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2022년 11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사 및 간호대학 학생들이 ‘간호법 제정’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2년 11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사 및 간호대학 학생들이 ‘간호법 제정’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2년 차, 의료계에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장이 의사의 의료 행위를 대신하는 간호사를 채용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며 해묵었던 ‘진료 보조 인력(PA : Physician Assistant)’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간호법 제정과 의사면허취소법(개정)에 반대하는 의료 단체들이 여의도 공원에 모여 삭발 시위를 벌였다. 공공 보건 의료 분야 수장들의 공백 기간은 해를 넘기며 장기화하고 있다. 국립대학병원의 맏형 격인 서울대병원의 새 수장은 대통령실이 모두 반려하면서 9개월째 공석이다.
1. 복잡한 알력으로 묶인 PA 간호사 논란
“PA 간호사 논란 뒤에는 의료계 이해 단체 간의 복잡한 알력 다툼이 있다. PA 간호사가 필요한 대형 병원과 불법이라며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사단체 등이다. 또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단체와 지지하는 여러 의료 단체 등의 주장도 섞여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PA 간호사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자 안전과도 연관 있다고 하는데 비의료인에겐 낯설기만 하다. 최근 사건부터 짚어 보며 논란을 들여다보자.
난장판 된 의료계, 3대 이슈…정권 초기마다 반복되는 암투
2월 3일 한국의 대형 병원 ‘빅5’ 중 한 곳인 삼성서울병원 병원장이 경찰에 고발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삼성서울병원이 의사의 의료 행위를 대신하는 ‘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내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박승우 원장과 채용에 응한 간호사 등을 형사 고발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삼성서울병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외래 전자 의무 기록(EMR) 차트 작성’, ‘방사선 치료 환자 피부 드레싱’ 등을 담당할 ‘방사선종양학과 계약직 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냈고 간호사 1명을 뽑았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EMR 차트, 그러니까 진료 차트를 간호사가 작성한다는 얘긴데 (이 부분이) 어떤 순서, 얼마의 용량으로 암환자한테 항암제를 주겠다는 의사의 오더를 간호사가 한다는 의미 아니냐”면서 “간호사가 의사의 오더를 기록한다고 주장하는데 의무 기록사 직역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암환자 드레싱(수술 부위를 덮어 주는 의료적 처치)은 일반 환자 드레싱과 다르다. 암환자는 면역 저하자다. 상처가 생기면 아물지 않고 세균이 쉽게 퍼진다. 드레싱하면서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담당할 간호사를 뽑는다는 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 측은 “채용 공고를 낼 때 해당 부서에서 관행적으로 쓰던 ‘PA 간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해 오해가 빚어졌다”고 해명했다. 이어 “채용한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 아래’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해당 간호사는 현재도 업무를 수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불법’을, 삼성서울병원 측은 ‘오해’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PA 간호사는 전문의(교수) 지시에 따라 수술 보조, 처방 대행, 시술 등을 담당하는 ‘준의사’ 수준의 간호사를 말한다. 일손이 모자라는 의사를 보완하기 위해 생겼다. 미국·영국·캐나다 등에선 면허를 취득하고 교육을 이수하는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전문성을 인정받는 유망 직종으로 꼽힌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PA 면허가 따로 없다. PA 간호사 운영 자체가 불법이다. 의료법 2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간호사에 국한하고 있다. 또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이뤄지는 진료 보조 업무’만 수행할 수 있다. ‘간호사=준의사’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의 PA 간호사 수는 늘고 있다. 의사 인력이 부족한 대형병원에서 PA 간호사를 암암리에 고용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선 많게는 100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하기도 한다.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등 소위 ‘기피과’에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지원하지 않는 현실에서 PA 간호사가 그 공백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가 맡아서 해야 하는 업무를 비공식적으로 PA 간호사가 대신하는 것이다. 불법에다 면허가 따로 없어 전문적인 교육이 있는 것도 아닌데 환자 안전을 맡긴다는 얘기다.

2015년 국회에서 전공의의 주당 최대 수련 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법’이 통과된 후 대형 병원의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PA 간호사의 수요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병원간호사회 조사를 보면 2005년 235명(40개 병원)으로 집계됐던 PA 간호사는 2020년 4814명으로 조사됐다. 15년 만에 약 20배로 늘어난 것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PA 간호사를 실제 이보다 많은 1만 명으로 추산한다.

PA를 합법화하거나 의사 인력을 확대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일단 의사단체는 둘 다 강력히 반대한다. 절대적인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특정 병원, 특정 과에 의사가 몰리는 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수가를 높이는 등 비인기과에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전문성이 부족한 PA 간호사를 합법화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며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박명하 비상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서울시의사회장)은 “(PA에 반대하고 있지만) 반복되는 논란을 풀어가기 위해 업무 범위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의사의 지도‧감독하에 할 수 있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하고, (현장에서) 간호사·의료기사를 어떤 직역에 편입시킬지 등의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선진국은 전문성이 부족한 간호사에게 환자를 왜 맡겼을까.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는 증원대로 반대하고 PA는 불법이라고 반대하는 데 현재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1만 명의 간호사를 채용하고 업무 외 범위의 일까지 시키고 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감시하고 모니터링할 수 없는 현재의 상태가 나은 것이냐”면서 “결국 위험은 환자가 부담한다”고 꼬집었다.

