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수술을 받은 최종현 선대회장(가운데)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는 모습. 사진=SK그룹 제공
폐암수술을 받은 최종현 선대회장(가운데)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는 모습. 사진=SK그룹 제공
SK그룹이 창립 70주년(4월 8일)을 앞두고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형제의 어록집 '패기로 묻고 지성으로 답하다'를 4월 6일 발간했다.

이 책은 약 250개 대표 어록을 일화와 함께 다루며 평생을 국가경쟁력 강화를 고민했던 두 회장의 유지가 어떻게 계승돼 SK그룹이 재계 대표그룹으로 성장했는지 조명한다.

한국전쟁, 수출 활로 개척, 석유 파동, IMF 경제 위기 등 격동의 시대에 맨손으로 사업을 개척했던 두 회장의 어록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시대를 초월한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 위기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아진 오늘날, 기업인에게 대한민국 위기 극복의 해법을 제시한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3년 버려진 직기를 재조립해 선경직물을 창업한 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새겨진 인견 직물을 최초로 수출하는 등 한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평생 실천했다. 그는 “회사의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람의 가치를 중시했다.

1973년 창업회장의 유지를 이어 받은 최종현 선대회장은 미국에서 수학한 지식을 기반으로 ‘시카고학파’의 시장경제 논리를 한국식 경영에 접목시킨 당시 보기 드문 기업인이다. 회사가 이윤만을 추구하던 1970년대 서양의 합리적 경영이론과 동양의 인간 중심 사상을 결합해 SK그룹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정립했다.

최 선대회장은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 “당신(You)이 알아서 해”라는 어록처럼 자율성에 기반한 과감한 위임을 실천했다. 국내 최초 기업 연수원인 선경연수원 개원(1975), 회장 결재칸과 출퇴근 카드 폐지, 해외 MBA 프로그램 도입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로 SK만의 독보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시에 너무 비싼 값에 샀다는 여론이 일자 “우리는 회사가 아닌 미래를 샀다”며, 미래 산업 변화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자율·창의·경쟁을 바탕으로한 시장 경제의 원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경제를 정상적으로 키우고 나라를 살찌우는 근본”이라며, 국가경쟁력 제고에 평생을 힘썼다.

두 회장의 경영 철학은 고스란히 최태원 회장에게 이어졌다. 미래를 보는 혜안과 과감한 결단은 SK그룹의 도전정신으로 이어졌다. 이는 SK가 오늘날 BBC(바이오·배터리·반도체) 분야를 통해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원천이 됐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2021년 대한상의 회장에 추대됐을 때 “국가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밝힌 이후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과 글로벌 경제 협력 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과감하게 조정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재 양성에 힘쓰는 것도 SK그룹 전통을 계승한 결과다.

최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삶과 철학은 단지 기업의 발전에 머무르지 않았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향해 있었다”며 “선대의 도전과 위기극복 정신이 앞으로 SK그룹 70년 도약과 미래 디자인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