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입찰에서 신라·신세계·현대에 밀려 사업장 확보 실패
롯데, 6월 말까지만 사업장 운영
이번 변화로 명품 등 공급사와의 협상력 약화할 가능성도

인천에서 사라지는 롯데면세점, 다가올 시련 어쩌나
인천국제공항의 터줏대감인 롯데면세점이 사업권을 잃게 됐다. 면세점 입찰에서 눈치 싸움에 실패해 너무 낮은 가격을 써내 경쟁사에 밀린 때문이다. 롯데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천공항점의 매출 비율이 낮고 해외 사업과 온라인을 강화하면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롯데의 상황은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공항점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협상력’이다. 이번 변화로 명품 브랜드와의 협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향후 인천공항 여객 수가 완전 회복되면 신라·신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다른 입찰에서도 밀릴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면세 사업자의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다. 많은 사업장을 운영할수록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늘릴 수 있다. 당장 몇 천 억원의 매출 타격보다 더 큰 문제들이 롯데면세점을 기다리는 상황이다.롯데 ‘주류·담배’ 사업장, 신라·신세계에 뺏겨코로나19 사태로 인해 3년간 미뤄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이 마무리됐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월부터 4월 말까지 두 달간 제1여객터미널(T1)과 제2여객터미널(T2)의 면세점 총면적 2만4172㎡(약 7300평)를 취급 품목에 따라 DF1부터 DF9까지 구역을 나눠 입찰을 진행했다.

그 결과 신라면세점·신세계면세점·현대백화점면세점이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다. DF1은 신라가, DF2는 신세계가 차지했다. 향수·주류·담배가 포함된 DF1·2 구역은 수익성이 좋아 가장 치열한 사업장으로 꼽힌다. 패션·액세서리 구역에 해당하는 DF3·4도 각각 신라와 신세계에 돌아갔다. DF5(명품 부티크)는 현대백화점면세점이 확보했다.

롯데면세점은 탈락했다.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이 개항한 2001년 3월 면세점 1기부터 최근까지 22년간 줄곧 사업장을 확보해 왔다. 이번 입찰에서는 DF1·DF2·DF5 등 3곳의 입찰에 참여했지만 신라·신세계·현대에 밀려 단 한 구역의 사업권도 따내지 못했다.

특히 명품 부티크 구역에서는 ‘객당 임대료 1109원’을 써낸 현대백화점면세점보다 높은 ‘1200원’을 제시했음에도 제안서 평가에서 밀렸다. 인천공항공사는 제안서 평가를 60%, 입찰가를 40% 비율로 고려해 사업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롯데는 현재 제2여객터미널에서 주류·담배를 판매하고 있지만 6월 말부터 사업장을 철수하고 7월부터 완전히 빠지게 된다. ‘아 옛날이여’ 흔들리는 1위…10년 뒤가 문제이번 입찰 결과에 따라 롯데면세점은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으면 2033년까지 인천공항에서 영업을 할 수 없다.
롯데면세점은 공항에서는 빠지지만 △시내 면세점 강화 △온라인 채널 활용 △해외 사업 확대 등으로 감소하는 매출을 채울 계획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천공항점의 매출 비율이 3~5%로 낮아졌다”며 “매출 타격은 크지 않다. 인천공항에서 빠지는 부분은 시내 면세점과 온라인 채널을 강화하는 것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당장 몇 년 뒤부터 롯데면세점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롯데면세점은 과거 글로벌 면세 시장에서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단연 1등이다.

면세 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까지만 해도 세계 면세 시장의 1위는 스위스 기업 듀프리, 2위는 미국 기업 DFS였다. 2016년 롯데면세점은 매출 47억8300만 유로를 기록, DFS를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롯데면세점은 2021년까지 시장 2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듀프리가 매출을 늘리면서 3위로 밀려났다. 1위는 중국의 국영면세점그룹(CDFG)이 차지했다.

게다가 경쟁사인 신라면세점과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세계 2위로 올라섰던 2016년 당시 신라면세점은 5위(29억1000만 유로)에 그쳤지만 2018년 매출을 54억7700만 유로까지 늘리며 듀프리와 롯데면세점에 이어 3위로 올라섰다.

