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원·소양고택에서의 고즈넉한 하룻밤

소양고택 객실에서 바라본 오성한옥마을 풍경
소양고택 객실에서 바라본 오성한옥마을 풍경
호젓한 아지트에서 찍은 사진 한 장,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메뉴, 도심 속 일탈을 꿈꾸게 하는 비밀스러운 스테이. 가치와 신념이 곧 소비로 이어지는 ‘미닝아웃(meaning out)’ 열풍은 여행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여행을 통해 취향을 뽐내는 시대다. 유명 관광지 대신 차별화된 여행지를 찾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어나며 소도시 여행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전북 완주로 떠나본다. ‘언택트(비대면) 여행’이 주목받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기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나만의 여행지’로 미닝아웃되며 인기 명소로 급부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완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총 432만503명으로, 2021년(153만8660명)에 비해 약 280% 증가했다. 도시 곳곳에 보고 즐길거리가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핫한 소양면을 빼놓을 수 없다.오성한옥마을 완주(完走)하기
연못과 종남산이 어우러진 아원고택 뷰
연못과 종남산이 어우러진 아원고택 뷰
방탄소년단(BTS) 앨범 재킷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완주의 핵심 명소로 자리 잡은 소양면…. BTS의 발길이 머무른 장소를 한데 엮은 ‘완주 BTS 힐링 성지’ 중 세 곳이 여기에 있다. 소양면의 중심, 정갈한 돌담길을 따라 오성한옥마을로 향한다. 종남산과 위봉산을 병풍처럼 두른 마을에 20여 채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운치를 더한다.

10년 전만 해도 가파른 산비탈과 투박한 논밭이 전부였던 곳이다. 2012년 주민들이 합심해 한옥을 짓고 이듬해 완주군이 한옥 지원 사업까지 추진하며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한 마을로 탈바꿈했다. 6채로 시작된 한옥은 어느새 20여 채를 넘겼다. 마을이 흥하자 인구 소멸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됐다. 젊은 사람들이 귀촌하며 동네가 북적이기 시작했고 마을 조성 전과 비교해 80명에서 100명으로 주민 수가 크게 늘었다.나, 그리고 우리들의 정원
미디어아트 갤러리에서 이이남 작가의 전시가 한창이다
미디어아트 갤러리에서 이이남 작가의 전시가 한창이다
우리들의 정원이란 뜻의 아원(我園)은 두말하면 입 아픈 오성한옥마을 최고의 핫 플레이스다. 지난해 11월 오픈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위한 갤러리가 가장 먼저 여행자를 반긴다. 압도적인 크기의 기둥 스크린에서는 이이남 작가의 ‘다시 태어나는 빛’ 전시가 한창이다. 벽 한쪽을 차지한 전면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작품을 눈에 담는 묘미가 있다. 갤러리를 지나면 회색 콘크리트 벽 사이로 비밀스러운 통로가 모습을 보인다. 흔한 간판이나 표지판조차 최소화해 입구를 찾기 쉽지 않지만 오히려 공간의 정갈한 매력을 배가하는 장치가 된다.

1층의 갤러리 겸 카페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한옥타운의 진가가 나타난다. 진주의 250년 된 고택과 정읍의 150된 고택을 이축한 안채(설화당)와 사랑채(연하당)를 비롯해 천지인(만휴당)·별채(천목다실)·서당 등 5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새로 조성된 서당은 조선시대 함평에서 서당으로 쓰던 건축물을 옮겨 왔다. 기본 뼈대를 살려 전통적인 느낌은 유지하되 아원의 시그니처인 물을 활용한 익스테리어를 적용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한옥타운 내에서도 독보적인 뷰를 갖춰 향후 3개월간 주말 예약 대부분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 있다는 게 아원 측의 설명이다.180년 세월을 품은 고택이 선사하는 힐링
경북 포항에서 이축한 고택, 여일루
경북 포항에서 이축한 고택, 여일루
아원고택 아래쪽에 있는 소양고택은 철거 위기에 놓인 고창·무안·포항 등의 고택을 해체해 이축했다. 뼈대는 물론 서까래·대청마루 등 작은 부분까지 문화재 장인의 손길을 거쳐 복원한 덕에 한옥 흉내 내기 식의 건축물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한국미를 자랑한다. 고택 보존과 가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온 공을 인정받아 2021년 한국 관광 품질 인증 업체에 선정됐다.
소양고택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소양고택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푸른 잔디마당에 들어서자 3채의 고택이 저마다의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무안군 원호리에서 옮겨온 제월당은 조선시대 고을 원님의 관사였다가 일제강점기 학당으로 사용된 공간이다. 단아한 지붕 선과 사각기둥, 넓은 대청마루 등 전통 양식을 그대로 간직했다. 혜온당은 당시 사회 복지가였던 집주인의 포근한 마음을 이어 받아 ‘따뜻한 사랑과 온기를 전하는 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가장 최근에 이축한 여일루는 경북 포항에서 가져왔다. 당대 예인들이 머물렀던 장소답게 100년 넘은 원기둥·팔작지붕·나무 장식 등 곳곳에 예술의 정취가 가득하다.

스테이 옆에는 완주 1호 독립 서점 플리커, 뷰 맛집으로 유명한 두베카페가 있다. 커피 한 잔에 책 한 권을 곁들이고 종남산 풍광을 눈에 담다 보면 어스름히 스며든다. 소란한 머리는 내려놓고 한갓진 마음 하나 얻어 가는 하루다.

박소윤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