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세계 최초의 자율 주행차를 누가 죽였나…한국 금융산업을 옥죄고 있는 그 무엇[EDITOR's LETTER]
‘뜻밖의 발견’이란 표현을 좋아합니다. 과거 역사적 사건이라면 무지함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때로 먹먹해지는 안타까움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세종대왕이 출산 휴가를 도입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여자 관노비가 애를 낳고 일하는 것을 가엽게 여겨 출산 휴가를 줬습니다. 이어 산모가 혼자 산후 조리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 남편인 남자 노비도 휴가를 가라고 했답니다. 600년 전 ‘남성 출산 휴가…’라니…. ‘역시’란 생각에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돌았습니다.

‘때이른 전성기’로 불리는 세종과 세조 때 또 다른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 나옵니다. 겨울에도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인공 온실입니다. 원래 세계 최초는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말 한 고서 수집가가 발견한 책 한 권이 역사를 다시 쓰게 했습니다. 폐지 더미 속에서 나온 책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이었습니다. ‘산에 사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책에는 벽돌과 구들 한지를 활용한 온실 건축법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이 책은 세종과 세조 때 어의였던 전순의가 1450년 저술해 구전으로만 전해지다가 발견된 것이지요. 독일보다 170년가량 앞서 있었습니다.

현대로 넘어와 볼까요. 1993년의 일입니다. 운전자 없는 지프차 한 대가 고려대를 출발해 청계 고가차도~남산1호터널~한남대교를 거쳐 여의도 63빌딩까지 주행하는 데 성공합니다. 2년 후 경부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무인 주행도 해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율 주행이었습니다. 규제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실험이었습니다. 개발 주역은 한민홍 고려대 교수였습니다. 시운전에 성공한 그는 상용화를 위해 정부에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관련 법이 없고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며 거부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인에 의해 개발된 세계 최초의 자율 주행 기술은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정부가 그런 일을 했습니다.

지원과 규제는 정부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양날의 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산업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규제가 산업을 옥죄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게 한국의 금융업입니다.

오래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한 게 하나 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과 다른 지지부진한 금융업입니다.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 금융회사를 찾기 힘듭니다. 하나 예외가 있다면 미래에셋그룹입니다. 박현주 회장은 한국의 제조업 창업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시장은 작다. 미래에셋이 성장하면 한국에는 운용할 자산이 부족해질 것이고 성장판은 닫힐 것이다. 해외로 나가야 한다. 금융도 수출해야 한다”며 밀어붙였습니다. 오래전 해외 투자 실적이 좋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밀어붙였습니다. 2018년 스스로 글로벌전략가(GSO)라는 타이틀을 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4500억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습니다. 전체 이익의 25% 정도 되는 수준입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왜 제조업은 되는데 금융은 안 되냐”며 답답해 하던 글로벌 진출을 삼성증권을 통한 펀드 판매로 성장한 박 회장이 해결한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박 회장은 한 예외입니다. 제2, 제3의 미래에셋이 나오고 배터리나 전자처럼 해외에서 우리끼리 경쟁해야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회사가 나올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 가로막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모험을 회피하는 은행 중심의 금융 산업 구조, 외환 위기와 카드 사태 등 과거 실패에 따른 트라우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금융 산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개입까지 더해지면 창의성과 도전 정신은 말살되고 말겠지요. 금융 상품은 물론 광고 하나도 일일이 감독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오래전 사건도 모두 다 끌어내 다시 조사하고 특별사법경찰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다는 억압적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면 그 산업은 내일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꼭 지금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금융 기업의 30대 최고경영자(CEO)를 다뤘습니다. 이 척박한 환경에도 금융 산업을 선진화해 보겠다고 열정을 불사르는 분들입니다. 금융업에서도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