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총괄하는 ‘대기금’ 수장 교체…화웨이는 설계 소프트웨어 독자 개발 나서

[글로벌 현장]
직원들이 중국 장쑤성 화이안의 반도체 칩 생산 라인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직원들이 중국 장쑤성 화이안의 반도체 칩 생산 라인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국이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국가반도체펀드의 수장을 교체했다. 집권 3기를 시작한 시진핑 지도부가 기술 자립을 다시금 강조하면서 전열 재정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국은 ‘산업의 비타민’ 희토류의 올 상반기 생산량을 역대 최대로 설정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리튬에선 2025년 전 세계 공급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첨단 산업 원재료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자원 굴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반도체 진용 대대적 재정비

중국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대기금)은 최근 신임 총재에 장신 전 공업정보화부 인터넷안전관리국 부국장을 선임했다. 공업정보화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다.

대기금은 2014년 유망한 반도체 기업들에 투자해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대기금 등에서 153억 위안(약 2조7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뒤 공장도 다 짓지 못하고 도산한 우한훙신을 비롯한 투자 실패가 잇따르자 당국은 지난해 대기금 관련 고위 임원들에 대한 부패 조사에 착수했다.

대기금 설립 당시부터 7년 동안 총재 자리를 유지했던 딩원우가 지난해 8월 물러났고 이번에 장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 샤오야칭 공업정보화부 장관까지 낙마했다. 항공 전문가인 진좡룽은 장관에 선임됐다.

중국은 2015년 제조업 강국 건설 계획인 ‘중국 제조 2025’를 내놓으면서 반도체 등 핵심 소재의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자급률은 기업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중국 땅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중국 반도체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시장 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자급률은 2015년 14.9%에서 2021년 16.7%로 1.8%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중국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 비율은 6.6% 수준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기술 자립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첨단 반도체와 이를 제조하는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려면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 통제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과 네덜란드 등 반도체 장비 선도 국가들도 미국의 수출 통제에 동참할 예정이다.

중국에선 대기금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2014년 1390억 위안 규모로 조성된 1기 대기금은 기술 검증 역량이 부족해 ‘묻지 마 투자’를 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2019년 2기 대기금(2042억 위안)은 중국 최대, 세계 5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인 중신궈지(SMIC)를 중심으로 일부 유망 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D램 부문의 창장춘추(양쯔메모리), 낸드플래시의 창신춘추, 중국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의 선두 주자인 화다주톈, 장비 업체인 베이팡화촹과 중웨이 등은 대기금 투자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편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기술 통제 전략의 핵심 중 하나인 전자 디자인 자동화(EDA : Electronic Design Automation)를 독자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첨단 기술 견제에 맞설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화웨이는 중국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들과 협업해 14nm(나노미터·10억 분의 1m)급 이상 반도체를 설계할 때 쓰는 EDA 개발에 성공했다. 화웨이는 올해 이 EDA를 화웨이가 기존에 생산, 활용하고 있는 반도체에 적용할 계획이다.

EDA는 반도체 구조와 해당 반도체 공정의 설계, 성능 검증까지 할 수 있는 핵심 소프트웨어다. 미국 케이던스와 시냅시스, 독일 지멘스가 세계 시장을 75% 과점하고 있다. 지멘스의 EDA사업부도 미국 멘토그래픽스를 인수한 것이어서 사실상 미국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미국 3사의 점유율이 77%에 달하고 중국 토종 1위인 화다주톈은 5.9%에 불과하다.

