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산업 리포트
[ESG 리뷰] 2022년 하반기는 부정적인 경제 전망과 미국 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 감원의 영향으로 투자자들의 심리가 많이 위축됐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자 역시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2021년에 견줘 투자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청정 기술 부문은 예외였다. 청정 기술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전년도보다 증가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청정 기술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의 시행으로 시장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가 이어진 것이다.미국 청정 기술 벤처 투자자들이 투자한 금액은 2022년에만 286억 달러에 달한다. ‘청정 기술 1.0’ 시대라고 불리는 2006~2011년 투자된 금액인 250억 달러를 넘어선 수준이다. 마켓인텔리전스 플랫폼인 홀론IQ에 따르면 청정 기술에 대한 투자 흐름이 지속된다면 2023년 말까지 미국 청정 기술 벤처 투자자들이 투자한 금액은 1000억 달러(약 12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붙은 것과 대조적인 풍경이다. 데이터 분석 기업 피치북에 따르면 2022년 벤처 투자 시장에 투자된 금액은 2383억 달러로 전년 대비 31% 정도 줄어들었다. IRA법 힘입어 성장
청정 기술 투자자인 콘그루언트 벤처스 파트너인 아베 요켈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테크 기업과 크립토 기업이 긴축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다. 청정 기업에 대한 투자는 (테크 기업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 자산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할 수 없는 기후 변화의 영향과 지난해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청정 기술 전반에 걸쳐 장기간 강세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론 경기 하강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청정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청정 기술에 대한 투자는 이미 실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청정 기술 1.0이 시작된 2006년 한 해에만 17억5000만 달러 규모의 벤처 자금이 기후 기술 스타트업에 유입됐다. 이 시기의 끝자락인 2011년까지 기후 기술 관련 스타트업은 총 250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로 기후 기술의 경쟁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중국산 저가 태양광 모듈이 밀려들면서 미국 내 태양광 제조 생태계도 무너졌다. 결국 2015년 전후로 청정 기술 벤처 투자자들은 250억 달러의 투자금 중 절반 정도를 잃고 말았다.
청정 기술에서 한 걸음 더
하지만 ‘청정 기술 2.0’이라고 불리는 최근 청정 기술 투자 붐은 전과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첫째 이유는 청정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환경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청정 기술 1.0이 기후 변화에 대한 대중의 문제 인식에서 시작됐다면 청정 기술 2.0은 규범적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청정 기술 2.0의 배경에는 파리협약, 각국 간 정책 지원, 가시화되는 기후 변화 영향 등 청정 기술 1.0 때보다 요구 사항이 더욱 현실적이다.
둘째로는 투자 분야와 투자 구조의 변화다. 2016년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발간한 청정 기술 1.0 실패 원인 관련 보고서는 투자 대상과 맞지 않는 투자 구조를 실패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청정 기술 분야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사전 조사 없이 투자를 진행한 사례가 많았다.
일반적 벤처 투자는 일정 기간 내 성과를 보여야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제품 개발 기간이 길고 성과를 즉각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신소재·하드웨어·화학 공정 등 투자가 이뤄지며 투자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투자자들은 투자 회수 기간이 비교적 짧은 기업에 투자하거나 투자 대상의 특성을 고려해 투자 회수 기간을 산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청정 기술 투자의 포트폴리오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정 기술 1.0에서는 투자자들이 태양광이나 바이오 연료처럼 혁신적 재생에너지 솔루션에 집중해 맹목적으로 투자했다면 청정 기술 2.0에서는 청정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재를 확충해 청정 에너지 발전뿐만 아니라 농업·운송수단·건축·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한다. 넷 제로를 이룰 수 있는 청정 기술의 투자 범주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기후 기술(climate tech)’이라는 용어가 청정 기술을 대체하는 흐름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후 기술 벤처 투자사인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BEV)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SOSV 기후 기술 서밋’에서 “이 (기후 기술) 분야에는 테슬라가 될 만한 기업이 10곳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중 하나만 찾은 것”이라며 기후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런 전망을 반영하듯 BEV는 2018년 9곳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으로 2022년 58곳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기후 기술 벤처 투자의 성패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각 사회 구성원이 2050년 넷 제로를 향해 함께 노력한다면 청정 기술의 성장 역시 보장된다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미국)=정혜원 카무스에너지 고객성공팀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23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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