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망과 관련된 그 어떤 자료도 정확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집단 최면

다만 약에서 구하옵소서 시리즈 4

소중한 인명을 건조한 수치와 순위로 다루는 것이 매우 거북하지만 <표1>을 요약하면 이렇다.

-질병 외적 요인으로 인한 인명 손실 1위는 기아·영양실조다. 국제식량기구(WFP)에 따르면 매년 900만 명의 목숨이 기아와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하루 2만4600명이다.

- 3위를 기록한 교통사고 관련 사망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2020년 통계 기준 135만 명이다. 육상·해상·항공·보행 등을 모두 포함해 매일 3700명이 목숨을 잃는다.

- ‘무장 폭력에 관한 제네바 선언’에 따르면 전쟁과 무력 분쟁에 따른 직접 사망은 평균 10만7000명, 관련된 범죄·실종·사고 등을 포함하면 5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후자 기준으로 매일 1441명의 목숨이 사라진다.

- 이 밖에 자살은 대략 70만 건, 살인으로 인한 피해자는 47만 명,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약 18만 명, 국제적십자사가 집계한 자연재해 사망은 평균 6만8000명이다.
의료제국의 도끼와 발등[몸의 정치경제학]
의문 부호가 붙어 있는 둘째 항목을 살펴보자. 매년 평균 260만~360만 명이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각종 공식 통계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 공포의 항목은 바로 의료 사고로 인한 사망이다.

믿기지 않아 각종 데이터들을 뒤져 봤다. 요즘 대세라는 챗GPT를 통해 몇 번이고 재확인했다. 사실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 보고서는 전 세계 사망자 10명 중 1명이 의료 과실 혹은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는 충격적인 경고를 보냈다(더 인디펜던트, 2017년 2월 4일).

WHO도 2019년 ‘글로벌 환자 안전’ 보고서에서 의료 오류(medical error)나 위해 사건(adverse event)으로 중저소득 국가에서 매년 약 26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또 중저소득 국가의 병원에서 매년 약 1억3400만 건의 위해 사건이 발생했고 고소득 국가에서는 입원 환자 7~16% 정도의 위해 건수가 발생해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것이다.

OECD 보고서가 과장이 아닐까 싶어 근거를 찾아봤다.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의료 과실로 인한 사망은 전 세계 전체 사망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추정했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료 과실은 심장 질환과 암에 이어 전 인류에게 셋째로 큰 사망 요인이 된다.

2018년 란셋에 발표된 논문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논문은 “의료 과실은 심장 질환과 뇌일혈에 이어 전 세계에서 셋째로 큰 사망 원인으로, 매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정보들에 따라 <표2>는 질병에 의한 사망 요인을 재구성한다.



교통사고나 전쟁보다 많은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질병과 싸우는 의료 현장이 세상에서 셋째로 많은 죽음의 소재지라는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2019년 기준 전 세계 사망자는 5600만 명이다. OECD 말대로 10%면 560만 명인데 이는 WHO가 언급한 360만 명(260+100)보다 휠씬 큰 수치다. 환산하면 WHO는 전 세계 사망 인구의 6.4% 정도가 의료 사고에 기인한다고 추정한 셈인데 200만 명에 달하는 수치 차이는 그 누구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 거대한 차이라면 데이터로서 신뢰성을 기대할 수 없다. 물론 관련 보고서와 논문들도 통계치라는 단어 대신 ‘추정치’라는 한정적 용어를 쓴다. 제한된 샘플에 기초한 정밀하지 못한 계산 때문에 수치의 신뢰성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온라인에는 근거 없는 추측과 공포를 조장하는 의료 사망 괴담들이 횡행하기도 한다.

의료 사고를 독립적이고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명시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의료 과실, 사고들이 통상 여타 감염이나 심혈관 질환 같은 요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기아·영양실조로 인한 사망도 그것이 면역 체계 약화와 여타 질병과의 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각종 통계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의료 오류는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모든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2016년 5월 3일)”고 했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된 한 논문도 “의료 사건 데이터는 본질적으로 신뢰할 수 없고 기관과 의료 시스템마다 상당한 편차가 있다(2020년 12월 14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명심할 부분은 정량화의 불확실성과 불투명성 때문에 위에 제시된 의료 사고로 인한 사망 추정치들을 침소봉대나 과장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수치들은 과하게 산정된 것일 수도, 역으로 축소 계산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의 루시안 리프(Lucian Leape) 보건정책 겸임 교수는 “미국에서 의료 오류는 심각하게 과소 보고돼 왔고 문제의 실제 규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의 주요 장애물이었다(NPR, 2016년 5월 3일)”고 주장한다.

그렇다. 문제의 본질은 숫자와 통계의 불확실성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 불확실성을 키우는 시스템에 있고 그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방치해 온 관행에 있다. 그래서 의료 실수·사고·위해·과오·과실·사망과 관련된 그 어떤 자료도 정확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사회적 체념과 집단 최면이 지배할 수 있었다.

의료 사고가 전 세계에서 셋째로 큰 사망 요인이라는 충격적 발표에 대한 정서적 저항과 심리적 거부감도 거기에 서식해 왔다. 그래서 비본질적인 숫자를 둘러싼 억측과 논쟁만 난무했고 의료 현장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위한 사회적 실천은 뒷전으로 밀려 왔다.
환자 안전 법령의 반대자들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많은 국가들이 환자 안전 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유형과 활동 범위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국가 환자 안전 기관 설립, 의료 과실 보고 시스템 강화, 의료 전문가 대상 환자 안전 교육, 대중 인식 증진 캠페인 등이 활발하다. WHO는 ‘글로벌 환자 안전 네트워크’를 설치해 각국의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세계적 추세에 뒤늦게나마 동참했다. 환자안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2020년 7월 통과되면서 의료평가인증원 산하의 중앙환자안전센터가 출범한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환자안전법은 의료 단체의 반발·로비·저항으로 인해 심각한 기형과 마비를 지닌 채 태어났다. 이름도 거창한 중앙환자안전센터는 또 하나의 ‘흰 코끼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환자 안전사고에 대한 보고와 체계적 집계의 최대 장애물은 국민 다수가 신뢰해 마지 않는 의사 선생님들이었다. 그간 관행이었던 의료 사고의 ‘자율 보고’를 ‘의무 보고’로 바꾼 법률 개정에 저항한 세력은 바로 의사들의 결사 조직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였다는 말이다.

의협은 ‘기준 현실화’라는 진부한 명분하에 정부가 제시한 의무 보고 사건의 정의, 과태료 규정, 의료기관의 범위 등 모두를 축소 혹은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맞섰다(의협신문, 2020년, 5월 6일). <표3>은 공포된 정부안과 이에 반한 의협의 요구를 요약한다.
의료제국의 도끼와 발등[몸의 정치경제학]
무엇이 환자 안전의 장애물인지 명확해진다. 그동안 왜 의료 사고로 인한 각종 피해·장애·사망 통계가 부족·부정확·축소 보고돼 왔는지도 알 것 같다. 전 세계 사망 요인 3위가 의료 사고라는 사실이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도, 부각되지도 않았는지 알 것 같다.

발등을 찍은 도끼를 탓하지도, 찍힌 발등을 탓하지도 말자. 유용한 장비가 나무 대신에 발등을 찍게 방치한 부실과 부주의를 탓하자. 도끼 주인의 경각심이 절실하다. 의료 사고와 환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 말이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