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챗GPT 시대,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이용수의 경영 전략]
초거대 인공지능(AI) 네이버 하이퍼클로바가 1인 가구 어르신과 말벗 상담을 하는 영상을 봤다. “저번에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셨는데 좀 나아지셨냐”고 AI가 음성으로 물었다. “나아지긴 했지만 시원하지는 않다”고 어르신이 얘기하니 AI는 “아이고 그러시냐”며 “병원을 다시 가보시라”고 권유했다.

필자는 2019년 보험 회사에 몸담으면서 텔레마케팅 상담을 지원하는 AI 비서를 구현하고 있었다. 고객의 음성을 실시간으로 텍스트로 변환하고 자연어 분석을 해 상담원이 다음 대화 내용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콘텐츠를 자동 추천하는 기능이 핵심이었다. 당시 업계에서 선도적인 시도였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들어가 고객과 전화가 연결된 직후 30초 동안에 어떤 말을 해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 감성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기술은 미흡했다. 여러 대화 상황을 미리 정의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대화 내용을 성별·연령별·계절별 등으로 구분해 준비해 두는 방법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로부터 3년 만에 상대에게 맞춰 스스로 답변을 고르고 톤과 매너를 맞추는 AI를 목격한 것이다.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답하는 AI이미 장안의 화제인 챗GPT는 전 세계인이 어떤 언어로 무엇을 물어보든 망설임 없이 답하고 있다. 같은 질문에도 재미있게 말해 달라면 재미있게, 비판적으로 말해 달라면 비판적으로 답한다. 3년 후면 AI 특이점이 온다던 맥킨지컨설팅의 전망은 아마도 맞아떨어진 듯하다.

우리가 대화할 때 머릿속에서 말을 꺼내 이어 가듯이 챗GPT는 다음에 등장하면 좋을 말을 확률적으로 선택해 이어 나간다.

우리가 말하다가 기억이 엉켜 엉뚱한 말을 할 때가 있듯이 챗GPT는 한 번 말을 잘못 뱉으면 꼬리를 물어 가며 틀린 이야기를 지어낸다.

왠지 인간적이지 않은가. 박학다식하면서 때때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는 친구를 대하는 느낌이다. 이런 ‘인간적인’ 동료라면 함께 회사 생활을 해도 유쾌할 것 같다. 하지만 고객과의 상담에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동료는 특정 분야의 지식을 깊이 쌓으면 전문가로 탈바꿈된다. 보험 상품, 필수 안내 사항,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을 추가로 학습하면 보험 텔레마케터로 변신한다. 1년은 걸려야 했던 과정이 불과 몇 주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고객이 보험 상담하는 중에 어떤 불편이나 니즈를 말하면 관련되는 생활 서비스를 바로 제시하고 상담이 끝나기 전에 완결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오픈API가 시범 운영하고 있는 ‘챗GPT 플러그인’ 얘기다. 예를 들어 고객이 어디로 여행 갈지, 어떻게 갈지 챗GPT에 문의하면 여행 플랫폼을 플러그처럼 꽂아 항공편을 알아봐 주고 예약도 해 주고 고객은 결제만 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로 연결되듯이 새로운 AI 생태계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 상담을 하는 동안 고객이 요즘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말했을 때 “힘드시겠어요”라고 위로를 건네고 마음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골라서 예약해 준다면 고객이 상담 중간에 이탈하지 않고 보험 청약까지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필자가 3년여 전 고민했던 바로 그런 고객 경험이 탄생한다.

또 다른 AI의 활약상을 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를 활용하는 새로운 오피스 제품을 출시하며 코파일럿(Co-pilot)이라고 명명했다. 엑셀로 작업을 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해 달라고 요청하면 AI가 적합한 그래프를 그리는 식으로 손발을 맞춰 가며 문서를 완성하게 된다.

회계·재무 관리·업종·엑셀 매뉴얼을 학습한 재무 분석 특화 코파일럿이 만들어진다면 사람의 개입 없이도 완성본에 가까운 초안을 자동으로 작성해 줄 것이다. 축적된 기록이 있는 모든 직무는 더 이상 사람이 초안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문제를 발견하고 고치는 것은 사람많은 재무 부서들은 회계 마감을 하기에도 너무 오래 걸려 결과를 해석하고 적절한 판단을 할 시간적 여력이 남지 않는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이제 AI가 재무제표 초안까지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면 해석하고 판단하는 업무가 더욱 중요해진다.

