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Fed 따라가기는 금물…가장 중점 둘 것은 원‧달러 환율 안정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모든 경제 정책 중 통화 정책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세계가 하나가 된 여건에서는 글로벌 흐름에 동참해야 하고 각국 고유의 법화(法貨‧legal tender) 시대에서는 자국의 여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여건 간 균형을 잃을 때는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다.글로벌 흐름과 자국 여건 모두 따져야한국의 통화 정책은 특히 어렵다. 수출 등 실물 부문의 여건인 중국 비율이 높은 대신 금융 부문은 미국 편향적이기 때문이다. 각종 규제 등으로 실물과 금융 간의 연계성은 그 어느 국가보다 떨어진다. 두 부문 간 불연속성은 케인스언의 통화 정책 경로상 금리 변화와 총수요 간 탄력성을 약화시켜 통화 정책 효과를 제한한다.

통화 정책은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잘 지켜야 한다. 금융 위기 이후처럼 통화 정책 목표가 다수일 때는 틴버겐 정리에 따라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가져가야 한다. 갈수록 강해지는 정치적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지켜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림 1> 한국의 주요 인플레 지표 추이 (자료: 한국은행·통계청,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림 1> 한국의 주요 인플레 지표 추이 (자료: 한국은행·통계청, 그래픽=배자영 기자)
코로나19발 통화 정책의 후유증을 처리하기 위한 출구 전략은 한국은행이 가장 빨리 추진했다. 금리를 가장 많이 내리고 돈을 가장 많이 풀었던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7개월 앞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첫 금리 인상 당시 성장률이 0.3%(2021년 3분기)로 워낙 낮아 경기·금리·물가 간 트릴레마 국면에 처할 것이라는 비판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한국은 통화 정책 시차가 1년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시기적으로 2021년 8월 이후 추진해 온 금리 인상 효과를 평가해 볼 수 있는 충분한 때가 됐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금리를 올릴 때 내걸었던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미흡했다. 10년 만에 새로운 총재를 맞이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일본은행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Fed처럼 양대 목표를 설정하는 논쟁 속에 한국은행이 고집했던 물가 안정 목적부터 평가해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대표적 물가 지표인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5월 이후 7개월 연속 5% 이상 수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명시적으로 내걸고 있지 않지만 인플레이션 타기팅 선은 2%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처럼 인플레이션이 공급 측 요인이 강할 때는 총수요 물가 관리 대책인 금리 인상은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일부 금융통화위원이 주장했던 금리 인상을 통해 원화를 절상시켜 수입 물가를 잡는 것은 비기축 통화국인 한국은 한계가 있다. 오히려 수출 감소 등을 통해 실물 경기를 더 어렵게 한다.
<그림 2> Fed의 최고금리 전망 (자료 : 블룸버그·한국은행,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림 2> Fed의 최고금리 전망 (자료 : 블룸버그·한국은행, 그래픽=배자영 기자)
한국처럼 가계 부채가 위험 수위를 넘은 상황에서는 가계 부채 대책은 경착륙보다 연착륙시키는 방향으로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4대 은행의 허쉬만 허핀달 지수(HHI)가 1700 이상 나올 정도로 독과점이 심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경제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담보 관행과 같은 구조적 취약점이 있는 여건에서는 더 그렇게 해야 한다. 위험 수위가 넘은 가계 부채를 경착륙시키면 은행 임직원들은 성과급 잔치 속에 취약 계층은 거리로 내몰린다.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방지하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금리 인상 이후 한‧미 간 금리 역전과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 간 관계도 ‘유의미’하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처럼 외환 위기 경험국은 무역 수지, 외환 보유, 성장률 등과 같은 펀더멘털 요인이 외국인의 자금 유출입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의 내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Fed를 따라간다는 인상을 주는 식의 통화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올해 둘째 금융 통화 회의에서 10개월 만에 금리를 동결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현 정부가 제2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표방한 만큼 이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포퓰리즘적으로 보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갑작스러운 방침 변화 때문이다.외화 수급 조절이 가장 효과적 정책 수단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간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이번에 금리 동결 조치를 보면 포퓰리즘적인 비판 시각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작년 4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4%로 역성장한 반면 지난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2%로 올랐다. 두 목표를 동시에 중시해야 할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에서 어느 한쪽(경기 부양)을 강조하면 뒷전에 물러나는 다른 쪽(물가 안정)은 정도가 지나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퓰리즘적인 비판 시각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특정국이 금리 동결로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해 부진한 수출과 경기가 살리려면 해당국의 수출입 구조가 ‘마셜-러너(M-L) 조건, 즉 외화 표시 수출 수요의 가격 탄력성과 자국 통화 표시 수입 수요의 가격 탄력성을 합한 것이 최소한 ‘1’을 넘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M-L 계수의 시계열 자료를 놓고 이미 20년 전에 ‘1’ 밑으로 떨어졌고 해가 지나갈수록 하락하는 추세다. 한국의 수출입 구조가 환율과 같은 가격 경쟁력보다 기술·품질·디자인과 같은 비가격 경쟁력에 의해 좌우돼 왔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반도체·자동차 등과 같은 주력 수출 제품일수록 더 그렇다.

오히려 현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의식했다는 비판은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총수요 항목별 성장 기여도에서 70% 가깝게 차지하는 민간 소비가 가계 부채의 부담으로 제약돼 왔던 것이 경기 부진의 주요인이다. 이번 금리 동결로 가계 부채 부담이 줄어들면 민간 소비가 활성화돼 경기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살아나야 경기가 부양될 수 있다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 1월 말 발표된 IMF의 올해 성장률을 보면 미국은 작년 10월 전망 대비 1.0%에서 1.4%로, 중국은 4.4%에서 5.2%로 상향 조정됐는 데도 한국은 2.0%에서 1.7%로 하향 조정됐다. 조로화 문제에 봉착된 수출 여건에서는 내수를 살리는 것이 경기 부양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이번 금리 동결이 포퓰리즘적인 조치라는 비판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어빙 피셔의 통화 가치를 감안한 자금 이동 이론에서 보면 현재 미국과의 금리 차가 1%포인트 이상 역전되고 환율이 적정선인 1235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금리 차와 환차익 면에서 네거티브 트레이드 여건에서 금리 동결로 환율이 더 오르면 외국인의 자금 이탈과 수입 물가 상승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번에 금리를 올렸어야 하는 시각이 나올 수 있다. 환율을 안정시키는 방안은 한‧미 간 금리 차 축소와 같은 ‘가격 조정’과 외화 수급과 같은 ‘수량 조절’이 있다. 전자에 의한 환율 안정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시장 경제가 잘 작동돼야 한다는 대전제가 따른다.

현재 한국의 외환 시장은 외국인이 강한 불만을 제기할 정도로 불균형 상태다. 최근 한국의 경제 상황과 비슷했던 1980년대 초에 태동됐던 불균형 이론의 요지는 이렇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균형점에서 이탈됐을 때 종전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에 의해 이 점에 수렴된다고 봤다. 하지만 이 이론에서는 시장 조절 기능이 무너져 균형점에 도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불균형 여건에서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을 통한 미국과의 금리 차를 축소하기보다 외화 수급 조절이 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번 금리 동결 조치에 포퓰리즘 비판 시각이 나온 것을 계기로 한국은행은 외화 보유에 달러 비율을 70% 이상 과도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는지, 국민연금 등의 해외 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와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