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차는 벤츠로 찜…수입차 인기 왜
[비즈니스 포커스] #대기업에 다니는 6년 차 직장인 A 씨는 생애 첫 자동차를 살 생각에 요즘 밤잠을 설친다. 그가 눈여겨보는 브랜드는 독일 차들이다. “렉서스(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보다 벤츠·BMW·아우디 등을 생각 중이에요. 직장 선배들이 애프터서비스나 수리비 부담 문제를 얘기하며 말리기도 하는데 인생 첫 차, 돈이 더 들어도 수입차죠.”‘300만 대.’ 한국의 도로 위를 달리는 수입 자동차의 수다. 최근 수입차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10대 중에서 2대는 수입차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만 해도 등록 대수가 1만 대 수준에 불과했던 수입차는 2014년 100대를 돌파한 후 급격히 늘었다. 2015년 이후부터 매년 20만 대가 넘는 신차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8년 200만 대를 넘어섰고 4년 만인 2022년 316만760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자동차 등록 대수 2550만3078대의 12.4%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 한 해는 28만3435대가 신규로 등록하며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이 중 독일차가 72.6%를 차지한다.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폭스바겐 등 독일 명차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1987년 시장 개방, 미국차의 선점
처음부터 독일차가 한국 시장을 선점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가장 인기 있던 수입 차종은 포드·사브·크라이슬러 등 미국차였다. 이들은 연 400~500대씩을 팔며 인기 모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으로 차가 수입되기 시작한 1987년 정부는 2.0리터 이상 대형차와 1.0리터 이하 소형차 시장을 우선 개방했다. 개방 첫해 수입차 판매를 시작한 업체는 한성자동차(벤츠)·효성물산(아우디‧폭스바겐)·한진(볼보)·코오롱상사(BMW) 등이었다. 임포터(수입사)가 차를 들여오면 딜러가 이를 사들여 일반 소비자에게 파는 방식이었다.
이듬해 정부가 전 차종에 대한 배기량 규제를 풀었다. 당시 수입차에 대한 분위기는 외화 낭비, 과소비와 사치 풍조로 인한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의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 수입차를 타는 사람이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이 팔려야 몇 백 대 팔렸다.
2000년대 들어 변화가 생겼다. 2001년 국민총소득이 2000만원을 넘었고 2002년 금융권에서 주5일 근무제가 처음 도입됐다. 경제성과 노동 환경이 좋아지며 덩달아 수입차 시장도 커졌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코리아’ 법인을 세우고 직접 판매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5년 BMW코리아·포드코리아를 시작으로 2000년 도요타, 2002년 메르세데스-벤츠, 2003년 혼다, 2004년 아우디, 2005년 폭스바겐 등이 한국 법인을 줄줄이 세웠다.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페라리와 마세라티도 한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롤스로이스·마이바흐 등 최고급 럭셔리 세단도 판매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수입차 시장의 막이 오른 셈이다.
◆대중적인 모델로 일본차의 득세
1997년 외환 위기로 대부분의 수입차 업체들이 철수하거나 사실상 판매 활동을 접었지만 BMW는 한국 법인을 유지하고 오히려 판매를 강화했다. 2000년대 초 BMW는 5시리즈와 3시리즈로 시장을 독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S클래스와 E클래스로 맞서며 양대 산맥 구도를 형성했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대중적인 모델을 앞세운 일본차가 시장을 휩쓸었다. 혼다는 2003년 중형 세단 어코드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CR-V 두 차종을 내놓았다. CR-V는 3000만원대 초반의 경제적인 가격을 내세워 수입차 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2030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2007년 3861대가 팔리며 한국 수입차 시장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2008년에는 어코드 3.5가 왕좌를 차지했다. 5000대 가까이 팔렸다.
도요타는 2009년 중형 세단 캠리를 선보였다. 캠리는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1700만 대 이상 팔린 월드 베스트 셀링 카였다.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도 한몫했다. 렉서스 ES330, ES350 모델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연속으로 한국 수입차 시장의 선두를 달렸다.
혼다와 도요타의 성공을 지켜보던 닛산도 2004년 한국 법인을 설립했다. 렉서스의 성공을 교과서 삼아 고급차 브랜드 인피니티를 먼저 시장에 내놓았다. 인피니티 G35 세단, G37 세단은 2007년부터 3년간 판매량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다. 중형 세단으로는 알티마로 승부를 봤다.
2010년 이전까지가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3대 기업의 전성기였다. 캠리·어코드·알티마 등은 한국 중형차와 가격 차이를 줄이며 3040대 직장인들을 사로잡았다. ◆다시 독일차 전성기
2010년대 들어 다시 독일차의 전성시대가 왔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 고급차가 수입차 시장을 장악했다. 대중차를 앞세웠던 일본차는 2진으로 물러났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0년과 2011년 E300으로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BMW는 2012년과 2013년 520d로 왕좌를 빼앗았다.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대결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BMW와 벤츠의 치열한 경쟁 구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BMW는 지난해 7만8545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19.6% 늘어난 판매량을 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년 대비 6.3% 증가한 8만976대를 팔았다. 성장세는 BMW가 판매량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앞섰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다양한 신차를 출시하고 적극적인 프로모션 마케팅 등으로 구매 심리를 끌어올렸다. BMW는 지난해 11월부터 할인에 적극 나섰다. 가장 많이 판매되는 5시리즈를 최대 990만원 할인 판매했다. 할부금리 인상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판매 위기 상황이 오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아우디도 프로모션 대열에 합류했다. 대표 중형 세단 A6를 800만~1050만원 할인 판매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비인기 차량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대형 전기 세단 EQS를 최대 943만원 할인했다.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지만 어쨌든 할인 판매에 나섰다. 소비자로선 비슷한 크기의 한국차와 프로모션하는 수입차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면 수입차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수입차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서비스 문제는 크게 개선됐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수입차 서비스센터는 총 551곳에 달한다.
앞으로 변수는 전기차 전환이다. 급변하는 전기차 보조금 체계에 대응해야 하고 전기차 공급 만큼 충전 및 정비 서비스 등 인프라를 구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나 현대자동차가 해 주겠죠’라는 식의 대응은 시장의 싸늘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앞집도 옆집도 수입차를 타는 시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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