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중·장년층은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에 열광했다. 중년의 남자 주인공이 처절히 짓밟힌 삶 속에서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여주인공을 보살피다 그 스스로 구원된다는 내용에 자신을 이입했다.
5년 후 주식 시장에는 새로운 형태의 아저씨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박스권 증시에서 답답한 투자자들에게 길을 알려주겠다고 나선 주식 멘토들이다. ‘배터리 아저씨’, ‘보톡스 아저씨’, ‘반도체 아저씨’, ‘케이팝 아저씨’, ‘매크로 아저씨’로 불리는 이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탄탄한 기업 분석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얻으며 ‘아저씨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증시 일각에는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다. 과도하게 한 종목을 추천함으로써 거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2023년 증시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증시의 관심 인물로 부상했는지 살펴봤다.‘반도체 아저씨’ : 전업 투자자 선진짱 2250만원으로 시작해 상위 10%의 고수익 투자자가 된 전업 투자자 ‘선진짱’은 유튜브계의 ‘반도체 아저씨’로 불린다. 그는 세 번의 깡통을 찬 과거로 개미 투자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현재는 상위 10% 고수익 투자자로 텔레그램·유튜브·블로그 등에서 개미 투자자들의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블로그 구독자만 2만 명이 넘는다. 유튜브에 떴다 하면 조회와 댓글 반응도 폭발적이다.
“최소한의 정량적 분석만 해도 상위 10%의 투자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주종목은 반도체다. 반도체의 업황과 사이클, 주종목들에 대해 애널리스트 뺨치는 분석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쳤다고 보고 매수 기회가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진짱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회복할 수밖에 없는 업황”이라며 “주가 저점일 때 반도체주 매수를 권한다”고 했다.
선진짱이 주목하는 종목은 SK하이닉스다. 그는 4개월 전 한 유튜브에서 “SK하이닉스는 부동산계의 반포자이급 투자처”라며 마치 40억원짜리 평가를 받아야 할 주식이 25억원짜리에 온 것과 같이 저평가돼 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반도체 아저씨’의 추천 : 매수 이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종목, SK하이닉스‘케이팝 아저씨’ : 텔레그램 피터케이 피터케이는 텔레그램과 블로그에서 맹활약하는 투자자들의 멘토다. 주식 투자 20년 차로 10년간은 오랜 시행착오와 깊은 좌절을 맛봤다. 주식을 접으려던 찰나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생각 끝에 2014년 네이버 카페에 주식 투자 커뮤니티를 열었다. 커뮤니티 이름은 ‘이게 어찌 보면 인생의 전환점’. 당시에는 무명의 투자자였기에 조회 수가 0인 글도 허다했다.
하지만 1년 후 ‘반도체 아저씨’ 선진짱을 만나며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팟캐스트에 참여하며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게 됐고 플랫폼을 확장했다. 지금은 5만 명 이상의 투자자들과 함께 블로그와 텔레그램에서 활약하는 전업 투자가다.
다수의 종목을 안내하지만 그의 최선호주는 케이팝이다. 투자자들에게는 피터케이보다 ‘케이팝 아저씨’로 더 유명할 정도다.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의 소식을 재무와 주식으로 연결해 투자 정보를 안내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헛발질만 하지 않는다면 영업이익률이 최소 20%는 나올 수 있는 산업”이라며 “케이팝은 스트리밍 음원 시장과 유튜브 산업이 커지면서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다”고 추천한다.
‘케이팝 아저씨’의 추천 : 하이브·JYP엔터테인먼트
‘보톡스 아저씨’ : 유튜버 벽토르 “‘보톡스 아저씨’,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떠오르는 신흥 강자도 있다. ‘보톡스 아저씨’로 불리는 유튜버 벽토르다. 벽토르는 주로 보톡스 기업을 다루는데, 특히 최근 ‘메디톡스 기업 분석’이란 주제로 올린 영상이 나흘 만에 조회 수 1만 건을 넘겼다. 해당 영상은 메디톡스에 대해 심층 분석했고 2시간을 훌쩍 넘는 영상 시간에도 불구하고 개미 투자자들의 큰 호평을 사고 있다.
‘보톡스 아저씨’의 추천 : 메디톡스‘매크로 아저씨’ : 오건영 신한은행 WM사업부 팀장 요즘처럼 금리가 뛰어오르고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등 혼란스러운 시장이 펼쳐질 때 경제 분야 유튜브들이 찾는 사람이 있다. ‘부의 시나리오’,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등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 오건영 신한은행 WM그룹 팀장이다.
‘글로벌 경제 1타 강사’로 불리는 오건영 팀장의 또 다른 애칭은 ‘미국 중앙은행(Fed) 전문가’다. 그는 ‘Fed 해설가’, ‘금리 전문가’, ‘갓건영’ 등으로 불리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매크로 아저씨’로 통한다.
신한은행 소속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네이버 카페·신한은행 유튜브 채널에서 ‘쩐설의 오건영’ 등을 운영하면서 9만 명의 팔로워와 회원들에게 글로벌 금융 시장의 정보와 견해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그의 경쟁력은 어려운 경제 지식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주는 데서 나온다.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등 금융 시장의 불안성을 예고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실물 경기 침체 가능성은 있다”며 “매크로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환경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따라가기가 어렵다. 다양한 자산을 넓게 깔고 가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매크로 아저씨’의 전망 : “Fed, 고금리 유지+연내 한 차례 인상 가능성(베이비 스텝)”
‘매크로 아저씨’의 추천 : 금(미국 성장 둔화 시 호재)
‘배터리 아저씨’ : 박순혁 금양 이사최근 재테크 유튜버 가운데 가장 핫한 사람 중 한 명은 ‘배터리 아저씨’다. 2차전지를 다루는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다. 금양의 이사보다 ‘밧데리 아저씨’, ‘빠떼리 아저씨’로 유명한 그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전도사로 통한다. 1995년 대한민국 증권 시장의 양대 산맥이었던 대한투자신탁의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테크놀로지 기업들을 담당했고 3500억원 규모의 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등 30여 년을 여의도에서 보냈다.
과거 반도체가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다면 다음은 배터리 차례로, 특히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에 주목하던 중 2차전지 기업인 금양의 기업 홍보(IR)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K-배터리를 알리는 길에 뛰어들었다. 유튜브·방송·기고 등으로 한국 배터리 산업의 위상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불과 1년여 만에 한국 유수의 경제 유튜브와 공중파 방송에서 앞다퉈 찾는 전문가가 됐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 증권가의 잘못된 정보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불러오는 잘못된 투자 습관을 지적하며 개인 투자자들의 경제 멘토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증시를 뜨겁게 달군 ‘에코프로비엠’을 추천하며 명성을 쌓았다. 에코프로비엠은 올 들어서만 주가가 6배 올랐다. 이 밖에 그가 공개적으로 추천한 7개 종목이 상승 랠리를 펼치고 있다. 그는 “성장이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며 “언제 사도 되는 기업”이라고 이들 종목을 추천한다.
한편, 경고음도 울린다. 24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거래소는 박순혁 홍보이사가 유튜브를 통해 경영 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해 공시 규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박 이사는 이달 초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금양의 17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각 계획을 밝히면서 장내 매도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교환사채(EB)발행 등을 매각 방법으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경영 주요 사항을 방송 아니면 특정인에게 사전 배포하는 것은 공정 공시 위반 소지가 있으니 거래소가 해당 회사에 사실확인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아저씨’의 추천 :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양극재(에코프로비엠·LG화학·포스코퓨처엠), CNT(나노신소재), 원자재(포스코홀딩스·에코프로)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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