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플랫폼 '체그' 주가 하루 만에 40% 급락…“AI, 인류 문명에 위협될 것”

[글로벌 현장]
월가 휩쓰는 AI…1위 과외 업체는 왜 무너졌나 [글로벌 현장]
미국 1위 교육·학습 플랫폼인 체그의 주가가 최근 하룻 동안 40% 급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교육 서비스 업체라지만 이례적인 낙폭으로 꼽혔다. 주가는 2017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원인은 인공지능(AI). AI는 어떻게 이 온라인 과외 업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교육 업체 CEO “AI 때문에 가입자 뚝”

체그의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은 올해 1분기 실적을 내놓은 직후다.

주당순이익(EPS)과 매출이 1년 전보다 많이 감소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월가의 기대치는 웃돌았다. 문제는 전망치(가이던스)였다. 체그는 “2분기 매출은 최대 1억7800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평균 예상치(1억9360만 달러)를 밑돌았다.

댄 로젠스위그 최고경영자(CEO)는 “신규 고객이 꾸준히 늘어 왔는데 올 3월부터 오픈AI의 챗GPT로 관심이 옮겨 갔다”며 “우리 고객 증가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체그는 연간 실적 가이던스도 내놓지 않았다. 재무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로젠스위그 CEO는 “수 개월 전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를 만나 사업 아이디어를 논의했다”며 “(경쟁하는 대신) AI를 우리 교육 서비스에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체그는 2005년 설립 후 성장을 구가해 온 교육 업체다. 처음엔 디지털 방식으로 교과서를 대여하는 서비스부터 시작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것은 2013년 11월이다.

아이오와주립대에 다니던 조시 칼슨, 마이크 시거, 마크 피들키 등 3명의 학생이 초기 창업 멤버다. 이들은 일종의 교육 정보 게시판인 ‘체그 포스트’를 만들었다. 체그는 닭(Chicken)과 달걀(Egg)의 합성어다. 경력 없이는 직업을 얻기 어렵고 직업 없이는 경험을 쌓을 수 없는 당시 현실을 풍자했다.

칼슨은 이 사이트를 애용하던 아이오와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의 오스만 라시드와 함께 체그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창업 자금은 대부분 라시드가 댔다. 2006년 초 칼슨이 회사를 떠나자 라시드가 CEO를 맡았다.

체그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은 기업공개(IPO)를 통해서다. 큰 투자금을 확보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었다. 2010년 교육 업체인 코스랭크와 숙제 도움말 제공 업체인 크램스터, 수업 노트 필기 업체인 노트홀을 잇달아 인수했다.

M&A 규모는 갈수록 커졌다. 2017년 독일의 수학 교육 업체인 코건을 1500만 달러에 사들인 데 이어 2019년 온라인 코딩 업체 싱크풀을 8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체그의 주가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초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대면 교육이 부실하게 진행되자 온라인 과외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주력 서비스는 ‘체그 스터디’다. 수학 통계 재무 프로그래밍 등을 아우르고 있다. 답변이 정확하고 간결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과제를 할 때 질문하면 전문 강사(튜터)들이 이른 시간 안에 답을 올려 주는 방식이다. 물론 유료 서비스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거나 비싼 과외를 받을 여유가 없는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학생들은 ‘구글한다(googling)’처럼 ‘체그한다’는 신조어를 쓸 정도다. 하지만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며 공짜로 답을 내주기 전의 얘기다.

“주가 방어”…상장사 25%가 언급한 AI”

AI의 열풍은 빅 테크 기업들의 주가마저 좌우하고 있다. 챗GPT를 자사 검색 사이트인 빙에 접목한 마이크로소프트가 견조한 주가를 유지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130억 달러를 투자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챗GPT를 탑재한 뒤 ‘빙’을 내려받는 건수가 급증했다”며 “엑셀과 파워포인트 등 더 많은 사무용 소프트웨어에 AI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분기 실적 발표 때 ‘AI’를 총 53회 언급했다. AI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구글은 65회나 꺼냈다. 메타 플랫폼의 AI 언급 횟수는 57회였다. 아마존 역시 콘퍼런스 콜에서 11번 같은 단어를 꺼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1분기 실적 발표 때 AI를 설명하는 데 약 6분을 배정했다. 반면 ‘메타버스’를 얘기한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메타는 메타버스 기술에만 약 200억 달러를 쏟아부은 회사다. 사명도 기존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꿨을 정도다. 저커버그 CEO는 “현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에서 AI가 추천하는 콘텐츠의 비율은 2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테슬라·알파벳·IBM·메타·서비스나우·시게이트테크놀로지·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8개 기술 기업이 1분기 실적 발표 때 AI를 거론한 횟수는 265회였다는 게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분석이다. 2016년 1분기보다 17배 급증한 수치다.

BofA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이 이번 실적 발표 때 AI를 거론한 횟수가 1년 전보다 85% 늘었다”며 “전체의 약 25%가 AI를 최소 한 차례 언급했다”고 했다. 2016년 1분기에 AI를 언급한 비율은 전체의 5% 미만이었다.

글로벌엑스가 운용하는 AI 상장지수펀드(ETF)는 올해 시장을 크게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월스트리트에서도 AI가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 기업 중 상당수가 AI에 꽂혀 있지만 AI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그중 한 명이다.

머스크 CEO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AI에 대한 선의의 의존조차 기계 작동법을 잊어 버릴 정도가 되면 인류 문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오픈AI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하다.

머스크 CEO는 올해 초에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등과 함께 AI 개발을 잠정 중단하자고 촉구했다.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하는 AI가 인류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AI 등 신기술의 도입 때문에 기존 일자리의 약 25%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2600만 개는 아예 사라질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45개국 80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현금 출납이나 사무 행정 보조, 경리 등의 부문이 심각한 일자리 감소를 겪을 것으로 예상됐다.

변화는 이미 한창이다. IBM은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해선 신규 채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총 8000여 개로 추산됐다.

AI, 특히 인공 신경망 분야의 권위자인 제프리 힌튼 박사는 최근 “AI 위험성에 대해 자유롭게 경고하기 위해 구글을 떠난다”고 밝히면서 “평생 연구한 성과가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는 “비밀리에 개발해도 타국 추적이 가능한 핵무기와 달리 AI는 규제가 도입되더라도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AI 기술의 진화에 브레이크를 거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