마찬가지로 인사 부서에서 입사 지원자의 이력서 내용과 직무 기술서의 조건을 대조하고 답변 메일을 보내고 면접 약속을 잡는 일을 AI가 하게 된다면 인사 담당자는 입사 지원자와 대면 면접할 때 조직 문화에 적합한 사람인지 평가하는 업무가 보다 중요해진다.

수많은 기록에서 패턴을 찾아 요약하는 일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초거대 AI가 잘하고 있다. 사람은 요약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비언어적인 의미를 찾아내고 패턴을 벗어나는 불확실성에 대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즉각 결정해야 하는 사업가, 협상가, 프로젝트 관리자, 아직 발생한 적이 없는 오류를 조치해야 하는 정비사, 사람마다 다른 머리 모양에 맞춰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헤어 디자이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기술의 맥락을 이해하고 기술의 가능성을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데서 나아가 인간을 닮은 AI와 인간인 나의 역할을 제대로 구분하는 능력을 포괄한다.

인간은 AI와 다른 뾰족함을 가져야 한다. 재무·인사·마케팅·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직무에서 사람은 AI가 수행하는 기본적인 업무 내용을 가상 체험 훈련으로 익히고 AI가 할 수 없는 일을 맡을 것이다. 이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 클라우드에서 작동되는 초거대 AI에 특정 데이터를 추가 학습하고 로그인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역량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기존에 답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하는 역량이다.

초거대 AI는 인류의 누군가가 이미 적어 놓은 데이터를 요약해 두고 재구성해 출력한다. 그 이상이 아니다. 인류의 도약은 과거를 답습하는 확률 게임을 극복했을 때, 새로운 발견 속에 숨어 있는 위험을 수용했을 때 이뤄졌다.

회사는 새로운 꿈을 꾸고 비전을 세우고 도전하면서 발전하는 곳이어야 한다. 안주하고 익숙해지면 곧 AI가 복사한다. 개개인은 스스로를 사업가로 인식하고 낯선 미래를 기획하는 역량을 배양해야 한다.

둘째, 기존의 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역량이다. 초거대 AI가 삼킨 막대한 양의 데이터 속에는 정답과 오답이 섞여 있다. 사람도 잘못된 내용을 믿고 있거나 기억이 왜곡될 수 있지만 다시 배우고 정정한다. AI는 스스로 고치지 못한다. 사람이 지적해 줘야 한다.

비판적으로 질문해 문제를 발견하고 고치는 것은 사람의 역할이다. AI가 제공하는 초안에 빨간 줄을 그을 수 있는 역량, 기록된 적이 없는 신선한 생각을 보태는 역량을 길러야만 한다.

셋째, 사람의 욕구, 이해관계를 다루는 의사소통 역량이다. 앞에 예시한 어르신과의 말벗 서비스나 고객 상담 서비스와 같이 목적과 정황에 맞춘 대화는 AI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간에 상호 의존성을 가지고 풀어야 하는 일들,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일들, 사람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일에서는 비언어적인 의도를 간파하고 상대의 욕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상적 업무는 AI가 대부분 처리하는 환경에서 사람 간에 이뤄지는 협업, 동기 부여, 코칭과 같은 소프트 스킬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렇게 세 가지 역량으로 정리하면서 챗GPT는 동의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2030년 AI 기술이 완전하게 적용됐다고 했을 때 회사에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되겠느냐’고 질문했다.

챗GPT는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첫째, 인간적인 감각과 판단이 필요한 일은 AI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인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한다. 상상하고 기획하는 역량, 사람 간에 의사소통하는 역량과 관련성이 깊다.

둘째, AI 모델을 만들고 학습시키고 적용하는 일이라고 한다. AI가 내놓은 초안을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고 가르치는 역량이 필요한 지점이다.

챗GPT가 필자와 비슷하게 맥을 짚은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가 날이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흔적들을 챗GPT가 요약해 내게 전달해 준 것이다.

챗GPT는 최근의 데이터까지는 학습돼 있지 않다. 챗GPT가 출시된 이후에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진 놀라움과 기대와 경계심을 포함한다면 어떻게 요약될까. AI는 인간이 기록으로 남긴 생각의 합을 넘지 못한다. 인류가 새로 고쳐 쓰는 만큼만 AI가 똑똑해진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