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초거대 위협에 직면…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서평]
역사는 되풀이된다, ‘닥터 둠’ 루비니의 경고
초거대 위협
누리엘 루비니 지음 | 박슬라 역 | 한국경제신문 | 2만5000원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은 맞춘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이 책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가 1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초거대 위협(MegaThreats)’ 얘기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잘 알려진 ‘닥터 둠’이 돌아온 것이다. 당시 위기를 남들보다 앞서 지적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가 말하는 위기는 제목처럼 섬뜩하다. 안이한 정책의 연속으로 어마어마하게 쌓인 부채, 함께 맞물린 인플레이션, 극으로 치닫는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긴장, 현실로 다가온 인공지능(AI)의 위협 등을 주요 위협으로 꼽는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시점은 2022년 10월인데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지 않다.

10가지 ‘초거대 위협’ 중 가장 크고 위험한 요인을 꼽자면 단연 부채다. 물론 부채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고 쌓이는 과정이 잘못됐으며 그로 인해 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1999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0% 수준이던 세계 부채는 2021년 350%를 훨씬 넘어섰다. 미국의 부채 수준은 세계 평균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GDP 대비 민간·공공 부채 비율은 대공황 때 부채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보다 훨씬 높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부상해 강력한 성장기에 돌입했을 당시의 두 배 이상이다. 국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가계 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부채가 늘어나게 된 과정도 문제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느슨한 통화 정책으로 벌어진 원인을 느슨한 통화 정책으로 덮어 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좀비 기업은 정리되지 않고 계속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고 부채는 나날이 늘어 갔다. 여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재정 지출을 줄이면 해결될까. 풀었던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될까.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계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국제통화기금(IMF)과 미 재무부 등에서 일하며 세계 경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저자는 1930년대 대공황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미국 경제 상황부터 아르헨티나가 몰락하게 된 이유까지 역사적 사실 관계와 기록을 꼼꼼하게 해부하며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해 들어간다. 비슷한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더 좋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특히 위기를 앞두고 우왕좌왕하며 공공과 민간 양쪽 모두에서 어떤 실책을 저질렀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발생 이후부터 대공황 발발 직전의 사회상과 코로나19 사태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최근 1~2년 사이의 사회 분위기를 비교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릴 만큼 1920년대는 호황 그 자체였다. 금융 혁신이 시작됐고 최초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축음기, 유성영화, 진공 청소기, 대량 생산 자동차, 전기 교통 신호기 등 기술 혁신의 시대였다. 끝없이 치솟는 증시에 누구도 금융 거품과 과도한 신용·부채 축적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저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타난 저금리 정책과 증가한 부채, 막대한 경기 부양책 등을 꼽으며 “요즘도 광란의 20년대를 연상케 하는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금융 체제 전반과 거시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 관계 영역에서도 거장은 통찰을 보여준다. 미·중 관계가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경위와 주요 이슈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고령화와 AI를 비롯한 기술의 위협을 다룬 부분에서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연금·챗GPT 이슈와 관련해 여러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 10개의 개별 사안에 따라 장이 구분돼 있어 순서에 관계없이 관심 가는 곳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미국 현지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5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그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단지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대개 사실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논설위원인 마틴 울프는 이 책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책 곳곳에 담긴 저자의 통찰이 오늘날 직면한 위기를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점이자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발판이 돼 줄 것이다. ‘닥터 둠’ 아니 ‘닥터 리얼리스트’의 경고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