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기회·자기 합리화…범죄학자가 연구한 ‘부정의 삼각형’

불황일수록 유혹은 커진다…횡령은 ‘누가 왜’ 저지르나[횡령 막는 법]
2월 28일 한국 1위, 글로벌 4위의 치과용 임플란트 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의 최대 주주가 창업자인 최규옥 회장에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의 컨소시엄인 덴티스트리인베스트먼트로 변경됐다. 지난해 1월 2215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내부 직원 횡령 사고로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린 데 이어 결국 오너가 회사를 매각하게 된 것이다.

오스템임플란트 사건은 기업 내부에서 발생하는 횡령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에는 유난히 거액의 횡령 사고가 빈발했다. 오스템임플란트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에서도 614억원의 횡령 사고가 발생해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 같은 횡령 사고는 발각되기 전까지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발각되지 않을수록 대범해지면서 횡령 액수가 커지고 기업 자금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부인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등의 공통점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횡령 사고는 경기 침체기일수록 유혹이 커지고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부진에 더해 부동산 침체, 주식 시장 불안, 수출 감소 등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올해 한국 기업들은 한층 기업 내부의 횡령이나 사기 등 부정 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해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구조 조정이 본격화되거나 소득 감소 등 경제적 압박이 심해질수록 횡령에 대한 유혹도 커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상 외부 또는 내부에서 다양한 유형의 횡령(fraud) 발생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한국 기업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업과 조직들이 횡령 위험에 언제나 노출돼 있고 종종 탐지되지 못하거나 보고되지 않는 것도 부지기수다. 기업 내부 횡령 사건은 규모가 크건 작건, 외부에 공개되든 공개되지 않든 기업 가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 생각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절대 쉬쉬하거나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특히 정보기술(IT)의 혁명적 발달과 사용으로 기업 거래가 복잡해지고 디지털화되면서 최고경영자(CEO)라고 할지라도 회사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비가시성(invisibility)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이 같은 기업 환경 변화도 횡령 사고의 위험을 높이고 선제적인 탐지·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다.
◆외부 횡령보다 더 위험한 내부 횡령

공인부정조사인협회(ACFE : Association of Certified Fraud Examiner)에서는 횡령을 내부 횡령과 외부 횡령으로 구분하고 특히 내부 횡령을 ‘직업상의 횡령(occupational fraud)’으로 더욱 심각하게 본다. 기업의 자원 또는 자산을 오용(유용), 개인적인 부를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업무(직위)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에 더 치명적이고 장기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횡령은 항상 치밀한 의도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된다. 실수나 오류에 의한 경우는 없다. 내부 횡령자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기밀 자료나 돈을 빼낼 목적으로 미리 계획하고 내부 통제 우회, 서류 조작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최종적으로 횡령을 성공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업 내 자산이나 직위를 100% 활용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법인체 혹은 기업이 탄생한 이후 오랫동안 기업 횡령의 발생 원인과 횡령 사고를 줄이기 위한 예방법, 횡령을 사전 탐지하는 기법 등은 학계와 기업계의 관심사였다.

범죄학자인 도널드 크레시는 횡령죄를 범한 화이트칼라 범죄자 200명을 심층 면접 조사해 ‘부정의 삼각형(fraud triangle)’ 이론을 정립했다. 크레시에 따르면 조직과 사회의 신뢰를 저버리고 횡령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우선 금전적 어려움에 의해 ‘동기’를 갖게 된다. 주식 투자 실패, 과도한 부채, 가족의 장기 투병으로 인한 생활고 등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은 횡령의 가장 큰 동기다. 도벽·사치·음주·도박·마약·한탕주의 등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정상적인 수입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재정적 압박에 해당한다. 경영 목표 또는 실적 달성에 대한 부담, 승진 또는 보상에 대한 불만, 과도한 업무 등 회사에 대한 불만도 간혹 횡령의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동기가 충만한 상황에서 내부 통제 취약, 비리에 대한 미약한 처벌 등 ‘기회’가 주어지면 횡령을 실행하게 된다. 재무·자금뿐만 아니라 전사적인 내부 통제 수준이 낮거나 자산 보호가 충분하지 못하면 내부 통제를 우회할 수 있는 지식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임직원은 횡령의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또한 횡령 사고에 대한 회사의 대처가 미약하거나 미온적이면 비윤리적인 조직 문화가 만연하고 횡령 사고에 대한 경계를 무력화하게 된다. 기업으로서는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횡령 등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강조함으로써 이 같은 ‘기회’ 자체를 없애는 데 주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에이스, 미래의 CEO라도 혹시 모를 일
‘부정의 삼각형’을 완성하는 마지막 구성 요소는 횡령을 저지른 임직원이 흔히 빠지는 ‘자기 합리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신의 행위를 횡령이 아닌 ‘차용’이라고 합리화하는 경우다. 내부 횡령자들은 급박한 사정에 의해 잠시 회사 자금을 빌린 것일 뿐 조만간 횡령한 자금을 반환할 것이기 때문에 회사 공금의 유용이 아니라 일시적인 대출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상위 경영진에서 해오던 부정적인 관행을 단순히 모방했을 뿐이라거나 회사의 부당한 처우를 금전적인 이익으로 보상받으려고 했을 뿐이라는 식의 합리화 역시 흔히 보인다.

기업 내부 횡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회’와 기회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횡령 행위자의 역량 또는 능력이다. 특정한 횡령의 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직위과 직능, 회사의 취약한 내부 통제를 악용할 수 있는 권한 및 역할, 회사의 정책과 프로세스, 시스템에 대한 지능, 회사 내 다른 직원을 설득하는 의사소통 능력 등이 꼽힌다. 이 같은 능력은 대규모 또는 장기간에 걸친 횡령에서 특별히 중요한 요소다.

유난히 유능하고 유난히 주말 휴일에도 열심히 근무하며 유난히 상하좌우 활달한 직원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에이스 직원, 미래 CEO의 자질이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견제와 균형, 크로스 체크는 조직과 인사 관리의 기본 중 기본 아닌가.

박현출 PwC컨설팅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