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법인 대표 첫 실형
다수의 동종 전과·재발 방지 등 후속 조치 미흡하면
유족 합의해도 ‘엄벌’
‘중대재해법 위반 1호’ 재판에서 기업 대표 등에게 징역형의 집행 유예가 2023년 4월 6일 선고된 데 이어 최근 열린 둘째 재판에서 실형이 나왔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재판을 앞둔 가운데 산업계는 이번 재판 결과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고 발생 원인 폭넓게 본 사례”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형사1부(강지웅 부장판사)는 2023년 4월 2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한국제강 대표 A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A 씨를 법정 구속했다.
한국제강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이 부과됐고 사망한 노동자가 소속된 하청 업체의 대표는 징역 6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 씨는 1심 선고 다음 날 창원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한국제강은 2022년 3월 야외 작업장에서 설비 보수를 담당하는 하청 업체 노동자가 무게 1.2톤의 방열판에 깔려 사망한 사고로 조사받았다. 크레인의 고리와 방열판을 연결하는 섬유 벨트가 끊어지면서 일어난 사고다.
조사 결과 섬유 벨트가 손상된 상태였음에도 회사 측은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한국제강이 방열판을 포함한 중량물 취급 작업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고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 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2022년 11월 회사와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공판 과정에서 한국제강이 △중량물 취급 작업 계획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CSO) 등의 업무 수행을 위한 평가 기준 △도급 등을 받는 자의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에 관한 평가 기준·절차 등을 마련해 놓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회사가 과거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위반과 산업 재해로 여러 차례 적발된 사실에 주목했다. 한국제강 대표 A 씨는 안전 조치 의무 위반으로 2011년과 2021년, 2023년 2월 벌금형을 받았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로 재판받은 전력도 있다. 법정 구속을 피했던 온유파트너스 대표(징역 1년 6개월, 집행 유예 3년)와 달리 A 씨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된 결정적인 이유다.
재판부는 “A 씨가 경영 책임자로서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며 “수년간 안전 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사망 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한국제강의 사업장에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종전에 발생한 사고로 형사 재판을 받던 중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음에도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제강 대표가 중대재해법 재판에서 법정 구속되자 산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호 중대재해 판결’로 관심을 모은 온유파트너스 대표의 집행 유예 선고보다 무거운 형사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법원 판결로 형사 재판 위험에 노출된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찬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처음으로 기업 대표를 구속한 사례로 경영 책임자의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위반과 사고 발생 간 인과 관계를 비교적 넓게 인정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과 합의했는데…예상보다 강한 처벌”
법조계에선 한국제강과 마찬가지로 과거 산업 재해 전력이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구속 리스크가 한층 커졌다고 분석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과거 사고 후 재발 방지 대책을 얼마나 마련했고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를 얼마나 강조했는지가 중요해졌다”며 “이 같은 사후 처리를 제대로 한 기업만이 또다시 사고가 나더라도 법정에서 적법한 경영을 했다고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제강이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과 합의했음에도 대표가 구속됐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제강 측은 유족에게 “A 씨 등의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의 ‘중대재해법 위반 양형 기준’에는 피해자나 유족과의 합의 여부가 형량 가중·감경 요인 중 하나로 기재돼 있다. 기업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합의금을 감수하고서라도 합의하려는 이유다.
한 중대재해 담당 변호사는 “온유파트너스에 대한 판결이 나왔을 때만 해도 유족과 합의했다면 법정 구속은 면할 수 있다는 인식이 꽤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사고 예방 효과를 강조하는 정부와 달리 법정에선 예상보다 무거운 처벌이 이어지면서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로 CEO가 연이어 처벌받게 되면서 기업들의 우려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7일부터 2023년 3월 말까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한 14건 모두 대표나 그룹 총수가 경영 책임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졌다.
첫 기소인 두성산업(2022년 6월)을 비롯해 삼강에스앤씨(2022년 11월), 건륭건설(2022년 11월), 엠텍·시너지건설(2022년 12월), 평화오일씰공업(2023년 2월) 등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2023년 3월 말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계열사인 삼표산업의 채석장 붕괴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그룹 총수도 계열사 사고로 실형을 선고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돋보기]
2024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중소 77% “대응 여력 부족”
중대재해처벌법은 입법 논의 단계부터 중소기업이 타깃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대기업에 비해 보건 및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해 산업 재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24년부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되면서 관련 법 해석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중대재해법은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됐다.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될 예정이다.
약 67만 개에 달하는 50인 미만 중소기업들은 2024년 중대재해법 시행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유예 기간을 뒀음에도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한 경영 상황 악화로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을 앞두고 5인 이상 기업 1035곳(중소기업 947곳)을 조사한 결과 77%는 중대재해법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대응 여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전문 인력 부족(47.6%)’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법률 자체의 불명확성(25.2%)’, ‘과도한 비용 부담(24.9%)’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검찰이 기소한 11건 중 1건(중견기업)을 제외한 10건은 모두 중소기업과 중소건설 현장이었다. 경총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인적·재정적 여력이 부족해 법적 의무를 완벽히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사고 발생 시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로펌업계에선 중대재해 관련 법률 서비스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전에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했는지와 산업 재해 재발 방지 노력 여부가 재판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업들의 관련 컨설팅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앤장·광장 등 대형 로펌들뿐만 아니라 중소형 로펌들까지 중대재해 관련 전문 조직을 꾸리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데 힘을 쏟는 배경이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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