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DC 1달러에서 0.87달러까지 하락…암호화폐 유동성 당분간 저조할 것

실버게이트·SVB·시그니처은행 몰락의 공통점은 암호화폐?[비트코인 A to Z]
지난 1주일간 암호화폐 시장은 아주 다이내믹한 한 주를 보냈다. 실버게이트·실리콘밸리은행(SVB)·시그니처은행 등 암호화폐에 우호적이던 미국 은행들이 모두 파산하거나 폐쇄되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암호화폐 지원하며 성장한 실버게이트
실버게이트는 암호화폐를 전문으로 지원하면서 성장해 온 은행이다. 하지만 FTX 파산과 암호화폐 업체들의 연이은 출금으로 자금난에 처했다. 실버게이트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할 연간 보고서 10-K의 기한을 맞출 수 없다면서 불안정한 기업 운영 상태를 보여주자 주식 가치가 50% 이상 하락했다.

실버게이트는 1988년 설립된 캘리포니아은행으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암호화폐를 지원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줬다. 지난해 초 메타(구 페이스북)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디엠’을 인수하며 주목 받았고 지금까지 약 1500곳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했다.

실버게이트는 미국 중앙은행(Fed)에서 정식 은행업 인가를 받은 곳이므로 Fed가 매년 요구하는 일정 자기 자본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재를 받는다. 직원을 40% 정리 해고하고 자산 매각을 진행했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3월 8일 실버게이트의 모회사인 실버게이트캐피털은 “은행 운영의 질서 있는 중단과 자발적인 청산이 최선의 길”이라며 파산을 발표했다.미국 스타트업 절반 먹여 살리던 SVB는 왜?실버게이트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3월 10일 미국 은행 규모 16위의 SVB가 지속된 주가 하락과 예금 인출 사태로 인해 파산했다. 이는 2008년 금융 사태 당시 파산한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최대 규모이고 미국 역사상 둘째 규모의 은행 파산 사태다.

SVB는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상업 은행으로, 파산 이전 미국에서 열여섯째로 큰 규모의 은행이었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은 예금을 가진 은행이었다. 특히 SVB는 ‘스타트업의 산파’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테크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SVB에 자금을 예치하거나 혹은 SVB에서 자금을 조달 받은 미국 내 테크 기업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였다.

글로벌 결제 시스템, 환율 리스크 관리 등과 같은 SVB의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예치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너도나도 SVB에 자금을 예치하기 위한 풍조가 형성됐고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이 누적되면서 SVB는 미국 내 스타트업의 절반에 이르는 기업들의 자금을 보유하게 됐다.

