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예대 마진 높고 유가증권 투자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아…금융권 “예의 주시해야”

[스페셜 리포트]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미국 16위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 시장이 긴장 하고 있다. 금융권은 SVB를 파산으로 몰고 간 여러 요인이 한국 은행들에도 적용되느냐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총자산 2090억 달러를 가진 SVB의 주요 고객은 정보기술(IT)·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등이다. 이들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막대한 투자 자금을 끌어오면서 SVB에도 예금이 늘어났다. 이렇게 불어난 예금을 SVB는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펼치면서 자금줄이 막힌 기술 기업들은 SVB에 맡겼던 예금을 대거 찾아갔다. 설상가상으로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큰 손실까지 입게 됐다. 이에 따라 3월 10일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는 SVB의 폐쇄를 결정했다.

한국 은행 계좌, 99%가 ‘1억원 이하’

SVB에 이어 뉴욕 시그니처은행까지 연쇄 파산하면서 미국 금융권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또 다른 은행들의 파산과 ‘뱅크런’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 시장 역시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1년 넘게 이어진 강력한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의 여파가 이번 파산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한국의 금융권도 자유롭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덩달아 한국 은행들의 자산 구조도 주목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 은행들의 포트폴리오는 SVB와는 크게 다르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총수신은 1747억 달러, 여신은 743억 달러였다. 일반 은행 대비 여수신 비율이 42.5%로 매우 낮다.

반면 보유 채권의 비율은 높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SVB가 보유한 채권의 규모는 총자산에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개인 예금 비율이 10% 미만으로 매우 적다는 것도 특화 은행인 SVB의 특징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의 은행들은 여수신 비율이 높고 보유한 유가증권의 비율도 낮다. 팬데믹 기간에는 오히려 예대 마진을 늘리며 수익을 극대화했는데 이것이 안정적인 구조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주요 은행의 총여신(은행 계정)을 총수신으로 나눈 여수신 비율은 모두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은행들이 예금을 100만원 받으면 90만원 이상을 대출에 할애했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의 3분기 기준 수신 규모는 367조959억원, 여신은 365조1070억원으로 여수신 비율이 99.5%였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의 수신 규모는 총 335조8759억원, 여신은 322조808억원으로 여수신 비율은 95.9%였다. 우리·NH농협·하나은행 역시 여수신 비율이 모두 90%를 넘었다.

예금 대부분을 대출에 썼기 때문에 채권 등 유가증권의 투자 비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분기 기준 신한은행의 총자산(은행 계정)은 465조3937억원, 보유 유가증권은 86조8317억원으로, 유가증권 비율은 18.7%였다. NH농협의 총자산 400조1072억원 중에서 유가증권은 71조2176억원으로 17.8%를 차지했다. KB국민·우리·하나은행 역시 유가증권 보유 비율이 15~16%를 넘기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주요 고객들의 구성 비율도 크게 다르다. SVB는 밴처캐피털펀드나 기술 스타트업 등 주고객 대부분이 기업이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를 훨씬 넘는 고액 예금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은행이 위기를 겪자 예금주들이 대량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졌다.

반면 한국의 주요 은행에서는 개인과 소액 예금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한국 은행의 저축성 예금 계좌 중 99.5%가 상대적으로 소액인 1억원 이하로 집계됐다. 한국의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는 5000만원이다.

다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14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현시점에서는 SVB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의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상이하고 유동성이 양호해 일시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충분한 기초 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따르면 한국 은행 등 주요 금융회사와 4대 공적연금·한국투자공사(KIC)·우정사업본부 등 투자 기관 등의 관련 은행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걸로 파악됐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