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올리면 손님 바로 떠나, 차라리 폐업 결정
소주값 6000원? 사장님도 손님도 부담
자영업자들에게 한파보다 무서운 난방비 폭탄이 떨어졌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올해 1월 실시한 긴급 난방비 실태 조사 결과 난방비가 30% 이상 상승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51.6%에 달했다.
유지 비용이 올라갔다고 판매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동네 장사를 하거나 코인노래방·미용실 등 경쟁 업체가 많은 업종은 500원, 1000원만 올려도 손님이 뚝 끊기기 때문이다.
전기료 인상도 부담이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PC방 같은 곳은 전기료가 400만원에서 700만원까지 뛰기도 했다”며 “임대료가 무서운 게 아니라 전기료·가스비가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음식점 사장님들의 시름은 최근 더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일제히 올랐던 소주와 맥주 가격이 올해 또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주류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885.7원이 된다. 지난해보다 30.5원 오르는 것이다.
주세 인상은 출고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하이트 출고가를 각각 7.7%,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 출고가를 8.2% 올렸다. 올해 주세 인상 폭이 지난해 인상 폭(L당 20.8원)보다 46.6% 더 큰 것을 고려하면 출고가는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주세 인상 요인은 없지만 소주는 원가 부담이 출고가를 압박하고 있다. 소주 주재료인 주정 가격은 지난해 7.8% 인상됐다. 소주병 공급가도 병당 180원에서 220원으로 20% 이상 올랐다.
통상 출고가가 올라가면 소비자가는 더 높은 비율로 오른다. 지난해 소주 출고가가 약 85원 오르자 마트에선 소주 1병 가격을 100~150원, 식당에선 평균 1000원 올려 팔았다. 같은 시기 외식산업연구원이 일반 음식점 외식업주 1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4%가 소주 출고가 인상에 따라 소주 판매 가격을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이미 올린 업주들은 병당 500∼1000원을 인상했다고 답했다.
현재 서울의 주점·식당 등에서 소주 1병 가격은 4500~5500원이다. 이번에도 오른다면 식당에서 1병에 6000원이 넘는 소주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주류 값이 더 올라가면 시민들은 주류 소비를 줄이겠다는 반응이다. 최근 서울 압구정 오뎅바에서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신 추 모(32‧남) 씨는 “소주 값이 1병에 5500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서너 병 마실 것을 각 1병씩 두 병만 마셨다. 간단한 안주 몇 개 먹으니 5만원 정도 나오더라”면서 “소주 1병에 6000원이 넘는다면 차라리 집에서 1병에 4만~5만원하는 조니워커블랙(위스키)을 마시겠다. 위스키는 몇 번을 나눠 마실 수 있어 이득”이라고 말했다.
술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타격으로 연결된다. 안주보다 술 판매가 이윤이 더 많이 남기 때문이다. 오 회장은 “마진율을 생각하면 주류 값은 어쩔 수 없이 올려야 한다. (결국 손님이 줄어드는데) 이는 소비자와 자영업자 모두에게 부담”이라며 “정부에서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주류 값 인상으로 여론이 거세지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주 가격 인상 전망과 관련해 물가 안정을 위한 업계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주 등 품목은 우리 국민들이 정말 가까이 즐기는 물품”이라며 “물가 안정은 당국의 노력과 정책도 중요하지만 각계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세금이 좀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 업계와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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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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