2020년과 2021년 발생한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당시 발생한 유례없는 스타트업 붐은 SVB에 수많은 예금을 가져다줬다. 2017년 440억 달러의 예치량을 기록한 것에 비해 2021년에는 1890억 달러를 예치하며 4배가 넘는 엄청난 성장을 보여줬고 이에 비해 대출은 같은 기간 230억 달러에서 660억 달러 성장에 그쳤다. 해당 이익을 기반으로 SVB는 남는 자산을 미국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등 수익률이 높은 장기채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도 잠시, 2021년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과 Fed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인해 채권의 시장 가치가 급속도로 하락했고 주로 장기채에 투자한 SVB는 극심한 손실을 봤다. SVB의 재무 건전성 악화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주목하기에 충분했고 여기에 더해 피터 틸의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가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SVB에 예치된 자금을 인출하라는 내용을 담은 뉴스레터를 보낸 것은 공포심에 불을 지폈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많은 벤처캐피털(VC)들도 주목하는 뉴스레터에서 SVB에서 자금 인출을 권고하자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됐고 결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인출 요구가 가속화됐다. SVB는 상황을 개선하고 예금자들에게 지불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3월 8일 약 210억 달러의 자산을 매각하고 150억 달러를 차입했다. 여기에 더해 22억5000만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자사주 일부를 긴급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SVB의 주식 $SIVB는 3월 8일 하루 동안 34%의 하락률을 기록하며 사태의 시작을 알렸다.
실버게이트·SVB·시그니처은행 몰락의 공통점은 암호화폐?[비트코인 A to Z]
SVB를 둘러싼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고 결국 다음 날인 3월 9일까지 총 420억 달러 정도가 인출되며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엄청난 폭의 주가 하락이 지속되자 3월 10일 나스닥은 $SIVB의 거래를 중단했고 캘리포니아 금융보호혁신부(CDFPI)는 결국 SVB의 파산을 발표하며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FDIC가 SVB의 자금을 관리하게 되면서 25만 달러라는 예금보험 한도 내에서 기업이 인출할 수 있지만 문제는 SVB의 전체 예금 중 93%가 예금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이에 SVB에 자금을 예치한 수많은 스타트업이 온전히 자금을 인출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가중됐고 이는 단순히 스타트업업계의 줄도산을 넘어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처럼 미국 내 전국적 금융 위기,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위기로 악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미 정부는 더 이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3월 12일 예금보험 한도에 상관없이 SVB에 예치된 예금 전액을 보증하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미 재무부, Fed, FDIC의 해당 공동 성명문에 따라 모든 예금주는 3월 13일(현지 시간) 이후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고 SVB의 손실과 관련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주주와 담보가 없는 일부 채권자는 해당 구제에서 제외됐다.SVB 사태의 여파, 공포 학습한 시장 급락 이번 SVB 파산 사태로 인해 시장에선 기존의 예상을 깨고 이번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가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고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금리 동결을 예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물가 안정을 위한 지속된 금리 인상이 가져올 수 있는 여파를 여실히 실감한 시장이 SVB와 같은 사례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다. 골드만삭스가 3월 12일(현지 시간)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번 FOMC에서 Fed가 빅 스텝(50bp 인상)을 밟을 가능성은 0%를 기록하고 있다.

SVB의 파산은 암호화폐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서클에서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 USDC는 테더의 USDT에 이어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러한 서클도 SVB의 파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3월 10일 서클은 공식 트위터를 통해 USDC 준비금 400억 달러 중 약 33억 달러를 SVB에 예치한 사실을 밝히면서 1달러에 고정된 USDC 가격이 한때 0.87달러까지 떨어졌다. 1달러 유지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USDC가 하락하자 이미 공포를 학습한 시장은 급속도로 반응했고 USDC를 USDT를 비롯한 다른 자산으로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돼 최고 10%가 넘는 하락을 기록했다.

실버게이트·SVB·시그니처은행 몰락의 공통점은 암호화폐?[비트코인 A to Z]
(USDC 가격 변화, 자료 : 코인마켓캡(CoinMarketCap))

SVB 붕괴 여파 속에 미국 은행 시그니처은행도 문을 닫았다. 3월 12일 미국 뉴욕의 규제 당국 금융서비스부(DFS)는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시그니처은행이 폐쇄된 자세한 이유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그니처은행의 모든 예금자 자산을 보호하고 금융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시그니처은행은 실버게이트와 함께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은행이다. 시그니처은행의 예치금은 885억9000만 달러(약 117조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실버게이트와 시그니처은행은 암호화폐업계 스타트업의 주요 은행이었다. 두 은행 모두 암호화폐 자산 관리 및 결제 서비스를 지원했는데 이들이 모두 문을 닫음에 따라 암호화폐를 지원하는 새로운 은행이 나오기 전까지 당분간 암호화폐 시장의 유동성이 저조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번 SVB 파산은 비단 SVB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팬데믹 당시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시장에 수많은 자금이 풀렸을 때부터 예견됐던 위험이 이제야 모습을 보인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인근의 또 다른 중소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First Republic Bank)이 뱅크런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설이 흘러나왔고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3월 10일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주가가 장중 50% 이상 급락했다.

만약 우려가 현실이 돼 연쇄적인 파산이 발생한다면 상대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취약하고 중소 은행에 자금 노출 비율이 높은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것이고 이후 VC를 시작으로 그 여파가 확산될 수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이 2008년과 같은 전 세계적 금융 위기의 전조 현상이 아닌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동혁 디스프레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