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과몰입 금지…콘셉트에 충실한 자와 자본력이 만들어 낸 파라다이스
베트남 푸꾸옥에는 버려진 대학교가 하나 있다. 1880년대 푸꾸옥에 거주하던 프랑스인과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 주로 다니던 라마르크(Lamarck)대학교다. 아시아 럭비 챔피언십에서 우승까지 거머쥐며 스포츠 명문으로 이름을 날린 이 학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문을 닫았다. 시간이 흐른 뒤 베트남의 선그룹(Sun Group)이 이 학교를 재발견해 5성급 리조트로 탈바꿈시켰다. 라마르크대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그런데 사실 라마르크대학교는 ‘없다’. 이 모든 이야기는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스파’의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을 구축한 사람은 바로 빌 벤슬리(Bill bensley)다. 건축가·크리에이티브 디렉터·컬렉터·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그를 설명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방콕과 발리에 베이스를 둔 디자인 스튜디오 ‘벤슬리(Bensley)’를 운영하며 럭셔리 리조트의 건축·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담당한다. 베트남의 ‘인터콘티넨탈 다낭’, 인도네시아 발리의 ‘카펠라 우붓’, 태국 방콕의 ‘더 시암’을 비롯해 전 세계 30개국에 200개 이상의 호텔과 리조트가 그의 작품이다.
그중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는 선 그룹에게 전권을 위임받아 디렉팅한 리조트다. 레스토랑의 작은 수저부터 간판, 직원들의 유니폼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대학생 시절이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 행복한 시간을 바탕으로 리조트를 건설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그의 생각이 이 리조트의 DNA가 됐다. 체크인을 하면 나눠 주는 호텔 안내 책자의 이름부터 ‘라마르크대학 스튜던트 북’이다.
진짜 대학교처럼 운동장에 러닝 트랙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객실이 있는 건물은 농업학과·순수미술학과·동물학과·천문학과 등 학과 건물이 콘셉트다. 건물의 외벽 색상부터 객실에 걸린 액자 하나까지도 학과의 특성이 반영돼 있다. 농업학과 건물 앞에는 실제로 작물이 재배되고 있고 동물학과 건물 정원의 나무는 코끼리 모양으로 조경돼 있으며 객실의 문에도 관련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식이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차를 끓이거나 실험을 위해 버섯 재배법을 배우던 버섯균학부 학생들의 공간은 스파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스파를 받으러 가는 길목은 이야기 속에서 앨리스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던 ‘래빗 홀’처럼 조성돼 있다. 앨리스 차림을 한 직원은 “이곳을 지나면 당신은 작아질 거예요”라는 멘트도 잊지 않는다.
동심을 깨지 않기 위해 모두가 캐릭터에 몰입한다는 디즈니랜드의 직원들처럼 모두가 이 세계관에 진심이다. 화학과 학생들의 실험실은 칵테일 바가 됐다.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서빙하고 곳곳에는 플라스크·비커·실린더 등 각종 실험 도구가 놓여 있다. 칵테일 바 화장실 역시 실험실 콘셉트가 유지된다. 벽은 주기율표로 도배돼 있고 선반에는 플라스크와 비커가 가득하다.
이 거대한 세계관은 벽에 그려진 일러스트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건축학과 건물인 레스토랑은 화장실을 표시하는 화살표도 컴퍼스와 삼각자로 그려져 있을 정도다. 이처럼 모든 공간은 고유의 영감을 지니고 있어 서로 비슷한 공간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곳에서는 절로 갓생 사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된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신
선한 과일을 곁들인 프렌치토스트로 아침을 챙겨 먹는다. 앨리스가 반겨 주는 스파로 가 뭉친 어깨와 목의 피로를 풀고 나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다. 에메랄드빛 해안가를 바라보며 책을 몇 장 읽다가 그 영롱한 빛에 이끌리면 바로 패들보트를 타고 바다로 향한다. 바다 위를 유유자적 떠다니다 미리 예약해 둔 랜턴 만들기 수업에 참여한다. 곳곳이 포토 스폿인 리조트에서 인생 샷을 몇 장 찍고 세 개의 야외 수영장에 몸을 한 번씩만 담가도 금세 노을이 진다. 핑크빛과 보랏빛으로 오묘하게 물들어 가는 선셋이 보이는 바닷가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케미스트리 바에서 칵테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극강의 ‘E’에게 딱 맞는 리조트
누군가에게는 상상만 해도 벅찬 하루일 수 있다. 하지만 MBTI 앞 글자가 ‘E’로 시작하는 활동적인 성향의 관광객이라면 이곳이 특히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체크인할 때 받은 스튜던트북에는 베이킹, 바이크 투어, 댄스 수업, 랜턴 만들기 등 리조트에서 진행하는 활동들이 일별·시간별로 캘린더에 채워져 있으니 대학 시절 수강신청하듯 원하는 활동을 골라 들을 수 있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번지르르한 기획안도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세계를 현실에 생생하게 구현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무심코 로비에 놓인 책을 펼쳤는데 정말 누가 사용했던 것인 듯 내용이 적혀 있어 다시금 탄성이 나왔다. 빌 벤슬리는 당초의 그가 설계한 콘셉트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관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토록 모두가 진심이라니 졸업과 동시에 재입학을 꿈꿀 수밖에 없다.
강은영 한경무크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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