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 재활용 로켓에 우주 신사업 영감
우주 헬스케어에 6000만 달러 베팅
미국 우주 유니콘과 조인트벤처 설립
대통령 美 순방 동행 경제사절단에도 포함
보령의 우주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오너 3세인 김정균(39) 사장이다. 김승호 창업자의 손자이자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의 외아들인 김 사장은 2014년 보령제약에 입사해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2019년 보령홀딩스 대표이사로 승진해 보령의 신사업 발굴을 주도해 왔다.
그는 2022년 1월 보령제약 사장에 올라 사명을 ‘보령’으로 변경하고 우주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본격 선언했다.
‘제약’ 떼고 우주 개척 경쟁 뛰어들어
전통 제약사인 보령의 우주 헬스케어 사업 진출에 대해 시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보령이 2022년 12월 21일 이사회에서 미국 민간 상업용 우주 정거장 건설사인 액시엄스페이스(Axiom Space)의 시리즈C 투자에 참여해 주식 29만5980주를 649억원에 추가 취득했다고 발표한 직후 주가가 줄곧 내림세다.
보령의 우주 헬스케어 사업에 대해선 “주가가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다”, “보슬라(보령+테슬라)가 될 수도 있다” 등 소액 주주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증권가에선 무리한 투자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김형수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보령의 이번 투자 규모는 자기 자본 대비 13.7%, 자산 총액 대비 7.8%로 다소 큰 규모”라며 “후속 투자 시 재무 변동성 확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보령은 2022년 2월 1000만 달러를 투자해 액시엄스페이스 지분 0.4%를 취득했고 12월 21일 5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하며 지분율을 2.7%로 높였다. 민간 상업용 우주 정거장 선도 기업에 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우주 공간에서의 선제적 사업화 기반 마련이 목표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2022년 12월 우주 헬스케어 사업인 케어 인 스페이스(CIS)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반영으로 주가가 하락한 부분도 있다”며 “CIS는 아직 초기 산업이라 현시점에서 사업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령에 따르면 액시엄스페이스는 지구 저궤도(LEO)에서 2030년 퇴역 예정인 국제 우주 정거장을 대체할 인류 최초의 민간 상업용 우주 정거장(액시엄 스테이션)을 개발하고 있고 2022년 4월 ‘Ax-1 프로젝트’를 통해 민간인들로만 구성된 유인 우주인 사업을 처음으로 실현했다. 오는 5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녀 우주인이 포함된 ‘Ax-2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국가 단위의 우주인 사업 계약도 수주하고 있다.
액시엄스페이스가 미 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주요국과 기업과 유인 우주인 사업, 연구 사업 등을 수주하고 있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액시엄스페이스는 NASA의 아르테미스 3호 우주복(AxEMU) 제작 업체에 선정돼 올여름 NASA에 차세대 우주복을 납품할 계획이다.
보령은 4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액시엄스페이스와 조인트벤처(JV)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JV 체결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기간 중 김 사장이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한 가운데 이뤄졌다. 김 사장은 우주 헬스케어 신산업에 대한 역할이 높이 평가되며 전통 제약사 대표 중 유일하게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려 주목받았다.
김 사장은 “이번 JV 설립은 양사가 전략적 투자 관계를 넘어 우주 개발에 대한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설계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며 “한미 간 새로운 우주 협력 강화에 발맞춰 민간 기업 주도의 우주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보령은 JV를 통해 우주 인프라와 우주 개발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우주 공간에서의 신약 개발과 생산, 우주 관광 또는 거주민을 위한 의료 시스템 구축 사업 등이 예상된다. 달에서 먹는 겔포스?…“아픈 사람도 우주 간다”
보령은 우주항공 분야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CIS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김 사장은 지난 3월 정기 주주 총회에서 ‘달에서 장기 체류하게 됐는데 속이 쓰릴 때 겔포스를 먹으면 속쓰림이 나아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CIS 사업이라고 정의했다.
김 사장은 2022년부터 홈페이지에 연례 서한을 게시하며 투자자들과 소통에도 공들이고 있다. “도대체 왜 보령이 우주에 투자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밝힌 그는 “보령은 제약 사업만 하는 회사로 남지 않을 것”이라며 “인류 건강에 꼭 필요한 기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투자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이 우주 공간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게 된 것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스페이스X의 재활용 로켓 ‘팰컨9’의 1단 로켓 2기가 동시에 땅에 착지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스페이스X가 우주 접근 비용을 20분의 1로 낮춰 민간 기업들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고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이 우주로 갈 기회를 얻게 될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김 사장이 2019년 NASA를 견학하면서 “우주에 아픈 사람을 보낼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NASA 관계자는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인류의 우주 최장 체류 기간은 437일이고 인류가 우주 장기 체류에 필요한 기술은 아직 미개척 분야다.
우주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우주라는 공간이 창출할 새로운 시장에 올라타지 못한다면 30년 전 세계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국가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주 관광이 본격화되는 20~30년 뒤에는 병이 있는 사람도 우주로 가지 않을까.’ 김 사장이 미국조차 아직 개척하지 못한 우주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결심한 계기다. 735조 우주 시장…성장 잠재력 무궁무진
글로벌 투자은행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우주 산업은 2030년 5900억 달러(약 735조원),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37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만큼 우주 헬스케어 분야의 성장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2021년 버진갤럭틱에 이어 블루오리진·스페이스X가 잇달아 유인 우주여행에 성공하면서 우주의학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우주의학은 우주 비행 및 인간이 우주로 진출했을 때 인체에 생기는 의학상의 여러 문제를 연구하는 분야다.
무중력·초고저온·저산소·방사선 노출·면역력 저하 등 우주 공간에서 인체는 지구상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비정상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기존에는 우주 공간에서 특정 임무에 적합한 우주인의 선발과 생존에 초점을 뒀지만 민간 우주 관광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이제는 질환을 가진 일반인의 안전하고 건강한 우주여행을 위한 영역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우주 공간의 특성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돌입했다. 질병의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는 데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지구보다 중력이 거의 없는 미세 중력 환경인 우주가 신약 개발에 유리하다. 독일 제약사 머크는 우주 정거장의 미세 중력을 활용해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의 고순도화에 성공했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나노 입자와 무중력 상태를 이용한 신규 약물 전달 기법과 물질을 개발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우주 항공 인프라 기업 레드와이어와 우주 공간에서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필박스’를 통해 당뇨병·심혈관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인 엔지켐생명과학은 우주의학의 체계적 연구·개발을 위해 2021년 부설 우주방사선의약연구소를 설립하고 인하대 우주항공의학연구소와 우주항공의약품 개발을 공동 연구 중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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