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무기 비축 경쟁에 “2차대전 이후 최대”
러시아·중국 점유율 하락 빈틈 노려

[비즈니스 포커스]
K2 전차. 사진=현대로템 제공
K2 전차. 사진=현대로템 제공
전 세계 주요국이 국방비 증액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K-방산’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의 주요 방산 기업들이 2022년 100조원에 달하는 수주 잭팟을 터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산업(KAI)·LIG넥스원·현대로템 등의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한국 주요 방산 기업들의 누적 수주 잔액은 94조8000억원 규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52조6586억원으로 가장 많은 수주 잔액을 확보했다. KAI 24조5961억원, LIG넥스원 12조2651억원, 현대로템(디펜스솔루션 부문) 5조2749억원으로 모두 전년 대비 대폭 증가했다.

한화에어로, 통합 이후 수출 확대 기대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말 한화디펜스를 합병한 데 이어 올해 4월 1일 한화방산을 합병하면서 통합사 구축을 완료해 올해 실적 기대감이 더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부터 한화방산의 실적이 연결 편입될 예정으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수출 확대도 가시화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은 세계 자주포 시장점유율 52%를 차지하고 있다. K-9과 천무 등의 수출이 늘어나면 155mm 탄약부터 유도 무기 등을 개발·생산하는 한화방산과 패키지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승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폴란드발 K-9, 천무의 잔여 물량에 대한 2차 이행 계약 체결이 예상되며 사업 규모가 5조~10조원으로 추정되는 호주 차세대 장갑차 도입 사업도 올해 1분기에 우선 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라면서 “올해도 수주 기대감이 유효하다”고 내다봤다.

폴란드도 신형 보병 전투장갑차(IFV) 사업에서 보완 수단으로 레드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폴란드발 수출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인도의 K-9 추가 조달, 비호-Ⅱ, 천궁-Ⅱ 등 유도 무기의 해외 수주도 기대된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군비 증강 경쟁, K-방산에 훈풍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각국은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비 지출을 앞다퉈 늘리며 무기 재고 비축에 나서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전쟁 이후 안보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약 10년 만에 방위비 지출 목표치 상향을 추진 중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에 따라 NATO 회원국들의 무기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무기 재고를 비축하고 각국의 방산 역량 강화가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는 올해 국방 예산을 NATO 최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 수년 내 GDP의 5%까지 높일 계획이다. NATO는 회원국들에 GDP 대비 국방 예산 비율을 2%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는데 독일은 이에 맞춰 국방 지출을 GDP 대비 2% 수준에 맞추기로 했다.

영국도 중국·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향후 2년 동안 국방비를 50억 파운드(약 8조원) 증액하고 GDP의 2.5%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전 세계 국방 예산의 39%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도 평시 기준 사상 최대인 8350억 달러(약 1100조원)의 국방 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직전 회계연도에 미 의회가 책정한 국방 예산 8160억 달러(1075조원)보다 2.3% 정도 많은 금액이다. 군용 무기 구매에 1700억 달러(220조8470억원), 신형 무기 개발에 1450억 달러(191조원)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전쟁 이후 무기 수입이 두드러진 국가는 폴란드 등 동·북유럽이다. 폴란드는 2022년 한국 방산 업체들과 총계약 규모가 최대 450억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무기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세부적으로 K-2 전차(980대, 230억~280억 달러)와 K-9 자주포(648문, 50억~60억 달러), FA-50 경공격기(48대, 30억 달러)와 다연장 로켓(MLRS) 천무(288문, 75억~85억 달러) 등이다. 지난해 이에 대한 124억 달러의 1차 이행 계약을 체결했다.

전 세계적인 국방비 증액 움직임에 따라 향후 10년간 전 세계 국방 예산은 기존 전망치 대비 2조 달러(2600조원), 무기 획득 예산은 6000억 달러(780조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애비에이션 위크는 분석했다.
2023년 3월 23일(현지 시간) 폴란드 토룬 포병사격장에서 한국이 수출한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2023년 3월 23일(현지 시간) 폴란드 토룬 포병사격장에서 한국이 수출한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핵심 기술 유출 대비해야

K-방산은 수출 역군으로 부상했다. 2022년 한국의 방산 수출은 173억 달러(약 23조원)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방산 시장에서 한국은 2.8%의 점유율로 전 세계 8위를 기록해 전년보다 한 계단 올랐다.

정부는 2027년까지 방산 수출 시장점유율 5%를 달성하고 미국·러시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대한민국 1호 영업 사원’을 자청하며 방산 수출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4월 중 방산 수출 확대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의체인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를 4월 중 본격적으로 출범시키기로 했다.

한국 방산 기업들은 올해도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K-방산은 역대급 가성비와 신속한 납기 능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방산 선진국들은 탈냉전 시기에 군축 기조에 따라 최첨단 무기 체계에 집중했다.

반면 한국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수성에 따라 전차나 자주포와 같은 화력 위주 무기에 역량을 집중했다. 화력 무기와 관련한 생산 능력 그리고 납기 단축과 단가 측면에서 모두 경쟁국 대비 우위에 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방산 시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호황”이라며 “기존 방산 수출 강국인 러시아·중국의 무기 시장점유율 하락에 따른 틈새시장 공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년(2013~2017년) 대비 최근 5년(2018~2022년)간 러시아·중국의 무기 시장점유율은 감소 추세다. 러시아는 22%에서 15%로 6%포인트 줄었고 중국은 6.3%에서 5.2%로 1.1%포인트 감소했다.

최근 동남아시아에선 최대 무기 공급원이던 러시아 무기 판매 급감으로 한국이 최대 무기 공급원으로 부상했다. 중국산은 품질 문제로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무기의 가격·품질·금융·신속 배송과 동남아의 거대한 지정학적 이슈에 관여하지 않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물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방산 수출 시 핵심 기술 보호와 유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방산 제품 구매국들은 자국 내 방위 산업 기반 조성과 유지를 위해 절충 교역 방식으로 자국 내 생산과 부품 사용, 자국 업체 참여,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절충 교역은 외국에서 무기 등을 구매할 때 그 반대급부로 기술 이전, 부품 제작·수출, 군수 지원 등을 받는 것을 말한다. 기술 이전은 방산 후발국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개발 단계를 단축시킬 수 있다. 그동안 절충 교역은 한국의 방위 산업 육성과 기술 향상에 크게 기여했지만 방산 선진국들은 핵심 기술 유출 우려로 기술 이전에 대해 기피하고 있다.

한국은 2014년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를 도입하면서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이전받으려고 했지만 미국 정부가 기술 보호 등을 이유로 핵심 기술 4건의 제공을 거부한 바 있다.

튀르키예는 2008년 현대로템에서 기술 이전받은 K2 전차 관련 기술을 토대로 알타이 전차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상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선임 애널리스트는 “해외 수출 실적도 중요하지만 향후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핵심 기술의 기술 이전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