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간호사협회(간협)의 주장이나 간호법 옹호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둔다. 어느 편을 지지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느냐가 글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법안을 둘러싼 주요 쟁점은 이미 귀 아프게 들었을 것이다. 법 문구의 세부 조정은 국회의 몫이다. 필자는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간호 인력’의 역할과 비중 확대가 왜 세계적 이슈가 됐는지 거시 배경과 의미에 집중한다. 그것이 간호법과 일반 시민의 이해가 교차하는 유일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미국 콜로라도 주 대학병원. 로레타 포드 박사와 헨리 실버 박사는 턱없이 부족한 의사 인력 문제로 고심했다. 그들이 찾은 해법은 전문간호사였다. 의사 대신 1차 진료를 담당할 간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었다. 의사에겐 업무 경감을, 간호인에겐 지위 역할 개선을, 환자에겐 향상된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윈-윈-윈’의 공식이자 상생의 묘수였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간 간호 인력 전체를 의료 체계의 또 다른 중심으로 보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혹자는 간호 인력이 경직성과 비효율로 점철된 현 의료 질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주장과 무관하게 간호 인력의 위상·역할·업무 범주 리셋에 대한 요구가 전 세계적 추세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의 간호법 상정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된다.
◆고령화 도미노
세계적으로 간호 인력이 재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급속한 고령화다. 2019년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7억3000만 명이다. 유엔은 2030년 그 숫자가 15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러 국제기구들은 기후 위기와 함께 인구 고령화를 인류의 가장 큰 도전으로 지목한다.
현 수준의 의료 인력과 시스템에서 2030년 전 세계 25%에 달할 고령 인구를 맞이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코로나19 사태 때 의료 인력과 자원이 한곳에 몰렸을 때 일반 의료 수요자가 감당했던 불편과 고통을 떠올리면 된다. 극심한 의료 접근성 차질과 불평등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금세기 들어 대유행병이 창궐했다. SARS(2002~2004년), H1N1 인플루엔자(2009~2010년), 에볼라 바이러스(2014~2016년), 지카 바이러스(2015~2016년), 코로나19(2019~2022년)까지…. 중단 없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전 세계 의료 인프라는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다.
의료비 지출 급증으로 악화된 정부 재정과 취약해진 각종 사회 보장 기반은 계층 간 갈등으로 확산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리스와 칠레에 이어 프랑스 연금 시위와 폭동이 그 예후들이다. 고령화의 도미노가 의료 수급 불균형에서 정치·사회적 대혼란으로 비화되기 전 방화벽 구축이 시급하다. 의료 인력 대량 확충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도, 국립의대 설립도 모두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반대로 좌절됐다.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제 남은 카드는 한 장, 간호 인력이다. 그래서 간호법 도입이 시민 모두의 당사자성을 환기시킨다.
◆나비 효과의 시작 : 업무 재분배와 역할 조정
<표1>을 보자. 코로나19 이전(2019년) 1인당 연간 의료 기관 방문 횟수다. 한국이 압도적 세계 1위다. 건강 관리에 철저한 한국 사회의 자랑거리일까, 아니면 저가 건강보험 남용의 지표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인구 1000명당 한국의 의사 수는 2.46명이다. OECD 국가 평균 3.4명에 한참 못 미친다. 끝에서 3위다. 의사가 절대 부족하다. 의사 편중도 심각하다. 2022년 서울은 3.37명으로 전국 최고지만 세종시는 1.23명으로 서울과 2.73배 차이를 보인다. 도시 간 격차가 이 정도니 도농 간 격차야 말할 나위 있겠나.
환자는 많은데 의사는 적어 긴 기다림과 짧은 만남만 반복된다. 그 대신 방문 빈도가 늘어난다. 17.2회는 그렇게 해서 나온 숫자다. 빈도가 늘수록 대기자는 더 많아지고 상담 시간은 더 짧아진다. 충분한 소통도 어렵다. 그래서 오진·오판도 늘고 의료 사고도 잦아진다.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지금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초고령화 시대의 의료 수급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물론 돌파구는 있다. 업무 분담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의료 인력 간 기능과 역할 조정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차선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치망순역지 오자성어는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업무 분할로 의사 1인당 책임량을 축소해야 한다. 의사가 주요 진단과 전문 치료에만 집중해도 더 많은 환자가 더 좋은 결과를 누릴 수 있다. 할당된 업무의 상당 부분을 검증된 간호 인력에게 이양하면 된다. 기존 분업 구조에 가해진 약간의 조정이지 철거나 신축이 아니다.
미국에서 1965년 시작된 전문간호사 제도가 착안한 지점도 업무 분장과 역할 조정이었다. 훈련된 간호 인력에게 1차 진료를 맡기면 의사는 고유의 의료 행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려 놓아 가벼워졌고 가벼워져 효율적이었고 그 효율의 혜택은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눈썹 문신이나 주름 제거 시술을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조정이 어떻게 큰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지, 나비의 날갯짓이 어떻게 태풍을 일으키는지….
◆동행과 감시의 정당성
확장된 간호 인력의 업무는 의료 유연성을 높인다. 르몽드는 OECD 보고서를 인용해 2018년부터 2000년 사이 프랑스 농촌 지역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8명에서 1.3명으로 감소했다며 “전문 간호사가 극심한 농촌 지역 의료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2021년)”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인 혜택도 적지 않다. 미국 의회 예산처는 “전문간호사는 특히 만성 질환 환자에게 의사보다 저비용으로 고품질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2019년)”고 평가했다.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도 “약물 처방, 진단 검사 주문 등 간호사의 역할 확대로 의료 행정 간소화와 전문의 의존도를 낮춰 비용 절감에 기여한다(2018년)”고 보고했다.
의사 단체가 우려하는 의료 질에 대한 환자 평가 역시 만족스럽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JAMA 논문을 인용해 전문간호사에게 진료받은 환자들이 긴 면담 시간, 맞춤 진료, 저렴한 비용 등 다양한 이점에 만족한다며 “주치의가 부족한 많은 지역에서 의사 부담을 덜어준다”고 보도했다. 캐나다·뉴질랜드·호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환자 안전 부문의 성과가 두드러진다. 미국 의료연구품질조사기구(AHRQ)는 “환자 교육부터 약물 관리까지 담당하면서 간호 인력이 의료 사고 예방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2019년)”고 평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간호사 역할 확대는 환자 안전 개선의 중심 전략이다. 잠재적 안전 문제를 식별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이는 의료 오류 감소와 치료 결과 개선으로 귀결된다(2017년)”고 했다.
해외 사례들은 간호 인력이 보조적 지위를 벗어나 보편 의료 확대의 주요 주체로 부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 바이든 미국 댄통령을 비롯한 주요국 정상들도 풍부한 경험과 자질을 갖춘 간호 인력의 역할 확대와 위상 조정을 강조해 왔다. 지역과 상황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간호 인력을 주축으로 한 의료 서비스 다원화는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간호 인력에게 의사와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 제도를 선도해 온 미국조차 현재 32개 주에서만 전문간호사에 한해 자율권을 제공한다. 캐나다·호주·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의료 선진국은 더 신중하다. 의사와 여타 전문인을 포함한 시민 사회의 합의를 중시한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임박한 초고령화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 수를 고려하면 우리도 그 첫발을 내디뎌야 할 때가 왔다. 의협과 다른 단체들도 이 출발의 동행자이자 감시자로서 기여할 바가 크다.
의료 사업·직군·서비스 등 용어에 익숙해지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의료는 인권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의료 인권의 보편 평형 원리에서 소외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도 보편 의료의 권리를 막을 방법은 없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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