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첨단 기술 수출 금지
“중동에 석유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
희토류 무기화로 ‘맞불’…글로벌 자원 전쟁 격화

[비즈니스 포커스]
중국에서 희토류 자원이 가장 집중돼 있는 네이멍구의 바이윈어보 광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서 희토류 자원이 가장 집중돼 있는 네이멍구의 바이윈어보 광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일본의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강화 방침에 맞서 중국이 비장의 무기인 희토류 카드를 꺼내들면서 글로벌 자원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희토류 자석의 공급망을 통제하기 위해 제조 기술 수출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4월 5일 보도했다. 전기차와 풍력 발전용 모터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기술로, 세계적인 탈탄소화 흐름 속에서 동력의 전기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중국이 자석 공급망을 장악해 성장이 예상되는 환경 분야에서 패권을 확립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정권은 자석을 경제 성장의 핵심이자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전략 물자라고 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22년 12월 산업 기술의 수출 규제 품목을 담은 ‘중국 수출 규제·수출 제한 기술 목록’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희토류를 이용한 고성능 자석인 ‘네오디뮴’, ‘사마륨코발트’의 제조 기술의 해외 이전·유출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네오디뮴 자석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중국이 84%, 일본이 15%를 차지하고 있다. 사마륨코발트 자석은 90% 이상을 중국이 생산하며 일본은 10% 안팎에 그친다.

기술 수출이 금지되면 신규 영구 자석 제조업체의 국제 시장 진입이 제한돼 영구 자석 수입처 다변화와 자립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은 영구 자석의 핵심 소재인 네오디뮴의 86%, 반도체 연마제로 사용되는 희토류의 5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기술이 아닌 품목 수출 금지로 규제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차 전환을 추진 중인 자동차 업계와 발전업계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배터리는 대부분 리튬 이온 방식으로 제조해 수출 금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은 수산화리튬·코발트 등 핵심 원자재 공급망의 탈중국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이 첨단 산업을 안정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핵심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와 비희토류 영구 자석 소재 개발 등 핵심 원료 국산화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글로벌 자원 전쟁 속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희토류에 대한 궁금증을 모아 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5월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5월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① 희토류, 왜 중국의 무기가 됐나

희토류는 원자 번호 57~71번까지의 란타넘(La)계 15개 원소와 21번 스칸듐(Sc)·39번 이트륨(Y)을 더한 17개 원소를 총칭한다. ‘자연계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금속 원소’라는 의미로 희토류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세계적으로 매장량이 적은 것은 아니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은 산화물 기준으로 약 1억2000만 톤으로 추산된다. 이 중 3분의 1인 4400만 톤이 중국에 매장돼 있고 베트남(2200만 톤), 브라질(2100만 톤), 러시아(1200만 톤)가 주요 희토류 생산국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했지만 호주가 2011년부터 희토류 생산을 시작하고 미국도 2018년부터 희토류 생산을 재개하면서 중국의 비율은 차츰 낮아지는 추세다. 분리·제련해 광물 형태로 제조하기가 어려워 전략적 가치가 높다.

② 첨단 산업 핵심, 환경 오염 초래…‘양날의 검’

희토류는 첨단 산업에 꼭 필요하지만 환경 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채굴과 제련 과정에서 토륨 등 방사성 물질이 배출되고 심각한 환경 오염을 초래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선 생산을 기피해 왔다.

희토류 1톤을 정제하는 데는 6300만 리터의 황산과 불화수소산이 혼합된 폐가스, 20만 리터의 산성 성분 폐수, 1.4톤의 방사선 공업 폐수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그간 희토류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낮은 정제 비용과 느슨한 환경 규제가 컸다.

전 세계가 중국에 의존하면서 중국이 전 세계 채굴의 60%, 가공의 87%를 담당하는 희토류 패권국이 됐다. 중국은 희토류 원재료를 정제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실제 희토류보다 국가 이익 보호에 더 강력한 무기로 여기고 있어 미국의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수출 금지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로 꼽혀 왔다.

1992년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지방 경제시찰 현장에서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고 선언하며 전략적 의미를 역설한 바 있다.
전기차 모터 영구 자석에 들어가는 희토류 소재인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NdPr) 산화물. 사진=한국경제신문
전기차 모터 영구 자석에 들어가는 희토류 소재인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NdPr) 산화물. 사진=한국경제신문
③ 전기차 모터에서 전투기까지…소량이지만 필수인 ‘산업계 비타민’

희토류는 전기차 구동 모터, 풍력 발전기의 터빈, 반도체, 디스플레이, 첨단 무기, 로봇, 드론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재료일 뿐만 아니라 발광다이오드(LED)·에어컨·스마트폰·스피커 등 가전제품에도 필요하다. 소량의 비타민이 인체에 반드시 필요하듯이 희토류가 첨단 산업 전반에 적게나마 꼭 필요한 핵심 소재라는 점에서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세계에서 희토류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희토류 영구 자석(30%)이다. 전기차 한 대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영구 자석에는 희토류 원소가 약 1kg 포함된다. 희토류 금속의 하나인 네오디뮴은 강력한 영구 자석을 만드는 데 쓰이는 데 매우 작은 크기로도 일반 자석보다 최대 10배 이상 자력이 강해 첨단 제품의 소형화와 에너지 절약 기술의 필수 소재다.

특히 전기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필수 부품인 구동 모터용 자석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유도 무기, 전투기 엔진 등 방위 산업에서도 필수여서 자원 안보, 산업 안보, 국방과 직결되는 전략 물자이기도 하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F-35 전투기에는 대당 약 417kg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이지스함에는 2358kg,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에는 4172kg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중국의 희토류 기술 수출 금지는 미국의 국방력 약화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④ 무역 전쟁 촉발한 ‘분쟁의 씨앗’

2010년 발생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은 전 세계가 희토류의 전략성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였다.

일본·중국·대만의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 인근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일본이 영해를 침범한 혐의로 체포했는데 중국이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일본은 중국인 선원을 석방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이 일본에 대한 수출 금지와 함께 연간 5만 톤 정도의 희토류 수출쿼터를 40% 줄인 3만 톤 수준으로 유지한 결과 국제 거래 가격이 최대 16배까지 상승하는 등 희토류 자원 무기화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2019년 미국의 무역 분쟁 때도 중국은 반격의 카드로 희토류 무기화를 꺼냈다. 희토류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 온 중국은 생산·수출 제한 등을 통해 공급량과 가격을 통제하며 탈탄소 산업 패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중국희토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 주요 희토류 가격이 31.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자국 내 자원 보호와 환경 오염 등의 이유로 희토류의 생산·수출을 통제하면서 국제 사회의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⑤ 희토류 전쟁, 일본은 이렇게 승리했다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 이후 탈중국에 속도를 냈고 성과도 거뒀다. 인도·베트남 등으로 희토류 수입처를 다변화했고 2012년 미국·유럽연합(EU)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해 2014년 중국의 수출 제한이 WTO 협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아 냈다.

희토류 대체재 개발을 추진해 2012년 히타치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산업용 모터를 개발했다. 2018년에는 도요타가 네오디뮴 비율을 50% 이하로 낮춘 고성능 신형 자석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은 미나미토리시마 주변 수심 5000~6000m 해저에 묻혀 있는 희토류를 2024년부터 직접 채굴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 탈중국 노력 끝에 2009년 90%에 달했던 중국산 희토류 수입 비율을 2012년 50%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