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시장 집중하면서 마케팅 강화하고 M&A 적극 진행
“K팝이라고 부르는 것에 질릴 수는 있지만 그것은 프리미엄 라벨이다.”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K’ 수식어가 질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내놓은 대답이다. 고급을 증명하는 라벨이기 때문에 자랑스럽다는 내용이다.
‘K’만 달면 모두가 흥행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 BTS 멤버 지민이 K팝 솔로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는 미국 만두 시장에서 점유율 40%를 넘기며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의 유아동복 브랜드는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지며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K팝·K-푸드·K-패션 등 대부분의 산업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K-뷰티’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특히 화장품업계의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지난해부터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살아나기 위해 미국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지만 뒤늦은 선택으로, 언제 성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온다.“질리지만 그것은 프리미엄 라벨”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침체기는 다른 산업이 ‘K’ 수식어의 혜택을 누리는 것과 대조된다. 2017년부터 북미·유럽 등에서 BTS를 시작으로 K-콘텐츠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이들은 당시 타깃 시장을 중국으로 설정하고 중국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지 매출이 줄어든 지금도 중국은 중요한 시장인데 과거에는 더 중요했다”며 “매출이 나오는 곳에 힘을 쏟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시장 다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들 기업은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이후 일본·동남아·북미 등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당시 중국 외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기에 좋은 마케팅 도구인 유튜브 채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실적을 유지하지 못한 요인으로 꼽힌다. BTS의 성공 요인에는 실력과 노력도 있지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영향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과거 BTS의 성공 요인에 대해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핵심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음악 콘텐츠 유통, 마케팅 활용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며 “스마트폰·태블릿 등 통신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SNS를 활용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파급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모두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계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4월 6일 기준 아모레퍼시픽의 공식 채널의 구독자는 2만5200명이고 LG생활건강의 공식 채널인 ‘LGCAREAD’는 구독자 2만 명이다. 다른 공식 영상인 LG생활건강TV는 임직원의 사내 소통을 중점으로 하며 구독자는 3300명 수준에 그친다.
대표 브랜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브랜드별로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기업 채널보다 브랜드 채널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설화수’의 구독자는 2만7500명, ‘후’는 633명에 불과하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후·숨·오휘·빌리프 등 각각의 화장품 브랜드가 별도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3년 내외”라며 “해당 채널은 콘텐츠를 통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목적과 각 브랜드가 보유한 디지털 콘텐츠의 아카이브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브랜드마다 자체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채널 오픈 시기가 어떻게 되는지 다 알지 못한다”며 “전략도 브랜드가 직접 짜고 예산 집행도 직접 한다. 기업에서 전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유튜브를 운영하는 데 공통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각 브랜드에서 알아서 광고를 올리기도 하고 제품을 알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SNS 마케팅 비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정확한 비용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커뮤니케이션 타깃 층의 사용 비율이 보다 높은 인스타그램에 유튜브보다 많은 비용을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예산은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은 매출 7조1858억원, 영업이익 7111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1.2%, 44.9% 급감했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은 전년 대비 15% 감소한 4조1349억원, 영업이익은 37.6% 감소한 2142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 화장품 회사 ‘위시컴퍼니’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화장품 회사로, 유튜브 채널을 키운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굴지의 화장품 기업이 아닌 곳이 오히려 K-뷰티를 알리고 그 효과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기준 매출은 616억원을 기록했는데 매출의 80%는 해외에서 발생한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00억원이다.
위시컴퍼니는 2013년 ‘위시트렌드 TV(Wishtrend TV)’라는 이름으로 채널을 오픈하고 10년째 기초 케어와 세안법 등을 중점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채널에 게재하는 모든 콘텐츠는 영어로 제작하는 등 처음부터 타깃을 한국이 아닌 해외로 잡았다.
또한 위시컴퍼니에서 론칭한 제품이 아니더라도 해외에 알리기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기업의 제품도 ‘K-뷰티’라는 주제로 영상을 제작한다. 회사보다 K-뷰티가 흥하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콘텐츠가 흥하면 자연스럽게 시청자 또는 구독자의 관심이 회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박성호 위시컴퍼니 대표의 지론이다. 현재 위시컴퍼니의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186만 명, 틱톡 채널에서는 약 16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 “뷰티는 어려운 업계…지금은 시행착오 기간”물론 반론도 있다. 화장품 산업은 전 세계적인 성공이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이 강자로 꼽히는 기초 화장품은 피부 타입별로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한국인과 비슷한 피부인 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흥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인종이나 국가와 관계없이 맛이 있다면 어떤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며 “하지만 뷰티는 인종에 따라 맞는 제품과 성분이 다르다. 동아시아 피부에는 맞지만 다른 피부 타입에서는 트러블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이나 에스티로더 등만 봐도 다들 기초보다 색조가 유명한 기업”이라며 “반면 한국은 기초가 더 비싸고 기초를 잘 만들고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인데 기초는 세계적으로 흥행시키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대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반면 LG생활건강은 북미에서 이미 유명한 곳과 인수·합병(M&A)을 하는 방향이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설화수에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함께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을 글로벌 앰버서더로 발탁하고 북미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의 파트너십 체결 이후 3월 29일 해당 미술관에서 ‘설화수 나이트 앳 더 메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 블랙핑크 로제를 비롯해 배우 윤여정,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애슐리 박 등이 참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설화수 마케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북미에서 아마존과 세포라 등 성장 채널 접점을 확대하고 마케팅 대응도 강화하며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다”며 “유럽에서는 멀티 브랜드숍 채널 세포라에서 라네즈가 견고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LG생활건강은 M&A를 택했다. 2020년 1923억원을 투자해 피지오겔의 아시아·북미 사업권을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1525억원을 들여 더크렘샵의 지분을 65% 확보했다. LG생활건강은 이미 인지도 높은 북미 브랜드에 K-뷰티 헤리티지 활용, 글로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공략하고 미국 현지 마케팅과 영업 역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 선진 시장인 미국과 유럽 등지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한류의 영향이 큰 지역의 글로벌 면세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 고객 접점을 확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K-뷰티가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은 시행착오를 겪는 기간인 것 같다.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 언제쯤 성과가 날 것이라고 말도 못 하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뒤늦게 나서는 만큼 적극적으로 새 시장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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