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닥치고 의대…코로나19 사태가 가속화한 어떤 움직임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는 K팝 댄스를 하반기부터 정규 과목으로 개설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무용사의 한 갈래로 인정한다는 얘기입니다. K팝의 영향력은 그렇게 커졌습니다. 힙합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살아남은 음악 장르라는 평가도 받습니다. 한국말 가사로 떼창을 하는 모습은 아시아·중남미·미국·유럽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K-콘텐츠의 힘은 다른 부문에서도 막강합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이어 ‘피지컬 : 100’으로 넷플릭스 TV쇼까지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매체는 올해 음식 관련 트렌드 3가지 중 하나로 한국 음식 집에서 해먹기를 꼽았을 정도입니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이 어떻게 문화 강국이 됐는지,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수많은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나라가 됐습니다.

이런 외국의 시각과 달리 정작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의미의 ‘핫’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글로리’, ‘법쩐’, ‘언더커버’, ‘범죄와의 전쟁’, ‘아수라’ 등 드라마와 영화가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입시 문제를 다룬 드라마 ‘일타 스캔들’도 빠뜨릴 수 없지요. 이 작품 첫회는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됩니다. “누가 대한민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던가. 닭 울기 전부터 고성이 오가는 나라. 아침 댓바람부터 고단하고 고달프고 그래도 고진감래를 믿으며 고삐를 늦출 새 없이 고생길을 달려 고소득·고학력·고득점·고위층을 향해 고 고 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이 대사는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이 치열한 경쟁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을 다뤘습니다. 의대 쏠림이 더 강화되는 대학 입시 판도와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얻은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직업관의 변화입니다.

먼저 의대 쏠림 현상. “대치동에서 수능은 ‘메디컬(mrdical) 고시’로 불리고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은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와 서울대 나머지 학과로 나뉜다.” 한 강사의 말은 현재 입시 경쟁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창업 열기와 함께 한때 다양해지는 것 같았던 입시의 최종 목표지가 돌고 돌아 다시 의대로 향하게 된 셈입니다.

다음은 공무원에 대한 인식 변화. 최근 몇 년 새 수만 명의 공무원, 특히 젊은 공무원이 그만뒀다고 합니다. 한때 “공무원이 꿈인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나”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환경미화원을 뽑는데 명문대생까지 뛰어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차지한 철밥통을 걷어차고 나온 공무원이 2021년 한 해에만 1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두 현상의 공통점은 경제적 가치, 즉 돈입니다. 좋은 인적 자원은 그 시대에 경제성이 가장 좋은 곳으로 쏠립니다. 한국은 육사·법대·공대를 거쳐 의대에 도달한 지 수십 년. 최근 좀 변하는 것 같더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의대 집중 현상이 더 강화됐습니다. 한국의 국민 1000명당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면 가장 적습니다.
공무원을 그만두는 이유도 낮은 연봉이 첫째, 딱딱한 조직 문화가 둘째로 꼽힙니다. 누구는 연봉만큼 보너스를 받는데 박봉에 업무량은 계속 늘고 상명하복식 문화는 바뀔 가능성이 없으니 철밥통이라도 던져 버린다는 게 그들의 설명입니다.

개인의 사회적 자본(간판) 역할을 했던 학벌·직업 등이 경제력으로 전환되는 기능(돈을 많이 버는)을 일부 상실한 영향입니다. 이에 따라 위험 없이 실질적 화폐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지(의치한약수)를 택하는 경향이 더 강화된 것이지요. 물론 전근대적 학벌과 직업관에서 탈피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돈이라는 생각이 더 팽배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쏠림은 각자도생을 위한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폐쇄성 속에 모든 것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시간의 블랙홀 역할을 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한국 사회의 저변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