한편에선 PA 논란이 병원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공의 1명을 더 채용하는 것보다 인건비가 적게 드는 간호사를 고용해 의사 업무 일부를 떠맡기는 게 병원 경영에 이득이라는 것이다. 임 회장은 “최소한 상급병원은 돈이 부족하지 않다. 비인기과여도 대형 병원에는 의사 공급이 넘친다. 다만 (병원이) 의사를 고용할 돈을 아껴 간호사를 채용하는 것”이라며 “(아낀 돈으로) 수도권에 브랜치 병원을 여기저기 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 관계자는 “PA 간호사는 불법이므로 엄연히 근절해야 한다”면서도 “병원에서 임무를 배정하니 PA를 원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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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위로 번진 간호법‧면허 취소법 갈등
“여러분 삭발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의사와 응급구조사 등 4명의 의료 종사자가 삭발을 위해 단상 위에 올라섰다. 본회의 상정을 앞둔 ‘간호법(제정)’과 ‘의사면허취소법(개정)’을 저지하겠다며 의사·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간호사를 제외한 보건복지의료연대 회원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삭발이 끝난 후 ‘단결 투쟁’이 적힌 머리띠를 매고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라는 악법(惡法)을 막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법은 간호사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았다. 의사면허취소법은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다른 전문직처럼 의사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이다. 두 법안은 2월 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회부됐다.

간호법 제정안 논란은 간호사 업무 범위에 ‘지역 사회’가 추가되면서 시작됐다. 이 표현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사의 독자적 의료 활동을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주민센터에서 혈압을 체크할 수 있고 당뇨 검사도 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를 보조하는 것으로 규정해 불가능하다.

‘지역 사회’로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임상병리사들은 검사 등 자신들의 영역을 간호사들이 침범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간호조무사단체는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한다’는 문구 때문에 장기 요양 기관이나 사회 복지 시설, 어린이집 등 지역 사회에서 간호조무사의 단독 고용이 불가능해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간호조무사는 의료기관 안에서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하지만 의원급 의료 기관에 한해서는 간호사가 없어도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 보조 업무가 가능하다.

간협 측은 간호법의 간호사 업무 범위는 기존 의료법과 동일하다고 반박한다. 간협 관계자는 “지역 사회에서도 의사 지시서가 없으면 단독 행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협은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총파업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상대책특별위원회 구성 및 위원 8명 인선도 마무리했다. 박명하 비대위원장은 “본회의(3월 9일) 상정 전까지 여야 국회의원을 찾아가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다 같이 애썼는데 특정 직역에 대해서만 혜택을 주는 것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의사면허취소법에 대해선 “의료 과실 등으로 면허가 취소되는 것은 과하다. 살인·성폭력 등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 마땅한 범죄에 대해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면서 “변호사협회처럼 의협도 (자율)징계권을 갖고 있다면 범죄의 강도를 구체적으로 구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 스스로 판단해 행정 처분 여부를 정부에 건의하는 방식으로 의사 면허를 협회에서 컨트롤하고 싶다는 얘기다.

현행 의료법에 근거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사유는 정신 질환자, 마약 중독자, 금치산자,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진료비 부당 청구 등에 한했다. 의사가 살인·강간 등 성범죄 등 중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는 유지된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이 본회의 부의 요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여·야 대표가 합의해 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여야가 두 법안에 대해 3월 9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의석수를 내세운 야당이 단독 처리에 나설 상황에 대비해 여당은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 건의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앞 여의대로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 등이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을 반대한다”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앞 여의대로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 등이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을 반대한다”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 보건 의료 수장 줄줄이 공석
이 가운데 공공 보건 의료 분야 수장들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며 국민 건강이 우려된다. 보건 의료 분야 수장은 국가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기관 책임자로 매우 중요한 자리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직은 오랜 기간 공석이었다. 후보자들이 자녀 편입학과 병역 특례 의혹, 정치 자금 유용 등으로 사퇴하거나 낙마했다. 결국 하반기로 넘어갔고 공석 132일 만인 지난해 10월 4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임명됐다.

2월 21일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이 3년 근무를 마치고 보건연구원을 떠났다. 권 원장의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감염병 대응의 컨트롤타워인 보건연구원장 공석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김선민 원장은 올해 4월 임기가 끝난다. 차기 원장 공모 시기와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이사진 교체 시기가 겹치며 심평원 역시 핵심 인사들의 업무 공백이 예견된다.

국립대병원장들의 공백 사태도 이어졌다. 서울대병원은 9개월째 수장 자리가 공석이다. 정권 교체에 복지부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서 한동안 원장 후보자 공모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서울대병원 이사회가 공모를 통해 새 병원장 지원을 받아 후보자 2명을 추려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이 모두 반려했다. 병원이사회가 최종 후보자를 교육부에 추천하면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의 제청을 받아 1명을 원장으로 임명하게 된다.

이례적인 사태에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지명해 내려보낸 후보가 존재한다는 내정설까지 돌았다. 병원이사회가 대통령 마음에 들 후보를 눈치껏 올릴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얼마나 헤아리느냐가 관건이란 것이다.

어쨌든 올해 1월 서울대병원은 다시 공모를 진행, 역대 최다인 11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고 두 명의 교수가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이르면 3월 초 서울대병원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5월 공식 임기를 마친 김연수 원장이 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부산대병원장·제주대병원·충남대병원 등에서도 병원장 공석이 장기간 이어졌다. 부산대병원장은 올해 1월 정성운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임명됐다. 전임 병원장 퇴임 이후 10개월 만이다. 4개월째 수장 공백을 이어 온 제주대병원은 2월 15일 공모를 마감했고 중부권 거점 국립대병원인 충남대병원도 공석 3개월 만에 교육부가 신임 병원장 선출 절차 돌입을 재가했다.

국립대병원의 수장 공백은 현 정권에서 두드러진 지극히 이례적인 사태다. 김윤 교수는 “의료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각 부처·기관에서 알아서 할 일은 그들에게 맡겨야 리더십도 챙기고 직원들의 사기도 진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