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버블이 낳은 쌍둥이, 금융 위기와 이노베이션[EDITOR's LETTER]
짧은 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패딩을 걸치고 다녔지만 지금은 반소매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빠른 계절의 변화는 올봄 재미 한 가지를 앗아갔습니다. 새로 피는 꽃을 발견하는 즐거움. 봄꽃은 피는 순서가 있습니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의 순입니다. 순서대로 필 때마다 “어, 얘도 피었네” 하며 반가워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한꺼번에 피었습니다. 이상 기후의 결과라고 합니다. 누군가는 한 번에 볼 수 있어 좋다고 하지만 하나가 지면 새로운 것이 피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사라졌습니다.

꽃이 한꺼번에 피는 것도 반갑지 않은데 4월은 즐거운 일도 없습니다. 공휴일이 하루도 없다는 게 가장 잔인한 일이겠지요. 여기에 인플레이션과 각종 불황의 징후들, 무역 적자 확대, 유가 상승 등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은행들의 부도와 부실 우려, 즉 금융 위기의 유령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다는 것도 찜찜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챗GPT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AI)의 발전입니다. 유튜브·페이스북 등에는 사용기와 사용 방법 등에 관한 얘기가 넘쳐납니다.

금융 위기와 새로운 기술의 등장.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듯했습니다. 2010년부터 2012년 정도의 일입니다. 당시 유럽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이 재정 위기에 시달렸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돈을 푼 것이 재정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때 실리콘밸리와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이폰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열풍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창출로 이어졌습니다. 2010년 아이패드 출시는 여기에 불을 붙였습니다. 트위터는 전성기에 접어들었고 급성장한 페이스북은 상장을 선언했습니다. 모바일을 타고 핀란드 게임 ‘앵그리버드’는 세계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구글이 자율 주행 자동차를 처음 공개한 것도, 테슬라가 상장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2010년의 일입니다.

한쪽에서는 신기술과 신제품으로 들썩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금융 위기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비정한 자본주의 세계. 그때 생각했습니다.‘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두 갈래로 딱 나뉘어 있을까.’
이 바보같은 의문을 그대로 둔 채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2023년 이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잇단 은행의 파산으로 금융 위기의 먹구름이 끼는 지금,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금융 위기는 대부분 많이 풀린 돈 때문에 발생합니다. 왜 돈을 풀까. 수요 부족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이를 버블이라고 부릅니다. 버블이 터져 금융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금융 위기는 숙명과 같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풀린 돈 가운데 일부는 혁신을 꿈꾸는 곳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합니다. 혁신의 밑천이 되고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파괴적 기술은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하며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금융 위기와 이노베이션은 버블이 낳은 쌍둥이가 아닐까’란 생각에 다다른 배경입니다.

그리고 슘페터를 떠올렸습니다. “마차를 여러 대 연결한다고 기차가 되지는 않는다”는 멋진 말을 남긴 슘폐터는 불황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불황은 혁신적 기업가에 의해 극복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가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살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황 직전 호황기에 풀린 돈은 혁신적 기업가가 세상을 바꿀 파괴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현대자본주의에서 돈을 뿌리는 주체는 국가입니다. 제대로 돈을 뿌린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구글 성공의 바탕이 된 알고리즘은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지원한 보조금으로 개발됐고 생명 과학 기술의 기초가 되는 분자 항체는 최초로 영국 공공의학연구심의회 연구실이 발견했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나노 기술 등도 정부의 투자를 기반으로 발전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는 이를 ‘기업가형 국가’라고 칭했습니다. 혁신의 위기마다 희망에 돈을 뿌리는 국가. 금융 위기, 혁신 그리고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