인천공항점 운영을 중단하게 되면 롯데면세점의 매출 10%(코로나19 사태 이전 기준)가 줄어든다. 지난해 기준 롯데면세점 매출은 5조301억원이다. 해외여행 수요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면 인천공항에서만 5000억원 안팎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신라면세점의 지난해 매출은 4조3263억원이다. 만약 신라면세점이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으로 매출을 늘리게 되면 롯데면세점은 한국 2위 사업자로 내려오게 되고 신라면세점이 업계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명품 협상력 약화에 IPO 어쩌나롯데면세점 역시 사업장을 하나라도 더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속한 호텔롯데는 사업 보고서에서 “면세 사업은 기본 속성상 단기 수익을 좇는 업체보다 긴 시각으로 큰 그림을 바라보는 업체에 유리하다”며 “면세 사업의 핵심은 제품 소싱 규모 확대에 따른 규모의 경제 확보다.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인천공항 입점의 큰 리스크를 먼저 짊어진 것도 같은 이유”라고 명시했다.

규모의 경제 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제품 공급 업체와의 교섭력 강화 △매입 단가 인하를 통한 수익성 확보 △재고 관리의 효율성 증대 등이다. 롯데면세점은 “이 부분은 면세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가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하는 핵심 역량”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공항 면세점을 운영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매출 축소만이 아니다. 업계 순위가 달라지고 매출이 줄어들면 입점 업체와의 협상에도 불리하다. 특히 면세점 경쟁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명품 매장을 유치하는 게 어려워진다. 한국 유명 뷰티 브랜드와의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공항은 사실 매출이 잘 나와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며 “세계 최대 규모의 선도 공항에 들어간다는 상징성이 가장 크다. 명품 업체와의 협상 시 필수 조건이다. 수익성이 크지 않아도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총체적 경쟁력 약화도 우려했다. “롯데면세점의 경쟁력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 협상 시 인천공항에서 빠진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부터 브랜드 이미지를 지킨다는 이유로 명품들이 면세점을 떠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공항점까지 사라지면 협상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세계 2위이자 한국 최대 사업자’라는 타이틀은 롯데에 중요한 부분이다. 면세 사업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는 면세 경쟁력을 앞세워 2015년부터 기업공개(IPO)를 준비해 왔다. 현재 호텔롯데는 면세 업황의 악화로 IPO를 잠정 중단한 상태지만 면세 사업이 회복되면 IPO를 또다시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는 2015년 9월 상장 주간사 회사를 선정하며 IPO 준비를 시작했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자 이듬해 6월 상장을 철회했다. 2017년 호텔롯데는 IPO 재도전에 나섰지만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으로 면세점 사업의 실적이 악화해 IPO를 포기했다.

호텔롯데의 IPO는 롯데그룹의 ‘이미지 쇄신’과 직결되는 문제다. 호텔롯데의 최대 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19.07%)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상장을 통해 한국 투자자와 지분을 공유하는 것은 롯데에 중요한 문제다. 롯데면세점의 매출이 감소하고 경쟁력이 약화하면 호텔롯데의 상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한 출혈 경쟁을 우려하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출국 시 무조건 들러야 하는 곳인 만큼 별다른 마케팅이 필요 없지만 시내 면세점과 온라인 채널은 할인을 제공하는 등 마케팅을 통해 고객을 유치한다. 향후 인천공항 여객 수가 회복되면서 인천공항 면세점을 확보한 신라와 신세계의 수익성이 늘어날 수 있다. 롯데면세점은 업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해 마케팅에 공을 들일 것이라는 시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가 “지금은 문제없다고 하겠지만 결국 롯데는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마케팅을 강화할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롯데면세점이 매우 공격적으로 온라인과 시내 면세점에 집중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온라인은 할인을 많이 하는 곳이 고객 확보에 유리하다. 롯데가 돈을 쓰면 다른 곳도 마케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출혈 경쟁이 심화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