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힘도 약해지고 취업도 어려워”…예전만 못한 ‘전관 파워’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 씨는 변호인으로 검사장 출신 박성진 변호사를 선임했다. 박 변호사는 검찰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마약 수사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마약통’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작년까지 검찰에 근무했던 그가 퇴임한 이후 아이로니컬하게 마약 사범의 변호를 맡게 됐다.

지난해 각종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쌍방울그룹과 KH그룹에 사건에도 전관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배상윤 KH그룹 회장의 변호인을 맡은 인물은 박찬호 전 광주지검장이다. 쌍방울은 ‘재계 저승사자’로 통하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출신 조재연 전 검사장을 김성태 전 회장의 변호인으로 붙였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사건들에서 전관 출신 변호인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관 출신들을 변호인으로 선임해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끌고 가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판사나 검사를 하다가 법복을 벗고 변호사 활동을 하는 법조인들에게 법원이나 검찰에서 유리한 판결을 내려 주는 관행인 ‘전관 예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전관들은 자신이 공직 생활을 하며 쌓은 힘과 인맥을 활용해 의뢰인이 패소할 만한 사건도 뒤집는 경우를 종종 만들어 낸다. 때로는 ‘검사 선배’들이 개입된 사건은 아예 손을 대지 않는 방법도 동원된다.

사건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당초 예상보다 형량을 크게 줄여 주는 역할도 한다. 막대한 재력을 갖춘 유명인이나 재계 관계자들의 법정 싸움에 전관들이 ‘해결사’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전관 출신들을 변호사로 선임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3년에 100억을 못 벌면 바보’라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전관 파워’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자연히 이들에 대한 대우도 낮아졌다.


과거만 해도 판사나 검사 출신 전관들은 법목을 벗으면 자연히 돈을 쓸어 담으며 ‘행복한 변호사’ 생활을 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관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국민들 사이에 ‘사법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전관들의 활동 보폭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의뢰인들이 전관 출신 변호인단을 꾸렸다는 것을 문제 삼으며 ‘전관 예우’가 사건에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거세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나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고려한 ‘자정 효과’가 수년 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법원 수사관 등이 전관들에게 변호사들이 볼 수 없는(오직 법원 내부자들만 볼 수 있는) 1·2심 판결문 등을 제공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여론 등을 고려해 내부에서 전관들에게 이런 자료 등을 제공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김영란법’도 전관의 힘을 잃게 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전엔 법원에서 모시던 ‘부장’이 퇴임하면 그 아래 후배 판사들이 모여 다 같이 환송회를 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퇴임하는 부장에게 변호사 생활 시 법원에 들고 다닐 만한 고가의 서류 가방과 기념패 등을 전달하는 관행이 있었다. 후배 판사들이 떠나는 선배 판사에게 ‘퇴임 후에도 걱정하지 말라’는 일종의 의식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2016년 상향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이런 회식과 선물 전달식도 크게 줄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행위가 해당법상 금품 수수 위반 등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런 자리가 줄어들면서 퇴임 후에도 연을 이어 가겠다는 현역 판사들과 퇴임 판사의 ‘암묵적인 합의’ 역시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이전만 하더라도 (전관 출신을 포함한)변호사들과 판사들이 모여 같이 축구 등의 운동을 하고 끝나면 함께 식사하는 모임이 많았는데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점차 뜸해졌다”며 “최근에는 이런 모임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쓸쓸한 전관’도 생겨나“전관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더라도 과거처럼 단기간에 큰돈을 벌기 어렵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 같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전관 파워가 예전만 못해진 가운데 전관의 수마저 늘고 있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쪽에서는 ‘쓸쓸한 변호사’ 생활을 하는 전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검찰에 몸담고 있는 선후배들 중에서는 변호사 시장에 나오고 싶어도 어려운 취업 환경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관 수가 늘어난 것은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판사의 퇴임 현황부터 살펴보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법원을 떠나는 판사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만 하더라도 47명의 판사가 법원을 떠났는데 지난해에는 이보다 30명 정도 늘어난 79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을 떠나는 검사 수도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퇴직한 검사 수는 146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검찰 출신이 많아지자 “검찰의 세상에서 검찰 출신들이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판검사들이 공직을 내려놓는 가장 큰 이유는 강한 업무 강도가 지목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요즘 젊은 판검사들은 일반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데 판사나 검사 생활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는 것이 흔한 일”이라며 그 배경을 분석했다.

예전에는 전관 출신이면 대형 로펌행은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법원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검찰은 고검장 이상 3년간의 취업 제한 기간이 지나면 대형 로펌(매출 100억원 이상)에 취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형 로펌들은 더 이상 전관들을 모시기 위해 열을 올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법률 시장도 하나의 시장인 만큼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시장에 나오는 판사나 검사 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 전관이 귀하고 힘도 강했다. 대형 로펌들은 전관 한 명이 등장하면 서로 모셔가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최근엔 힘도 약해지고 수도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고위급 중에서도 최고위급으로 분류되는 ‘스타급 전관’이 아니면 영입 경쟁이 펼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관을 모셔오던 추세가 사라지고 이제는 가려 뽑는 시대가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대형 로펌에 소속된 한 판사 출신 변호사도 “대형 로펌에는 이미 전관들이 차고 넘친다. 이런 와중에 계속 법률 시장에 나오는 전관 수가 늘다 보니 원하는 로펌에 입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고위급 전관들은 여전히 힘을 과시하며 법조계 곳곳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서도 “과거에 비해 전관들의 힘이 약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