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료계 직역 단체들 간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의료계 직역 단체가 연합한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는 4월 16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총파업 결의 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박탈법을 통과시킨다면 보건 의료 체계를 지키기 위해 총파업 투쟁에 돌입, 내년 총선에서 이러한 민생 파탄법을 강행 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간호법은 4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라”며 4월 27일로 상정을 미뤄 둔 상태다. 필자는 이러한 간호법과 의료인면허박탈법을 둘러싸고 의료계 분열이 격화되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간호법은 간호사 특혜법
간호법은 기득권 간호사 특혜법이다. 이권 단체인 대한간호협회를 제외하면 13개 보건 의료 단체가 모두 반대하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는데 30년간 의료 시스템을 유지해 온 의료법이 와해되면 각 직역의 개별법 난립으로 직역 간 업무 범위 충돌과 의료 현장 혼란 가중 및 현행 보건 의료 체계가 붕괴된다. 결국 국민들이 수준 높고 통합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간호사들에 의한 약소 직역 업무 침탈 문제가 심각한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간호사 보조로 한정해 장기 요양 시설, 사회 복지 기관, 어린이집 등 간호사 없이 일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또한 간호사 업무와 권리는 간호법에, 처벌은 의료법에 규정돼 있어 법의 일관성이 없다.
◆돌봄 사업 진출 위한 사전 포석, 약소 직역 말살 우려
간호법안에서 담고 있는 주요 내용은 현행 의료법 및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대부분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상기 두 법 개정으로도 간호법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또한 간호협회에서 주장하는 간호사 처우 개선에 관해서는 의사협회에서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현행 의료법 내에서 간호사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인들의 처우 개선도 같이 포함돼야 보건 의료 일터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간호법에는 지역 사회 돌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조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간호협회는 간호법이 ‘부모돌봄법’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보건 의료 직역 간 분열을 조장하는 이러한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현재 부모돌봄을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일자리를 잃어 부모 돌봄을 할 수 없게 되고 이들 직역은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법안 통과를 앞두고 뜬금없이 부모돌봄을 강조하는 간호협회가 결국 간호법을 등에 업고 돌봄 사업의 핵심에 진출해 약소 직역을 말살하고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숨겨진 야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간호돌봄센터’ 등 단독 개원을 하기 위한 포석으로 지역 사회 돌봄을 내세우면서 이를 부모돌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기존 돌봄 사업에서 할 수 없었던 의료‧간호 행위를 가능하도록 법‧제도를 바꿔 본인들이 돌봄 사업의 핵심으로 나서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간호사들의 탈(脫)병원화를 부추기게 될 것이고 결국 간호사 본연의 업무인 ‘환자 돌봄’은 도외시하게 될 것이다. 간호 인력이 외부로 유출되면 현재도 심각한 필수 의료 붕괴는 더욱 가속화된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열린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관련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모습. 사진=대한의사협회 제공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관계자들이 4월 16일 오후 서울 시청 인근에서 열린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관련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모습. 사진=대한의사협회 제공
◆대통령 대선 공약집에 간호법 없어
간호협회는 간호법이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 사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사의 헌신과 희생에 국민과 정부가 합당한 처우를 해주는 것이 공정과 상식”이라는 원론적 방침을 밝혔지만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일방적 간호법에 대한 내용은 어떤 대선 공약집에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가 최근 언급한 바 있다.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고 의료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보건 의료 체계를 붕괴시켜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의사면허박탈법, 필수 의료 기피 등 유발
의료계의 반발을 샀던 의사면허박탈법도 법안 자체의 형평성 및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본회의 부의가 가결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인은 의료와 관계없는 교통사고와 같은 문제로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의료인 면허가 취소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면허 취소 후 5년이 아니라 형이 종료된 후 5년이 지나야 면허의 재교부가 가능해지고 만약 이후 또다시 어떤 사유에 의해서든 금고형을 선고받으면 10년간 면허 재교부가 불가해져 실질적으로 면허가 박탈되는 수준에 처하게 된다.

이는 필수 의료 기피와 방어 진료를 유발해 의료 공백은 물론 의료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대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의료인 면허권에 대한 보장은 의료 선진국이라면 어디서나 유지하고 있는 제도다. 고의성 없는 과실이나 의료와 관계없는 문제로 처벌받는 경우 등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든 쉽게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면허를 가진 전문가는 소신 있게 일할 수 없다. 해당 직종은 직업적 안정성이 약화되는 직종이 돼 우수한 인재들이 지원을 기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처우 개선은 의료법 개정으로도 충분
재차 강조하건대 간호법안은 상당 부분 그대로 차용해 온 현행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개정으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간호협회에서 주장하는 간호사 처우 개선에 관해 의사협회에서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중재안처럼 현행 의료법 내에서 간호사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인들의 처우 개선도 같이 포함돼야 보건 의료 일터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료인면허박탈법의 경우 강력 범죄에 대한 면허 박탈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계선을 의료 관련 범죄나 살인·강도·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로 한정하자는 것이다. 면허를 가진 의사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료 시스템 붕괴로 피해는 국민이
최근 한 응급 환자가 수술할 전문의가 없어 2시간을 떠돌다 구급차에서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가 무너지고 의료의 공백, 나아가 의료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대참사의 미래가 머지않아 눈앞에 닥쳐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법과 의사면허박탈법은 직역 간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갈라쳐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는 양곡법·노란봉투법·방송법 등과 함께 다수당의 횡포로 강행 처리되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악법이자 의료 파탄법이다. 국가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우리 13개 단체 400만 보건 복지 의료인들은 끝까지 악법 저지를 위해 함께 싸울 것이다.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국회와 정부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국민들이 13개 단체 400만 보건 의료인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이고 성원을 보내주길 간절히 바란다.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장(서울특별시의사회장)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간호법을 반대하는 이유[대립, 간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