이 ‘집중 포화’를 겪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고통받는 소비자들을 외면한 채 ‘돈 잔치’를 벌였다는 게 비난의 주된 이유다. 대통령을 시작으로 금융 당국의 수장들이 은행의 공공성을 지적하고 있다.

은행이 국민의 재산을 수취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공성의 성격이 있다는 것은 전문가들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동시에 은행의 역할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앞으로의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시중 은행들은 채용 확대부터 사회 공헌, 대출 금리 인하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점 체제 반드시 깬다’는 정부…5대 은행의 미래는

‘챌린저 뱅크’는 정답이 될 수 있을까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메기’를 풀어놓음으로써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 2월 22일 열린 제1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 제도개선 TF’에서 금융 당국은 앞으로 은행권의 경쟁 촉진을 위해 인가 세분화와 ‘챌린저 은행’ 도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은행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부실 은행이 도산하고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서 현재의 ‘5대 은행’ 체제로 굳어졌다. 이 시스템을 깨기 위해 금감원은 인가를 세분화하거나 제4의 인터넷 은행과 테크핀 업체의 금융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또 금융과 정보기술(IT)업계의 장벽을 허물어 실질적인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금감원이 주목하는 것은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려고 한 영국의 사례다.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산업 간 경쟁의 촉진이 필요해 은행 신설을 유도했다. 그 결과 인터넷 전문 은행이나 테크핀과 접목한 형태의 은행 등 일명 ‘챌린저 은행’이 확대됐다.

은행업은 단일 인가 형태지만 인가 단위를 낮춰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은행들을 활성화한다면 5대 은행처럼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과점 체제를 깰 수 있다는 것이다.

회의를 주재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이 이자 수익에만 치중하고 예대 금리 차를 기반으로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며 “안전한 이자 수익에만 안주하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영업 행태 등 그간 은행권에 대해 제기된 다양한 문제점들을 전면 재점검해 과감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태스크포스(TF)에서는 은행권의 경쟁 촉진과 구조 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 체계, 손실 흡수 능력 제고, 비이자 이익 비율 확대, 고정 금리 비율 확대 등 금리 체계 개선, 사회 공헌 활성화 등 6가지 과제를 종합적으로 검토, 논의한다. 사실상 ‘은행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특히 금융 당국은 은행의 독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은행이 이자 장사를 펼치는 것도, 과한 성과급과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도 모두 현재 은행이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제 1금융권인 전체 18개 은행의 원화 예수금 현황을 보면 5대 은행의 점유율이 77%에 달했다. 이들 은행은 예금 시장에서 각각 15~16%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원화 대출금 또한 5대 은행의 점유율이 67%다. 이처럼 5대 은행이 예금·대출 시장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수치상으로도 나타난다.

하지만 경쟁 유도가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반박할 수 있는 사례는 7년 전 등장한 인터넷 은행이다. 출범 초기만 해도 기존 은행들을 위협할 것이란 예측이 강했지만 실질적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작았다는 분석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경쟁 상대를 늘린다고는 하는데 그것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인터넷 전문 은행을 만들 때도 시장에 ‘메기 효과’를 기대했지만 기존 은행보다 중금리 대출 비율이 높다는 것 외에 차별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오히려 현재 은행들의 경쟁 구도가 더욱 치열하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 직원들에게 실적 압박의 강도가 높아졌고 디지털 전환과 인구수 감소로 점포 통폐합을 겪고 있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은행의 경쟁 구도는 자연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땅 짚고 헤엄쳤던’ 시대는 끝났다

비난의 중심에 선 만큼 은행권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은행권은 2월 15일 사회 공헌 재원 7800억원을 확보해 3년간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취약층에 풀겠다는 사회 공헌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또 은행연합회는 2월 20일 20개 은행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최소 48% 증가한 2288명 이상을 신규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연간 채용 규모도 약 3700명으로 작년보다 약 600명 늘어난다.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야기한 ‘주범’인 대출 금리도 인하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월 28일부터 주택 담보 대출과 전세 자금 대출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상품별로는 KB주택담보대출(신잔액코픽스 기준)이 최대 3.25%포인트, KB주택전세자금대출과 KB전세금안심대출, KB플러스전세자금대출 금리는 최대 0.55%포인트 인하된다.

카카오뱅크는 2월 21일부터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대출 금리를 최대 0.70%포인트 인하한다. 이에 따라 신용 대출의 최저금리는 4% 초반으로, 마이너스 통장 대출 최저 금리는 5%대에서 4%대로 낮아진다.

우리은행도 2월 21일부터 우대 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섰다. 주택 담보 대출 신잔액 코픽스 기준 6개월 변동 금리 상품에 우대 금리 0.45%포인트, 주택 담보 대출 5년 변동 금리 상품에 우대 금리 0.20%포인트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 밖에 다른 은행들도 대출 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은행에 대한 압박은 결국 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에까지 닿고 있다. 그간 은행들이 담보 대출이나 신용도가 높은 개인을 위한 대출에만 몰두하면서 이른바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민환 교수는 “은행에서 과도하게 이익을 취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금리’가 아닌 ‘업무’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신용 등급이 낮은 고객이나 소상공인 대출 등 은행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더 많은 고객이 은행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 스스로가 고객의 대출 상환 능력과 향후 상환 시나리오를 분석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의 구축 등을 통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은 공공재”라는 발언은 여전히 논란을 낳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는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율이 70%에 달한다. 최근 정부의 잇단 ‘은행 때리기’로 은행주는 약세로 돌아섰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