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여당 장악 땐 내분 부르고 민심과 멀어져
당의 힘이 너무 세면 국정 혼란 초래
尹대통령-김기현 대표, 힘의 균형 찾을까

홍영식의 정치판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3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김기현 대표(왼쪽 두 번째) 등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3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김기현 대표(왼쪽 두 번째) 등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역대 정권의 청와대(요즘 대통령실)와 여당 관계는 묘했다. 군사 정권 시절에야 대통령의 시퍼런 권력에 여당은 말 그대로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 역할에 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당 총재고 당 대표는 그 아래인 오너와 고용 사장 관계와 같았다.

노태우 정권 초반까지 이런 구조를 유지하다가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면서 당청 관계에서 변화를 맞았다. ‘총재 노태우-대표 김영삼(YS)’으로 이전과 같은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YS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스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고 했으니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3당 합당 시 작성된 내각제 개헌 각서가 공개되자 대선 도전 의지가 강했던 YS는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갔다. 노태우 대통령이 YS를 불러 화해했다. 노 대통령이 항복한 셈이 됐고 이때부터 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었고 YS는 대선 주자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YS도 대통령이 된 뒤 여당 총재를 겸임하면서 당을 지배했다. 하지만 1996년 차기 대선 주자인 이회창 전 총리가 여당에 들어오면서 힘이 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 전 총리는 YS 임기 말인 1997년 3월 당 대표가 된 뒤 9월 총재에 오르면서 당의 실권자가 됐다.

권력의 추가 ‘임기 초 청와대, 임기 말 여당’으로 쏠리는 것은 대부분의 정권에서 나타났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7명의 대통령 가운데 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5명이 소속 정당을 떠났다.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너무 멀어져도 문제고 대통령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식으로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문제다. 당의 권력이 너무 세져 대통령과 당이 멀어지게 되면 국정 운영이 힘을 받지 못하고 난맥상을 보이기 십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초반부터 여당에서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강하다 보니 주요 정책을 두고 당·청이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인 게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행정 중심이 아닌 경제 중심 도시로 만들기로 했지만 차기 대선에서 중원권의 표심을 의식한 친박의 반대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 9단 YS·DJ도 임기 말 여당에서 버림받아

반대로 대통령이 여당을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꼭두각시처럼 여긴다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워진다. 대통령 참모들은 현실적으로 민심을 제대로 전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과거 여당이 대통령에게 여론과 민심을 전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곤 했다. 조각(組閣) 또는 개각(改閣) 때 문제가 많은 후보의 경질을 당에서 건의해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한 경우가 그렇다. 요컨대 대통령과 여당 관계에서 힘의 추가 어느 한쪽에 너무 쏠리지 않게 적절하게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게 국정 운영에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쉽지 않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권위주의적 대통령도, 정치 9단이라던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말 자신이 세운 정당에서 버림받은 것을 보면 대통령과 여당 간 균형추를 잡는 게 여간 여러운 일이 아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3월 9일 전당대회를 열고 대표와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를 선출했다. 국민의힘은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 선거에서 연승했지만 대통령실을 비롯한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이준석 대표 간 내홍을 겪으면서 여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국정 혼선을 거듭했다. 이 대표가 중도 하차하고 두 번이나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선거 승리 정당이 비대위를 꾸린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만큼 집권당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됐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연금·노동 개혁, 부동산 규제 완화 관련 법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입법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반대로 입법 권력을 틀어쥔 거야(巨野)를 상대로 정교한 전략도 보여주지 못했다. 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 거야의 일방적인 독주에 여당이 적절한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일까. 국민의힘 주류는 친윤 후보인 김기현 대표의 당선을 위해 당원 100% 투표,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주저앉히기 등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방법을 동원했다. 그 결과 김 대표뿐만 아니라 최고위원들도 모조리 친윤계가 차지했다. 전당대회가 끝난 뒤에도 신임 친윤 최고위원들은 친이준석계 낙선 후보들에 대해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김기현 대표는 ‘연포탕 대통합’을 외쳤지만 최고위원들은 친이 후보들을 겨냥, ‘훌리건들’,‘내부 총질러’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제대로 뒷받침하기 위한 ‘원 팀’을 외치고 있다. 김 대표부터 취임 일성으로 당정 일체를 강조했다. 사무총장·대변인 등 주요 당직도 친윤계가 꿰찼다. 3월 13일엔 대통령과 여당 새 지도부가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찬을 열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월 2회 정례 회동도 열기로 했다. 3월 19일부터는 고위 당정 협의도 재개됐다.

김대중 정부 중반까지는 당 총재인 대통령이 여당 대표에게 당무 보고를 받는 주례 회동이 있었지만 당정 분리로 사라졌다. 이런 대통령-여당 대표의 정례 회동을 복원하는 것은 국정 운영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주요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이다. 이는 내년 총선 성적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여당의 시각이다. 그간 지리멸렬해 온 국민의힘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면을 벗지 못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우려한 대로 식물 정권, 식물 대통령이 말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제 대통령실과 혼연일체가 돼 여당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목소리 크고 친윤계 장악, 위기 시작일 수도

하지만 당 운영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당이 친윤계 단색이면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당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친윤계가 당을 완전히 장악한 채 ‘마이웨이’하고 대표 경선에서 김 대표를 선택하지 않는 비주류 표 47%를 외면하는 순간부터 위기는 시작될 수 있다. 비주류의 반발로 당력이 분산돼 효율적인 거대 야당 대응 전선 형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 여당인 마당에 분열은 자칫 국정 운영을 벼랑 끝으로 몰 수 있다. 지도부 경선에서 패배한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비주류를 끌어안지 못한다면 당세 확장도 기할 수 없고 결국 총선 승리에도 도움이 안 된다. 정당 내에선 이견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만큼 그런 다양성을 바탕에 두고 당내 치열한 토론과 조율을 거쳐 접점을 찾아내고 당력을 모으는 것이 국민의힘의 과제다. 김 대표도 평소 강조한 ‘질서 있는 다양성’과 맥이 닿는다.

결국 일사불란한 당의 모습도, 지난 대선 이후 국민의힘의 모습과 같이 수습 불가능할 정도의 내분도 윤 대통령과 여당엔 독(毒)이다.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이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내야 하는 게 윤 대통령과 김 대표의 과제다. 그런 점에서 정례 회동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민심의 전달 통로로 삼아야 하고 윤 대통령도 일방적 지시 창구로만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김 대표의 리더십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