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vs “법 통과하면 투쟁”…4월 27일 본회의 상정 두고 평행선

[비즈니스 포커스]
간호법 제정 촉구 시위.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법 제정 촉구 시위.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의료계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의사 단체를 포함한 13개 보건 의료 단체가 총파업까지 예고하며 간호법 제정 철회를 요구한 반면 간호사 단체는 오랜 숙원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국회 본회의 통과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4월 13일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었지만 국회의장이 여야의 합의를 종용하면서 상정이 연기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4월 27일 본회의에서 반드시 처리할 방침이지만 대통령실도 양곡법에 이어 거부권 카드로 맞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의 간호 인력 관련 조항을 떼어내 독립된 법안을 만든 것으로 간호사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 간호법을 둘러싼 3가지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①간호사 단독 개원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 가장 논란이 되는 간호법 제정안의 제1조(목적)의 내용이다. 간호사의 업무 수행 무대에 의료 기관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포함시켰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병원을 벗어나 노인요양원·보건소·학교·사업장 등 지역 사회에서 간호 업무 비율이 높아지는 현실이 법률에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행 체계에선 주민센터 같은 비의료 기관에 배치된 간호사들이 건강 관리 상담만 할 수 있었다면 ‘지역 사회’ 문구가 추가된 간호법에선 간호사가 주민센터에서 혈압을 측정할 수 있고 노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 당뇨 검사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간협이 간호법을 ‘부모돌봄법’에 비유하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측은 지역 사회 의료의 주도권을 간호사가 가져가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해석한다. 간호법 제정이 돌봄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

간호사들의 법적 활동 영역을 병원 밖으로 넓히면서 의사 없이 방문간호센터 등을 개원해 단독 운영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현재 간호법으로 당장 단독 개원하기는 어렵지만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법을 떼내는 데 성공한다면 향후 법 개정을 통해 돌봄 사업에 진출하는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간협 측은 현재 간호법 제정안 내용대로라면 단독 개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간호법 31개 조항에서 ‘단독 개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없고, 간호사의 업무(10조 2항)를 의사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료의 보조’라는 표현은 당초 제정안에는 없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단독 개원’ 논란을 고려해 추가됐다.
의료계 갈등 격화, 간호법 주요 쟁점 3가지[대립, 간호법]
②타 직역 업무 침해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이 간호조무사를 의사·간호사의 보조 인력에서 간호사만의 보조인력으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의원급 의료 기관과 상당수 복지 시설은 인건비 때문에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를 고용하고 있다. 이들 간호조무사는 의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에는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한다(12조)’는 문구가 담겼다. 간호법이 통과되면 시설에서 간호조무사를 지도할 간호사를 또 고용하기보다 간호조무사 대신 간호사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 협회 측의 주장이다. 지역 사회에서 간호조무사의 단독 고용이 불가능해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응급구조사협회와 대한방사선협회 등 다른 의료 분야들도 자신들의 영역을 간호사들이 침범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간호법 제정안에 이러한 조항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간호법을 통해 의료계 내 간호사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며 ‘약소 직역’의 업무 침해가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③대통령 공약?
간호법은 해묵은 이슈다. 2005년, 2019년 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됐다. 그러다 2021년 3월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정숙(약사)·최연숙(간호사)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각각 발의했다. 2022년 5월 여야 합의로 3개 법안을 합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넘겨진 법안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발로 묵혀지다가 올해 2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 직회부를 추진하면서 여야 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간호법을 두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 왔지만 간호법 제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고 야권과 간호사 단체들이 주장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선 당시 공약집에는 간호법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2022년 1월 대선 후보 당시 간협과 가진 간담회에서 “간호법 숙원이 이뤄지도록 저도 국민의힘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당시 언론들은 ‘간호법 제정 약속’으로 보도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약속으로 기사화된 데다 여당 의원도 법안을 발의해 대통령 거부권 카드로 맞붙기 군색한 상황인 셈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