미국은 지난해 8월 3nm급 이상의 고성능 반도체에 쓰이는 EDA를 중국 등에 수출하려면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 통제를 도입했다. 또 화웨이와 70여 개의 계열사를 2019년 5월 수출 통제 명단(일명 블랙리스트)에 올려 해당 기업과 거래하려면 상무부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화웨이는 핵심 반도체 설계를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에, 생산은 파운드리 전문 업체인 대만 TSMC에 맡겨 왔지만 미국의 통제로 손발이 묶였다. 하이실리콘은 7nm급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갖췄지만 미국 EDA를 쓰지 못하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핵심 반도체 생산도 막혀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도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화웨이의 EDA 국산화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견제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화웨이는 미국 제재 이후 78종의 핵심 기술을 선정해 독자 개발에 나섰다. 이후 토종 기업들과 협업해 EDA 등 11종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런정페이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년간 자사 제품의 부품 1만3000여 개를 국산으로 교체하고 회로기판 4000여 종을 재설계했다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중국이 ‘기술 자립’을 내건 이후 EDA는 반도체 부문에서도 특히 뭉칫돈이 몰리는 영역으로 부상했다. 상하이유니비스타라는 EDA 스타트업은 설립 2년 만인 지난해 6월 11억 위안(약 2081억원)을 유치했다. 난징 기반의 스타트업 X에픽도 수억 위안의 투자를 받아냈다. 지난해 6월 베이징 엠피리언이 선전 증시의 ‘중국판 나스닥’ 촹예반 상장 승인을 받기도 했다.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EDA 시장은 2020년 81억 달러에서 2024년 136억 달러로 연평균 13.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소재 확보에 사활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자원자원부는 2023년 상반기 희토류 채굴·제련 총량 및 배분 지침을 대상 기업들에 하달했다. 지침은 상반기 희토류 채굴량을 12만 톤, 제련 양을 11만5000톤으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역대 최대였던 작년 하반기 채굴 12만9000톤, 제련 10만4800톤보다 10% 정도씩 늘어난 규모다.

중국은 매년 상·하반기에 희토류 채굴·제련 총량을 결정하고 이를 국유 기업들에 배분한다. 연간 채굴량 기준 2020년 14만 톤, 2021년 16만8000톤, 2022년 21만7200톤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전체도 작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세계 희토류 채굴량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2017년 79.5%에 달했지만 2021년 60%까지 내려갔다. 2021년 미국은 4만3000톤, 호주는 2만2000톤을 채굴했다.

중국 국유 기업별로는 네이멍구자치구에 세계 최대 희토류 광산인 바이윈어보광산 채굴권을 갖고 있는 베이팡희토가 상반기에 8만943만 톤을 배정받았다. 2021년 말 국유 기업 3곳을 통합해 설립된 중국희토는 3만5548톤을 확보했다.

희토류는 채굴과 제련 과정에서 환경 오염 물질을 대량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선 생산을 기피했고 이에 중국이 희토류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은 희토류 무기화 방침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2020년 12월 희토류를 포함한 특정 물품이나 기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법인 수출 통제법을 시행한 데 이어 2021년 초에는 희토류 총량을 관리하는 희토류 관리 조례를 내놓기도 했다.

희토류는 원소기호 57번 란타넘에서 71번 루테튬까지 란타넘족 원소 15개와 스칸듐, 이트륨 2개를 더해서 총 17개 원소를 총칭한다. 화학적 성질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영구 자석·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에 두루 쓰인다. 전투기·레이더 등 첨단 무기 제조에도 필수다. 최근에는 전기자동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 자석의 핵심 재료인 네오디뮴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다.

한편 스위스 투자은행(IB) UBS는 중국 기업이 채굴권을 가진 광산이 채굴, 공급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용 리튬이 2022년 19만4000톤에서 2025년 70만5000톤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따라 세계 리튬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에서 32%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리튬 관련 기업들은 최근 수년 동안 전 세계 리튬 광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왔다. 2013년 이후 중국 1위 간펑리튬은 호주·아프리카·남미 등지의 리튬 광산에 120억 위안(약 2조3000억원)을 투자했다. 배터리 1위 CATL도 지난 1월 볼리비아 리튬 광산에 67억 위안을 투입해 채굴권을 확보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 중심의 전기차·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자 중국은 핵심 원재료 확보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